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16) 낙숫물도 받아두면 포제에 쓴다

* 지싯물 : 낙숫물 

* 도제 : 포제(酺祭) 또는 동제(洞祭)·동신제(洞神祭)라고도 한다. 제주도는 전역에서 해마다 이 제례를 올려 온다. 마을을 보호해 주는 동신에게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기원을 올리는 제의(祭儀). 질병과 재앙으로부터 풀려나와 풍년·풍어가 되도록 해달라고 축원한다. 정성을 다한다는 뜻으로 올리는 제물은 물론, 의식을 집전하는 제관은 며칠 전부터 몸과 마음을 삼가 깨끗이 해 참례하는 게 오랜 관례로 돼 왔다.

1971년 8월에서 10월 사이 촬영한 제주시 옹포리 중화동 공동우물. 출처=이토 아비토, 제주학아카이브.
1971년 8월에서 10월 사이 촬영한 제주시 옹포리 중화동 공동우물. 출처=이토 아비토, 제주학아카이브.

제주도는 예로부터 물이 아주 귀했다. 물이 쫄쫄 솟아 나오는 동네 우물가에 허벅이며 물동이가 줄지었던 풍경이 기억 속에 되살아난다. 우물물을 받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것이다.

아무리 정성껏 공들여 지내야 하는 마을제인 도제를 지내기 위해서는 맑고 깨끗한 우물물을 길어 와야 하는 것이지만, 가뭄으로 샘물이 말라 버리면 어쩔 도리가 없었다. 식수난에 대비하기 위해 항아리에 받아 둔 낙숫물이라도 대신 쓸 수밖에. 이를테면 ‘꿩 대신 닭’인 셈이다.

사실, 초가지붕에서 처마로 흘러내려 방울방울 떨어지는 낙숫물을 몸을 정결히 해 정성껏 올려야 하는 마을제에 샘물 아닌 낙숫물을 쓰다니,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달리 방책이 나오지 않는 일이 아닌가.

하긴 상수도가 뒤늦게 설치된 섬 중 섬(우도 같은)에는 빗물을 식수로 음용하던 시절이 있었다. 소위 ‘봉천수(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을 받은 물)’라 해서 큰 연못물을 마신 것이다. 올챙이가 떠다니며 북적거리고 소금쟁이가 이곳저곳으로 헤쳐 다니는 물이었다. 그보다 물속을 들여다보면 가물거리는 수많은 미생물을 보며 속이 여간 역하지 않았다.

필자도 1961년에 우도 연평초등학교(당시) 교사 발령받아 일 년 동안 그런 물을 마시고 살았던 경험을 갖고 있다. 그래도 그곳 섬사람들은 큰 가물을 만나 연못이 바닥을 드러내지 않은 것만도 하늘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요즘 세상에 물이 귀하다 하면 우스갯소리로 들릴 것이다. 산간 오지까지 수도가 들어가고 전화(電化)돼 불이 들어간 지 언제 일인가. 반세기를 훌쩍 넘은 옛날얘기가 아닌가. 무얼 아끼지 않고 쓸 때 물 쓰듯 한다고 한다. 수도꼭지를 틀면 수돗물이 펑펑 쏟아져 나온다. ‘물 쓰듯 하지 말라’는 얘기도 귀에 두지 않은 세상이 됐다.

가끔 물이 나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고 놀랄 때가 있다. 그럴 일은 없다고 호언장담할 수 있을까. 물을 함부로 남용하는 것은 결코 지혜로운 일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지싯물도 받아 두민 도제에 쓴다.’

깨끗지 못한 물이라도 비축해 두면 요긴하게 쓰게 된다는 생활의 지혜를 일깨워 주는 말이다. 이 말의 행간에서 하나에서 열까지, 몸에 배었던 우리 선인들의 절약정신을 읽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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