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예술공간 ‘큰바다영瀛’ 개관...6월 20일까지 고영일 사진 작품 전시

고영일 작가가 촬영한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제주 아이들의 모습. 제공=사진예술공간 큰바다영.
삥이치기(1970년대 추정). 제주도는 논이 귀한 섬이라 육지 사람들처럼 논에서 생산한 볏짚으로 지붕을 이을 수 없었으니, ‘새왓’에서 생산한 ‘새’(띠)로 지붕을 이었다. 봄이 오면 ‘새왓’마다 ‘새’의 어린 꽃이삭이 피었다. 이를 ‘삥이’라고 하였다. ‘삥이’는 아이들의 간식거리임과 동시에 ‘삥이치기’의 놀이 도구가 되어주었다. (글 고광민) 제공=사진예술공간 큰바다영.

어려운 시기였지만 누군가에게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산업화 시기. 당시 제주 아이들의 정겨운 모습을 흑백사진으로 만나보자.

'사진예술공간 큰바다영瀛'은 4월 20일부터 6월 20일까지(오전 12시~오후 6시) 개관 기념 전시 ‘야이덜, 이제 어떵들 살암싱고예? - 고영일이 만난 1950-80년대 제주아이들’을 진행한다.

사진예술공간 큰바다영瀛은 제주 출신 고영일 사진작가를 기리기 위해 그의 가족들이 만든 사진 전시 공간이다. 첫 전시는 고영일의 1950~80년대 사진 가운데 제주 아이들 사진 43점을 골랐다. 전시 제목은 작가가 사진 메모로 남긴 글귀다. 

고영일은 1978년 살던 집이 불타면서 1950년대 신성여고 교사 시절 학교 암실에서 작업한 필름들을 거의 소실한 바 있다. 그 중에서 다행히 남아있던 사진이 바로 이번 전시 작품이다. 

아이들 사진과 함께 1980년 당시 전시를 준비하면서 작가가 인화하고 준비한 사진 4점, 1996년 전시한 사진 중 액자 상태 그대로 보관한 4점 등도 함께 선보인다. 본인이 필름을 직접 인화한 사진이라 작가로서의 의도 등을 엿볼 수 있다. 1980~90년대 전시 분위기도 짐작해 볼 수 있다. 전시 사진 설명은 '제주 생활사'의 저자, 고광민 서민생활사 연구자가 작성해 의미를 더했다.

고영일 작가가 촬영한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제주 아이들의 모습. 제공=사진예술공간 큰바다영.
1962년 제주시 막은골. 제공=사진예술공간 큰바다영.
고영일 작가가 촬영한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제주 아이들의 모습. 제공=사진예술공간 큰바다영.
성산리에서(1979년). 성산일출봉 서쪽 ‘광치기’ 들판은 소들이 풀을 뜯던 곳이었다. 겨울에 성산리 소들은 성산일출봉 분화구로 들어가 월동하였다. 소들이 떠난 ‘광치기’ 들판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주었다. (고광민 글) 제공=사진예술공간 큰바다영.
고영일 작가가 촬영한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제주 아이들의 모습. 제공=사진예술공간 큰바다영.
김녕리에서(1979년). 제주도 화산섬의 빗물은 땅속으로 들어갔다가 갯가에 이르러 솟구쳤다. 용출수를 중심으로 하여 마을이 들어섰다. 용출수는 먹는 물과 함께 빨래하는 물이 되어주었다. 김녕리(구좌읍) 용출수 빨래터에는 어른도 아이도 모여들었다. (고광민 글) 제공=사진예술공간 큰바다영.
고영일 작가가 촬영한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제주 아이들의 모습. 제공=사진예술공간 큰바다영.
사수동에서 개구쟁이들(1969년). 동네에 들어서면 촬영자가 오히려 구경거리다. 몰려다니며 찍어달랜다. 다 모아놓고 막상 찍으려면 오히려 숨는 녀석이 있다. 장년이 되었을 이들 중에 몇이나 이 사진을 반길 형편이 되었을까? (고영일 글) 제공=사진예술공간 큰바다영.

