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회 대한민국연극제 제주예선대회 겸 제26회 제주연극제

[기사 수정=3월 31일 오후 4시 33분]

2021년 제주 연극 대표 선수를 뽑는 ‘제39회 대한민국연극제 제주예선대회 겸 제26회 제주연극제’(제주연극제)가 24일부터 28일까지 5일 간의 일정을 성황리에 마무리했다.

이번 제주연극제는 역대 최다 참가와 다양성이라는 여러 긍정적인 신호를 확인할 수 있던 반면, 무리한 단점을 앞세운 아리송한 심사 평가는 작지 않은 ‘옥의 티’로 남았다. 개선해야 할 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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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에 출연한 파노가리 출연진. ⓒ제주의소리

# 파노가리 ‘발자국’ - 더디지만 한 걸음씩 이라도

시작은 극단 파노가리의 발자국이 열었다. 이 작품은 지난해 제주연극제에서 첫 선을 보이고, 지난해 제주연극협회 소극장연극축제에서 다시 공연했으며, 이번까지 합하면 2년 동안 세 번째 무대다.

작품의 큰 줄기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이전과 달리, 막바지 관객을 당황시키는 갑작스러운 감정의 변화는 바로잡았다. 못난 남편이었지만 그래도 아내를 진정 사랑한 남편, 망자가 돼서도 남편만을 위한 부부의 안타까운 사랑으로 매듭을 지었다. 물론, 생사감별사라는 비현실 존재가 아내의 동생이라는 현실 존재와 왜 일치하는지와 같은 관객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하는 전개를 포함해, 대사·소품·설정 등 무대 위에서 보이고 들리는 요소들이 작품 메시지와 확실히 이어지지 못하고 부유한다는, 기존 작품에서도 느낀 인상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것은 요소의 문제인지 이야기 자체가 지닌 문제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크지 않더라도 개선하는 시도를 확인할 수 있어 반가운 일이다. 

파노가리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면 연극 ‘발자국’은 문무환 대표 본인 삶을 일부 녹여냈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다. 예술에 대한 주인공 부부의 각별한 감정 역시 현실과 맞닿아있다. 파노가리가 개인 삶과 가족, 예술을 일치시킨 ‘1인 극단’으로 끝나지 않고, 보다 오랫동안 도민들에게 인상 깊게 기억되려면, 지금부터라도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가장 가깝고 안전한 방법은 젊은 형제 연극인 문재용·문재승의 활동을 보다 넓게 보장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발자국’을 문재용·문재승 2인극으로 탈바꿈하면 어떨지 상상해봤다. “매 순간 짓밟히는” 발자국에 대한 문무환의 연극적 사유는 나름 가치가 있다고 본다. 형제의 역량을 더 드러나는 파노가리 무대는 기자뿐만 아니라 제주 연극계 안에서도 궁금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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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마에 출연한 퍼포먼스단 몸짓 출연진. ⓒ제주의소리

# 퍼포먼스단 몸짓 ‘코마’ - 큰 밑그림, 채우지 못한 색

지난해 제주연극협회 가입 이후 처음 제주연극제에 참여한 ‘퍼포먼스단 몸짓’(몸짓)은 창작 초연 ‘코마’를 들고 왔다. ‘코마’는 실제 현실과 스스로 만들어낸 가상의 세상이 공존한다는 설정이다. 그리고 동양 판타지를 차용한 시대 배경과 이를 구현하는 복장 포함 소품·장치 등을 갖추고 관객과 만났다. 첫 출전에 대한 의욕을 체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작품은 가상과 실제 사이에서 ‘진짜 모습’을 찾는 존재론적 접근으로 나름 무게감을 가진다. 안정적인 터전, 인물, 자신까지 버려야 비로소 스스로를 둘러싼 껍질을 깰 수 있다는 주제를 주인공 명이를 통해 말한다.

