[살며詩 한 편] (68) 쓸데없이 /오승철

혼자서 타고 있는 왕벚꽃. ⓒ김연미
혼자서 타고 있는 왕벚꽃. ⓒ김연미

쓸데없이
하, 쓸데없이
봄볕에나 겨워서

녹슨 양철문이
삐걱이는 수산리

왕벚꽃 혼자 타는 걸
쓸데없이 바라보네

-오승철, <쓸데없이> 전문-

꽃들이 몰려왔다. 일정한 대오를 갖추고, 혹은 게릴라처럼 불쑥불쑥. 

화들짝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그동안 몸에 걸쳤던 무거운 마음을 벗어 놓고 보면 어느새 승리의 자축을 벌이고 있는 꽃들. 그들의 함성으로 온 세상이 가볍게 흩날린다. 그런 왁자지껄함 위로 통통 튀듯 봄 햇살이 내려앉는다. 그 생기로 수명이 다해가는 것들마저 초록 물기가 오를 것만 같다. 

하, 그러나 혼자 피는 아름다움은 얼마나 외로운가. ‘녹슨 양철문’ 앞에 최선을 다해 피어난 왕벚꽃이 아무도 바라봐 주는 이 없이 혼자 타고 있다. ‘쓸데없이’ 봄볕에 겨워 핀 왕벚꽃이다. 지청구 먹이듯 ‘쓸데없이’라는 말을 반복하면서도 화자 또한 ‘쓸데없이’ ‘왕벚꽃 혼자 타는 걸’ 바라보고 있다. 이 화려한 봄에 혼자 아름다웠다가 혼자 스러져갈 왕벚꽃의 심정을 위로하듯 말이다. 

‘쓸데없음’의 역설. 혼자 타고 있는 왕벚꽃에게, 또는 화자에게 이 ‘쓸데없이’하는 행동은 또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봐오지 않았던가. 쓸데없다고 치부해버리고, 무시해버린 일들이 얼마나 큰 부메랑이 되어 우리들의 생활을 송두리째 뒤집어엎고 있는지 말이다. 

코로나 19로 해서 벚꽃 핀 거리를 걷는 것조차 불편한 요즘이다. 얼마나 많은 꽃들이 저 혼자 피었다 저 혼자 스러져 가고 있을까. 그 너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 혼자 왔다가 저 혼자 돌아가고 있는지, 화려할수록 외로움이 깊어지는 봄이다. 

김연미 시인은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출신이다. 『연인』으로 등단했고 시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  『오래된 것들은 골목이 되어갔다』, 산문집 <비오는 날의 오후>를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 오랫동안 하던 일을 그만두고 ‘글만 쓰면서 먹고 살수는 없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제주의소리>에서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 연재를 통해 초보 농부의 일상을 감각적으로 풀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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