큰바다영은 “전시한 사진들은 아이들이 카메라를 인식해 포즈를 취한 것도 있지만, 길가에서 바다에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놀거나 뭔가를 하는 모습도 많다. 때묻지 않은 아이들의 자연 표정들도 볼 수 있다”면서 “1950~80년대 제주 아이들 사진을 처음으로 전시하는 이유는 전시 사진의 주인공들이 이제는 50~80대의 제주 사람이 돼 있을 것이고 그 주인공들과 다시 만나고자 하는 뜻도 있다. 그때 그 아이들을 만나서 그때의 기억을 소환하고 급격하게 변한 제주에서의 삶의 노정을 듣고 싶다. 그것이 또 하나의 살아있는 제주 현대사 기록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더불어 “그때 그 시절 제주 아이들에게는 제주의 산과 바다가 그저 일터이고 놀이터였다. 사진에서 보듯 서로 어울리면서 뒹구는 아이들의 모습은 지금은 찾아볼 수 없게 된 성장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때 그 모습을, 그런 세월을 겪은 이들뿐 아니라, 급격한 변화로 집안과 밖이 철저하게 구분된 삶을 살고 있는 지금의 젊은이들도 보기를 권해본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전시 소개 글을 쓴 고광민 서민생활사 연구자는 “사진예술공간 큰바다 영瀛은 ‘사라져가는 제주도’ 모습이 담긴 사진을 발굴하고, 전시하고, 연구하게 될 것이다. 제주도 고영일 집안 3대에 걸친 공덕 앞에 고개 숙이고, 또 박수를 보낸다. ‘사라져가는 제주도’는, 이제 사라지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응원을 보냈다.

큰바다영은 제주 아이들 뿐만 아니라 제주여성, 남성 등 다양한 주제로 전시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고영일 작가가 촬영한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제주 아이들의 모습. 제공=사진예술공간 큰바다영.
해안초소에서(1980년대 추정). 밤에 제주도 해안경비의 구실로 세운 초소에는 긴장이 감돌았겠지만, 경비원들이 떠난 초소는 아이들의 병정놀이 터전이 되어주었다. (고광민 글) 제공=사진예술공간 큰바다영.
고영일 작가가 촬영한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제주 아이들의 모습. 제공=사진예술공간 큰바다영.
서귀항에서(1965년). 제주도 갯가는 화산섬답게 돌이 많았다. ‘빌레’(너럭바위)와 돌멩이에는 바다풀이 무성하였고, 봄이 되면 바다풀을 먹고 자라는 ‘보말’(고둥), ‘구젱이’(소라) 등이 몰려들었다. 서귀항 갯가에는 아이들도 저마다 ‘구덕’(바구니)을 들고 갯가로 몰려들었다. (고광민 글) 제공=사진예술공간 큰바다영.
고영일 작가가 촬영한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제주 아이들의 모습. 제공=사진예술공간 큰바다영.
고영일 작가. 

리석 고영일(1926~2009)은 제주에서 태어나 목포상업, 혜화전문 문학과, 서울신문학원 전수과를 마쳤다. 신성여고 교사, 제주신보 편집국장, 해병대 종군보도반원, 제주문화방송 총무부장, 제주와이즈맨 초대회장, 대동산업 대표 등을 역임했다.

제주카메라클럽 창립회원이자 고문을 맡았고, 한국사진작가협회 자문위원, 한국창작사진가협회 감사, 제주도미전 초대작가, 경기도미전 초대작가로 활동했다. 1990년 제주도 문화상을 수상했다.

사진 관련 이론서·평론집 등을 남겼고, 1955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네 번의 개인전, 두 번의 초대전을 가졌다. 2011년에는 고영일 2주기 추모사진전이 돌문화공원에서 열렸다. 아들 고경대 전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장이 아버지 사진 속 같은 장소를 찾아가 촬영한 전시도 연 바 있다.

사진예술공간 큰바다영瀛
제주시 만덕로 11번지 2, 3층
070-4246-5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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