다만, 그런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택한 ‘판타지’ 설정은 결과적으로 관객에게 부담은 안겨줬다. 복장, 소품 같은 부분에서 공을 들였지만 공중제비 동작, 격투신에 있어 매우 아쉬운 완성도를 보였다. 후술할 극단 세이레 작품에서도 밝히겠지만 무술, 격투 같은 전문적인 연기는 적정 수준에 도달하지 않는 이상 관객이 보기에는 어설픈 흉내기에 불과하다. 지금 대중의 눈은 이미 수많은 영화, 드라마, 영상 등을 통해 고난이도 동작과 정교한 특수효과를 어렵지 않게 접하고 있다. 적을 막기 위해 무대 맨 뒤에 나뭇가지를 설치하는 장면 역시, 몇 개만 덧붙이며 이전과 거의 다를 바 없음에도 “든든하다”는 대사가 등장해 어색함만 부각됐다. 세계관은 크게 만들었지만 촘촘하지 못한 인과 관계나, 이질적으로 다가온 영상 효과도 마찬가지. 종합적으로 운명을 스스로 개척한다는 주제를 담아낼 연출의 부조화가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몸짓의 도전을 오직 결과만 보고 평가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무대에 임하는 의욕을 느낄 수 있어서다. 몸짓은 이번 무대를 위해 상당한 투자를 아끼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다른 제주 극단에 도움을 구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몸짓은 협회 가입 유무 관계없이 제주에서 몇 없는 여성이 주축인 극단이다. 자신들의 특성을 잘 살려,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집중해 역량을 끌어올린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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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개의 단추에 출연한 예술공간 오이 출연진과 제작진. ⓒ제주의소리

# 예술공간 오이 ‘일곱 개의 단추’ - 대극장에서도 돋보이는 실험 정신

퍼포먼스단 몸짓과 마찬가지로 지난해 제주연극협회에 가입한 ‘예술공간 오이(오이)’는 이번 제주연극제를 위해 ‘일곱 개의 단추’를 새로 제작했다. ‘일곱 개의 단추’는 일본군 위안부라는 실제 역사를 다뤘다. 치매를 앓아온 제주 할머니가 지나가는 행인의 머리를 돌로 내리친 사건을 시작으로, 낯선 이국에서 겪은 위안부 생활을 하나 둘 풀어낸다. 

일본군 위안부라는 역사가 고통스럽고 끔찍하다는 사실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숨겨지고 왜곡 당하는 사실을 기억하고 알리기 위해 학술 연구, 예술 창작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오이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고통에 굴하지 않으며 당당하고 연대했던 여성들이라는 인식으로 접근했다.

작품은 ‘위안부’, ‘위안소’라는 단어를 거의 나오지 않고 “지옥” 등의 단어로 빗대 언급한다. 거칠고 위협적인 장면이 등장하지만 노골적으로 일본군의 성폭력 장면은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난 속에서 서로 보듬으며 씩씩하게 이겨내려 애쓰는 15~20세 소녀들의 모습을 그린다.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행동강령을 목소리 높여 외우고, 인간으로 최소한의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일본군을 상대로 “투쟁”을 외친다. 방마다 할 말을 전달하다가 대화가 꼬이며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 에너지 넘치는 군무 등 여러모로 창작의 영역을 덧입혔다.

지금 나이면 중학생, 고등학생 밖에 되지 않은 위안부 소녀들의 미소는 비극 안에서 피어나는 너무나 미미한 기쁨이다. 그런 기쁨으로 비극은 더욱 짙어진다. 웃음과 눈물이 교차하는 그들의 일상이 켜켜이 쌓이고, 홀로 살아남아 늙어버린 주인공은 마침내 먼저 떠난 언니들과 감격스럽게 재회한다.

오이는 위안부 여성을 피해자만이 아닌 “우리는 존엄하다”고 외치는 당당한 존재로 바라봤고, 이러한 시선은 발상이 돋보이는 연출·구성으로 힘을 받았다. 때로는 유려한 대사보다 더 효과적인 침묵,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을 서서 연기하는 장치, 무대가 열리듯 장치가 좌우로 펼쳐치고 이어지는 노래 연기, 일본군 역할 배우는 모든 대사를 일본어로 구사했고, 일본어 사용 시마다 비추는 한글 자막 등 다양한 시도가 이뤄졌는데 완성도까지 채우려는 노력이 역력했기에 더욱 눈길을 끌었다. 특히, 화려하진 않지만 좌우상하 중심 구석구석 채우는 공간 활용과 동선은 소극장에서의 능력을 십분 발휘했다. 음악에 효과음까지 신작을 위해 자체 작곡하는 정성도 빠질 수 없다.

