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詩 한 편] (69) 천일염 / 윤금초
가 이를까, 이를까 몰라
살도 뼈도 다 삭은 후엔
우리 손깍지 끼었던 그 바닷가
물안개 저리 피어 오르는데,
어느 날
절명시 쓰듯
천일염이 될까 몰라
-윤금초, <천일염> 전문-
새까만 먹물 하나 이차원 시간의 직선 위로 떨어졌다. ‘우리 손깍지 끼었던 그 바닷가’, 가슴 저렸던 하나의 먹물은 인생을 가로지르는 시간 위로 ‘물안개’처럼 서서히 번져 가고, 어쩌면 삶의 막바지까지 그 물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다.
시간의 물리력에 밀려 바닷가에서 멀어지기만 했던 절망. 닿아야 할 곳에 닿지 못하는 결핍이 만들어낸 봄과 여름, 화려했던 시간은 한낱 허상이었음을, ‘살과 뼈도 다 삭은’ 한겨울이 되면 우리는 가지만 남은 나무에게서 다시 또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래. 그렇게 마지막 시를 쓰고 나면 우리는 정말 그 모든 그리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흥건했던 그리움의 눈물에서 짜디짠 알갱이 하나 건져 올릴 수 있을까. 그 알갱이 우주를 한바퀴 돌아 어느 날 내 인생을 적셨던 먹물 하나에 가 닿을 수 있을까. 화려한 봄. ‘절명시 쓰듯’ 꽃이 진다.
김연미 시인은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출신이다. 『연인』으로 등단했고 시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 『오래된 것들은 골목이 되어갔다』, 산문집 <비오는 날의 오후>를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 오랫동안 하던 일을 그만두고 ‘글만 쓰면서 먹고 살수는 없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제주의소리>에서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 연재를 통해 초보 농부의 일상을 감각적으로 풀어낸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