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말과 행동이 다르면 민심은 떠난다

'소리시선'(視線)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글
낮은 곳을 지향한다고 말하는 진보정치가 낮은 곳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할 때 진보정치는 심판받는다. 출처=오마이뉴스.
낮은 곳을 지향한다고 말하는 진보정치가 낮은 곳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할 때 진보정치는 심판받는다. 출처=오마이뉴스.

2021년 4월 7일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뽑는 보궐선거가 끝났다. 두 곳 모두 야당인 국민의힘에서 시장에 당선되었다. 예상된 결과였지만, 엄청난 표차에 놀랐다. 여러 실정(失政)이 원인이었고, 막판에 터진 LH 사태에 민심은 크게 움직였다. 국민들은 분개했다.

여당인 민주당은 지지율이 한동안 높았고 이전 선거에서 연이어 승리했었다. 자만심이 쌓였던 걸일까? 높이 올라가면 내려가는 게 순리인 것인가? 정권 말에 인기가 높기는 쉽지 않다. 국정 책임을 지는 진영은 이를 비판하는 진영보다 훨씬 큰 고충을 감내해야 한다. 그럼에도 더불어민주당의 최근 행보는 매우 실망스러웠다. 전임 시장의 성추행에 의해 이번 보궐선거가 치러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불어민주당은 후보를 내지 않는 게 나았다. 그래야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하여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는 기존 당헌 제96조 제2항에 ‘단, 전당원 투표로 달리 정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을 추가한 당헌 개정안을 보궐선거 전에 통과시켰다.

이런 더불어민주당의 행보는 예견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1년 전인 2020년 4월 15일 제2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회피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을 채택할 때도 그랬다. 세(勢) 싸움인 선거에서 도덕을 요구하는 것은 진보 진영에도 애당초 무리일지 모르겠다. ‘K 방역의 성과’에 힘입어 1년 전 선거에서는 압승을 거두었지만, 1년 뒤에 정반대의 성적표를 받게 될 줄은 그때 당시로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지난 1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돌이켜보면 더불어민주당의 오만과 독선이 하늘을 찔렀다. 1년 전 선거에서의 압승이 분명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겸손을 잃고 민심을 다 얻은 양 행세했다. 진보는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말만 그럴싸했고 행동은 따르지 못했다. 

강준만 교수는 ‘싸가지 없는 정치, 진보는 어떻게 독선과 오만에 빠졌는가’(2021)에서 “지적 오만함은 파벌적일 때 가장 치명적이다”는 미국 철학자 마이클 린치(Michael P. Lynch, ‘우리는 맞고 당신은 틀렸다’, 2020)의 말을 인용했다. ‘조금박해’라는 신조어가 생겼고, 최근 ‘내로남불’이 ‘Naeronambul’로 뉴욕타임즈 칼럼에 등장했다. “나는 옳고 다른 이는 그르다”는 ‘我是他非(아시타비)’가 교수신문이 뽑은 2020년 ‘올해의 사자성어’였다.  

선거를 앞두고 여러 공약이 남발되지만, 국민들이 기억하는 건 선거공약이 아니다. 국민들은 공약 이전에 이제껏 제대로 정치를 펼쳤는지를 살핀다. 선거만 잘 하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은 이번 보궐선거에서도 타당하지 않다는 게 증명되었다. 판세는 선거 이전에 대략 정해지는 법이다. 

1년 뒤인 2022년 3월 9일에 제20대 대통령선거, 6월 1일에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다. 내년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에서 국민은 과거와 현재를 심판할 뿐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고 추진할 권력을 뽑는다. 국민은 선거때만 주인이라는 냉소적인 말도 있지만, 정치권은 겸손하게 국가와 지자체를 잘 운영해야 국민과 주민의 선택을 받는다는 점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진보 정치든 보수 정치든, 정치는 소수 엘리트 정치인의 ‘도덕적 우월감’이나 ‘지적 우월감’에 기초해선 안 된다. 정치인이나 공직자는 말로 평가받는 게 아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가 중요하다. 진보 정치가 지금도 여전히 민주화를 이룬 공적에 경도되어서는 진보 정치의 미래는 없다. 훈장은 결코 완장이 아니다. 낮은 곳으로 가는 것이 진보 정치라면, 낮은 곳에 있는 국민이 진보 정치의 지향점이 돼야 한다. 결과로 나타나는 행동이 중요하다.  

소수의견을 존중하지 않고 배제해서는 진보 정치는 발전할 수 없다. 자신도 틀릴 수 있다는 점, 다수도 잘못 갈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올바른 길을 모색해야 한다. (강준만 교수가 책에서 인용한) “좌파는 과거엔 진실은 반대되는 관점을 상대하면서 가장 잘 발견된다고 믿었는데 지금은 반대되는 관점을 제거함으로써 진실이 확립된다고 믿는다”는 뉴욕타임즈 칼럼니스트 브렛 스티븐스(Bret Stephens)의 말을 기억나게 한다. 이전 트럼프 정치를 보면 이 말은 진보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보수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선거는 진영논리로만 이길 수 없다. 중도의 표심을 얻어야 이긴다. 중도는 진보나 보수처럼 진영논리를 펼치기 어렵지만, 선거에서 캐스팅 보트(casting vote) 역할을 수행한다. 중도의 표심은 어느 쪽이 못했는지, 어느 쪽이 잘 했는지에 따른다. 중도야말로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실정(失政)의 바로미터는 “말과 행동의 괴리”에 있다. 낮은 곳을 지향한다고 말하는 진보정치가 낮은 곳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할 때 진보정치는 심판받는다. 도덕적이라고 말하기 좋아하는 진보정치가 비도덕적인 모습을 계속 보일 때 중도의 표는, 심지어 진보의 표까지도 움직인다는 사실을 이번 보궐선거는 여실히 보여주었다. / 고봉진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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