다만, 막바지 주인공이 해외에서 제주로 돌아오는 중요한 순간에 일본어 자막이 꺼지는 치명적인 실수로 빛이 바랬고, 중반 아리랑 합창은 다소 진부하게 느껴졌다. 총기 게임을 몸으로 묘사한다는 사건 동기, 위안부 소녀 하루코의 자살 등 보다 촘촘한 인과 관계를 고민해야 할 부분도 눈에 띄었다. 

그럼에도 ‘일곱 개의 단추’는 소극장만큼 대극장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능력과 시대극도 오이만의 시선으로 만들어내는 실험 정신을 입증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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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비행기에 출연한 가람 출연진. ⓒ제주의소리

# 가람 ‘종이비행기’ - 갔던 길이라 더욱 편안한 서행 운전 

지난해까지 2년 연속 제주연극제 최고상을 수상한 가람은 올해 창작 초연 ‘종이비행기’를 선보였다. 시장 길바닥에서 굴욕을 감내하며 사별한 남편 대신 아들을 키운 어머니. 위암이란 큰 질병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그녀는 자청해서 요양병원으로 향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난다. 

‘종이비행기’는 눈 감는 순간까지 오직 아들과 가족만 바라보며 살아온 한 여인을 통해 숭고한 모성애를 이야기 한다. 단속원과 시장 상인들에게 끌려 나가도 “우리 아들을 위해 뭐든 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장면은 노골적일 만큼 솔직하지만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함축한다. 작품은 모성애뿐만 아니라 어머니를 모시는 부부의 입장도 비춘다. ‘절대 요양병원으로 보낼 수 없다’는 아들과 “나도 여자”라고 토로하는 며느리의 대사는 비슷한 경험을 가진 처지라면 가슴을 쓰리게 공감할 법 하다. 

‘종이비행기’는 주인공 가족만큼 요양병원 입소 노인들의 생활을 비중 있게 다루며 한층 더 넓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각기 다른 젊은 날을 보냈지만 어느새 같은 복장을 입고 하루하루 서로를 위로하며 죽음을 기다리는 처지는, 가람이 자랑하는 중견 배우들의 열연으로 생동감 있게 구현됐다. 여기에 20대 강민주·고훈민부터 원로 배우 이광후까지, 출연진만 총 23명에 달하는 물량과 유동적이진 않아도 무대를 꽉 채운 세트가 더해져 무난한 완성도를 갖췄다. 부모의 투병 생활을 겪었거나 떠나보낸 자녀, 황혼에 접어드는 노인들이라면 ‘종이비행기’는 큰 위로를 선사할 작품이다. 짧은 출연이지만 모처럼 무대로 복귀한 박세익 배우는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꽤 반가웠다.

이렇게 여러모로 평균 이상의 작품임에 분명하나, 변화·도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종이비행기’는 어머니를 연기한 고가영 배우를 필두로 아들 역 이승준, 며느리 역 양진영 배우가 중심을 잡는 출연 구조다. 이는 동일한 출연진 고가영(어머니 역), 이승준(아들 역), 양진영(막내딸 역)이 주연인 ‘내 생에 마지막 비가’와 비교하면 역할·감정까지 상당히 유사하다. 단편적인 감정 일변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익숙한 구성, 고정적인 기능에 한정된 세트 활용 등 이미 해왔던 연기·연출의 재조합으로 인해 ‘종이비행기’는 신작이면서 신작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노령화 시대를 감안한 ‘요양’이라는 신작 소재 선정에서도 잘 드러나지만 가람의 인적 구성, 레퍼토리를 고려하면 ‘중장년층’을 주 목표로 하는 가람의 선택은 다시 생각해보건대 현명하다. 주어진 여건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능력을 최대한 살리는 전략적 판단은 타 극단도 눈여겨 볼 만 하다. 그러나 선택과 집중으로 방향을 정했다 하더라도 진전 없는 반복은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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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천강 별곡에 출연한 세이레 출연진과 제작진. ⓒ제주의소리

# 세이레 ‘주천강 별곡’ - 겉도 속도 나아지지 못한 아쉬움

2017년 ‘콜라소녀’로 제주연극제 최고상을 수상한 세이레는 3년 공백을 버티고 다시 제주연극제에 돌아왔다. 지난 2012년 첫 선을 보인 자청비를 지난해 재구성했고, 이 작품을 개작한 ‘주천강 별곡’을 선보였다.

