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임기-차기 지방선거 막바지, 특별법 개정 '불투명'...행정구역 조정 대체안 부상

내년 6월 실시되는 지방선거를 한 해 남짓 앞두고 표류하고 있는 제주 행정체제 개편이 점차 요원해지고 있다.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지만, 방법이 제각각이고 물리적 시간의 한계가 드러나면서다.

행정시장 직선제 논의를 주도해 온 제주도의회도 대체안을 물색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주에서 행정체제 개편 논의가 본격적으로 다뤄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7년 행정체제개편위원회가 '행정시장 직선제'와 '행정시 4개 권역안'을 담은 권고안을 제출하면서다. 

2006년 특별자치도 출범 이후 제주는 기존의 기초자치단체를 폐지하고 2개의 행정시를 구성했다. 두 행정시의 수장은 도지사가 직접 임명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곧 행정시의 자기결정권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고, 일선 행정 서비스의 부실로 이어졌다. 도지사에 모든 권한이 몰리는 이른바 '제왕적 도지사'에 대한 견제의 문제도 제기됐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제시된 '행정시장 직선제'는 나름의 절충안이었다. 기초의회를 구성하지 못하는 행정시장 직선제는 법인격 없는 행정시의 한계를 분명하게 드러낼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기존의 기초자치단체를 부활하는 방안은 특별자치도로서의 지위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위험 부담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행정체제개편위의 의견을 제주도의회의 동의를 거쳐 제주특별법 7단계 제도개선 과제에 포함됐지만, 정부의 반대로 결국 무산됐다.

◇ 일찍이 예고된 직선제 무산, 원희룡 지사도 "잘 안될 것" 

정부의 반대는 이미 예고돼 있었다. 정부는 현재 특별자치도 형태는 출범 당시 제주도가 선택한 사항으로, 이를 정부가 다시 되돌리는 것은 현실적인 부담이 크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제주도정의 입장이 확고하지도 않았다. 행정시장 직선제가 7단계 제도개선안에 포함돼 있음에도 원희룡 제주도지사의 구상은 온도차가 있었다.

원 지사는 지난해 11월 17일 열린 제389회 제주도의회 정례회 도정질문 과정에서 행정시장 직선제 도입과 관련한 질문에 "의회 없이 행정시장 직선제로 간다면 예산, 인사, 조직 등 여러가지 난관에 부딪힐 수 밖에 없다"며 "만약 간다면 기초자치단체를 부활해야 한다"는 소신을 밝힌 바 있다.

7단계 제도개선안에 행정시장 직선제가 포함되지 않았냐는 추궁에 대해서도 원 지사는 "행개위(행정체제개편위원회)를 존중했고 의회도 동의했기 때문에 제도개선안에 포함시켰다. 개인적으론 잘 안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힌 바 있다.

행정시장 직선제가 무산된 것은 한 배를 타도 성사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정부와 제주도, 의회가 제각기 의견을 달리함에 따른 당연한 결과였다.

◇ 민주당 중심 행정체제 개편 논의 '5월 입법' 마지노선

결국, 현재의 행정시장 직선제 논의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제주 국회의원 3명과 제주도의원 중심으로 다뤄지고 있다.

행정체제 개편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송재호 민주당 균형발전특별위원회 제주본부장은 내년 지방선거 일정 등을 감안해 5월까지는 관련 법률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공언했다. 

송 본부장은 지난 1월 22일 민주당 균형발전특위 제주본부 출범식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제주도와 도의회가 함께 도민의견 수렴을 거친 초안이 마련되면, 중앙부처와 국회의 의견을 보완해 최종안을 만들어 법률을 개정하는 수순을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1월22일 오전 제주도당 당사에서 더불어민주당 균형발전특별위원회 제주본부 출범식이 끝난 뒤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는 송재호 제주본부장(가운데).ⓒ제주의소리
1월22일 오전 제주도당 당사에서 더불어민주당 균형발전특별위원회 제주본부 출범식이 끝난 뒤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는 송재호 제주본부장(가운데).ⓒ제주의소리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에 따른 제주특별법 전부 개정이 필요하지만, 물리적 시간 등을 고려해 원포인트 또는 투포인트 입법화하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행정시장 직선제에 대해 기존의 '수용 불가' 입장을 보이던 행안부 역시 정부입법이 아닌 의원입법 형태로 우회한다면 반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제주도의회와 송재호 국회의원이 공동으로 개최한 '행정체제 개편을 위한 정책간담회'에서 류임철 행안부 자치분권정책국장은 "정부입법으로 제주특별법을 개정하는 것은 어렵지만 제주도민의 의견이 반영된 의원입법으로 추진한다면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자리에 배석하고 있던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도 행정시장 직선제 추진에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며 지원 사격했다.

◇ 도의회 '행정구역 조정' 카드, 투 트랙? 대체안?

송 본부장의 공언대로 5월은 행정체제 개편 논의의 마지노선이다. 자치분권의 필요성을 누차 강조해 온 문재인 정부의 임기는 1년도 남지 않았고, 지방선거는 대선 직후 코 앞의 일정이다. 

여야가 한 목소리로 약속했던 4.3특별법이 개정되는대도 한 세월이 걸렸다. 줄곧 '지역간 형평성' 문제에 부딪혀 온 제주특별법이 통과되기까지는 의지와는 별개로 물리적 시간의 한계와 마주하게 된다. 행정체제 개편 가능 여부도 적신호가 켜진 셈이다.

급기야 제주도의회는 표류하고 있는 행정체제 개편을 대신해 '행정구역 조정'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기초자치단체를 부활시키거나 행정시장 직선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제주특별법 개정 작업이 필요하지만, 행정구역 조정은 조례 개정만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행정체제 개편과 함께 추진되는 '투 트랙' 전략의 성격을 띄었지만, 현실적으로 대체제가 될 가능성도 커졌다.

제주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가 지난 9일 오후 2시 소회의실에서 '제주특별자치도 행정구역 조정에 대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사진=제주도의회
제주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가 지난 9일 오후 2시 소회의실에서 '제주특별자치도 행정구역 조정에 대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사진=제주도의회

지난 9일 제주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위원장 이상봉) 주최로 열린 '제주도 행정구역 조정에 대한 정책토론회'에서는 현재 제주시와 서귀포시 등 2개로 나뉘어진 행정시를 3개 행정구역으로 나눠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제주도 인구의 73%를 차지하며 비대해진 제주시를 나눠 가칭 동제주시, 서제주시로 나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역별로 나눠야 할지, 인구수로 나눠야 할지, 기존 제주시 갑·을로 나뉘어진 국회의원 선거구로 나눠야 할지는 의견차가 있었지만, 큰 그림에는 모든 패널이 동조했다.

토론회를 개최한 이상봉 위원장은 "행정체제 개편도 논의되고 있지만, 특별법 개정이 어려울 것으로도 판단된다"며 "행정구역 조정은 제주도 조례로 가능한 사안이어서 지사의 의지와 도민사회의 공감대만 있으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다루게 된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행정시장 직선제는 나름의 반대 의견이 있는 내용이지만, 행정구역 조정은 인구 50만명이 넘어섰음에도 특례시로 인정받지 못하는 조건 속에서 행정서비스 질 등의 문제가 뒤따르기 때문에 논의가 필요하다"며 "행정체제 개편이 불소용되더라도 행정구역 조정의 공감대를 형성해 의견을 모아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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