작품은 자청비와 문도령이 만난 주천강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그 뒤로는 고난 끝 행복을 얻은 ‘자청비’의 흐름을 따라간다. 연출자의 설명처럼 ‘주천강 별곡’은 “유쾌하게 자청비의 사랑이야기”에 집중하면서 작품 안팎으로 변화를 시도했다. 자청비에게 죽임을 당한 정수남이 구사일생 살아나 문도령과 한판 승부를 벌인다는 창작을 가미했다. 중간중간 관객의 이해를 돕는 이야기꾼은 인물과 줄거리 상 연관이 있는 해·달·별로 비중을 키웠고, 이야기꾼 일부 역할을 떼서 단역이 맡도록 조정했다. 검술 연습과 전투 장면도 추가했으며, 무대 배경에는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악사를 앉혔다. 대사에서도 보다 현대적인 느낌을 입혔다. 이밖에 여러 시도를 제주연극제를 위해 더했지만, 안타깝게도 유기적인 결합과 체감은 느끼지 못했다.

무엇보다 장면마다 어색한 공백을 자주 나타났는데, 초반에는 악사들의 전통악기 효과음과 연주가 가미돼 설화라는 소재의 ‘맛’을 잘 살리고 속도감도 부여하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제한적이고 비교적 간단한 연주에만 활용돼 크게 아쉬웠다.

검술 연기는 웅장한 배경 음악과 함께 비중을 높였지만, ‘왜 이렇게 검술을 강조해야 하는지’ 맥락 상 의아할 뿐만 아니라 배경 음악은 오히려 전통 설화와 상반된 느낌이어서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정수남과 문도령의 대결은 젊은 에너지가 느껴져 어색함은 일부 상쇄시켰지만, 퍼포먼스단 몸짓에서 언급한대로 관객이 몰입할 수준은 아니었다. 기왕 무술에 힘을 싣는다면 차라리 전문 무도인을 섭외하거나, 정수남은 도끼나 거친 방망이 같은 야생성에 어울리는 무기와 동작을 구사해 정수남과 대비를 이루면 어떨까 싶었다. 

어둠 속에서 출연진들이 작은 조명을 비추는 연출이나, 문도령이 자청비의 마음을 알게 된 뒤 등장하는 단조로운 안무와 음악, ‘라면 먹고 가자’에 담긴 중의적 언어유희까지. 소소한 아이디어들은 나름 고민이 묻어났지만 제각각 동떨어진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예상컨대 지난해 소극장 자청비 공연에서 느꼈던 밀도감을 대극장이라는 확장된 공간에 채우면서 원활한 조율이 이뤄지지 않았나 짐작해본다. 3년이란 공백을 단번에 채울 수는 없기에 차차 회복하는 세이레를 많은 관객들은 기대할 것이다.

# ‘더하기’ 심사가 아닌 ‘빼기’ 심사

이번 제주연극제는 역대 최다 참가와 극단마다 각기 다른 매력으로 보는 재미를 선사했지만, 석연치 않은 심사는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심사 기준을 위안부라는 소재와 그에 따른 자의적 우려로 삼았기 때문이다. 올해 최우수상은 가람, 우수상은 오이가 수상했다. 

28일 시상식이 끝나고 모 연극협회 회원이 심사위원에게 심사 기준이 무엇인지 묻는 흔치 않은 상황이 나왔다. 올해 제주연극제 심사는 노하룡 김천가족연극제 추진위원장, 정두영 한국연극협회 부이사장이 맡았다. 이 자리에서 정두영 심사위원은 ‘일본군 위안부라는 소재는 현재 진행형인데, 피해자 분들이 살아있는 상황에서 오이가 보여준 위안부에 대한 표현은 자칫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공식 심사평에서는 밝히지 않은 내용이었다.

심사는 정두영 심사위원 말대로 “고유 영역”이지만, 권한과 거리가 먼 자의적인 문제 의식은 편협한 자세로 비판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지난해 대한민국연극제에서는 전북 지역 대표인 극단 까치동이 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조선의 여자’로 본선에 참가한 바 있다. 여기에 삼청교육대(경기), 5.18(서울·충북), 언론(부산) 등 역사·사회 문제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본선까지 진출했다. 소재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위안부 소녀를 연기한 배우들이 힘차게 군무를 추고, 잠들기 전 농담을 던지는 등의 유쾌한 장면들이 위안부에 대한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인식은 치우친 판단이다. 

작품 일부만 가져다가 크게 해석하는 오류일 뿐만 아니라, 만약 '일곱 개의 단추'가 어느 누가 봐도 위안부를 왜곡했다면 5개 출품작 중 유일하게 문예회관 대극장 1~2층 좌석 모두 채우고 일부는 공연장에 들어가지 못한 가운데, 관객들이 기립박수까지 치며 화답할 수 있을까. 제주 관객을 낮게 평가하는 건 아닌지 심히 불쾌하다. 같은 기준이라면 위안부 할머니를 악성 민원인, 영어 까막눈으로 묘사한 2017년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역시 오해를 사는 작품인가?

누가 더 낫다는 단순 결과만을 가지고 따지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제주 극단들이 제주연극제를 통해 사회 문제-역사 문제에 대해 한 걸음 앞서가는 예술적 시선으로 임할 때, 이번처럼 좁은 시야로 심사한다면 창작 열의를 꺾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심사위원들이 보여준 태도가 과연 본인들 심사 총평에서 밝힌 대로 “연극은 현실을 비추는 예술”에 부합하는지 진지하게 돌이켜 볼 일이다.

# 역다 최대 참가 열기 이어가기 위한 제도적 과제

최다 참여라는 결과는 분명 의미가 있지만, 제주연극협회가 작은 성과에 취하지 말고 다음 행사를 위해 해결할 과제들이 눈에 띄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같은 공연장에서 매일 마다 공연을 이어가는 일정이다. 오후 9시 경 공연이 끝나면 곧바로 무대 철수와 설치 작업이 동시에 밤새 진행되고, 그런 컨디션으로 각종 장비 조정과 무대 적응, 리허설까지 마쳐야 한다. 극단 입장에서는 준비한 결과 100%를 보여주기 힘들 뿐만 아니라, 관객 입장에서도 보다 나은 작품을 관람하는 향유권에 지장을 준다.  

타 지역은 같은 문제를 이미 인지하고 해결에 나선 상황이다. 

올해 대전연극제는 2월 22일, 24일, 26일, 28일 일정을 소화했다. 대전예술의전당 앙상블홀이란 같은 공간을 사용하되 하루 간격을 뒀다. 

대구연극제는 3월 30일부터 4월 4일까지 매일 이어가되, 공연장을 두 곳(어울아트센터, 웃는얼굴아트센터)으로 나눠 사실상 건너 뛰는 효과를 만들었다. 부산연극제도 공연장을 부산시민회관과 부산문화회관으로 구분해 문제를 해결했다.

비록 이상용 회장 예하 집행부가 올해로 임기가 끝나지만, 일정은 중요한 문제이기에 다음 제주연극제에서는 반드시 달라져야 한다. 이 밖에 다른 지역 연극제에서 시행 중인 두 차례 공연으로 종합 심사하는 제도 역시 도입해볼 만 한 하다.  

신규 회원 극단 영입이 곧 최다 참여로 이어진 만큼, 제주연극협회는 앞으로 제주 곳곳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단체들을 영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각기 색깔이 다른 극단들이 치열하게 경쟁할 때 관객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공연장에 온다는 자명한 사실을 이번 제주연극제는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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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제주연극제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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