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18문학상 본상, 4.3 문상길 중위 다룬 안상학 시인 수상 영예

시집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로 올해 5.18문학상 본상을 수상한 안상학 시인. 사진=안상학, 알라딘. 

제주4.3 당시 학살 주범으로 손꼽히는 박진경 연대장을 암살한 문상길 중위. 23살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문 중위의 흔적을 찾아 시로 남긴 안상학 시인이 5.18문학상을 수상했다.

안동 출신인 안상학 시인은 “그동안 4.3을 위해 제주도민들이 많이 애쓰셨는데, 뭍것(육짓것) 가운데 하나로서 미약하게나마 동참하자는 의미”라며 겸손한 수상 소감을 밝혔다.

5.18기념재단은 22일 “올해 5.18문학상 본상에 이시백 장편소설 ‘용은 없다’와 안상학 시집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2020)이 공동 수상작으로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5.18문학상은 ‘오월문학의 저변을 확대하고 오월문학 창작활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참신한 문학작품’을 수상하는 상이다. 신인작가를 발굴하는 취지로 2005년부터 시작했는데, 기성작가를 대상으로 하는 ‘본상’은 2016년 추가 제정됐다.

올해는 5.18기념재단, 계간문학들, 한국작가회의가 공동 주관했다. 한국작가회의 전국 13개지회, 작가, 평론가로 구성된 추천위원 70인이 본상 후보작 9권을 심사했고 최종 두 작품을 공동 수상했다. 올해 본상 수상 작가에게는 상금 1000만원과 상패를 수상한다.

5.18문학상 본상 심사위원회(위원장 윤정모)는 안상학 시인 수상작에 대해 “세상의 저 낮은 곳에서 고통스레 상처받은 뭇 존재와 함께 아파할 뿐만 아니라 저 끝 모를 삶의 심연과 바닥을 응시하며 솟구치는 신생의 정동이 감돌고 있다”면서 “이것은 ‘언어절(言語絶)’의 참화를 겪은 4․3과 5.18, 그리고 세월호의 작고 가냘프고 힘없는 뭇 존재들의 삶과 언어에 겸허히 다가가는 시편들에서 심화되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특히 “4․3문학을 한층 진전시키고 있다”고 강조하며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자연스레 시적 감동으로 노래하고 있다. 좋은 시의 존재 이유를 만난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시인은 새 책에 실린 50편 가운데 4.3 작품으로만 10편 가까이 수록할 만 큼 4.3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 중에서 실존 인물인 故 문상기 중위를 다룬 ‘기와 까치구멍집’은 실존 인물의 행적을 조사하는 노력이 더해져 제주 문학계에서 화제가 된 바 있다.

기와 까치구멍집
안상학

내가 한 일은 다만 
1948년 그 사내가 안동 사람이라는 사실을 증명한 것

제주 도민을 토벌하라는 명령을 내린 지휘관을 암살한,
국군이 국민에게 결코 총부리를 겨눌 수 없다던
대한민국 제1호 사형수 문상길 중위
고향이 어디인지 누구도 알 수 없었던 
역사의 뒤안길에 묻힌 향년 스물셋 사내, 고향은 안동

내가 한 일은 다만 그 사내의 내력을 찾아낸 것

임하댐 수몰된 안동 마령리 이식골 
남평 문씨 종갓집 막내아들, 그 사내가 살던 곳 
그 사내가 떠난 곳,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곳
사내처럼 사라진 마을, 흉흉한 소문 떠도는 
쉬쉬대며 살아온 일가붙이들 산기슭에 남은 곳

내가 한 일은 다만 그 사내의 사진 몇 장 찾은 것

소년처럼 해맑은 사내의 마지막 웃음  
두 손 철사로 묶인 채 나무 기둥에 결박당한 몸
가슴에는 휘장 대신 표적, 흑백사진 붉은 피는
두 눈 가린 채 목이 꺾인 사내의 최후 진술;
내 비록 미군정 인간의 법정에서는 사형을 받고 사라지나
공평한 하늘나라 법정에 먼저 가서 기다릴 것이다

내가 한 일은 다만 그 사내가 살던 집을 찾아낸 것

당당하게 살아남은 그 사내의 흔적
300년 문화재 기와 까치구멍집 건재한 사내의 생가
수몰을 피해 남후면 검암리로 옮겨 앉은 남평문씨 종가
그를 기다린 40년 고향을 뒤로하고 
1988년 옮겨 앉은 낯선 땅 32년, 기다리고 기다린 
72년 만에야 불귀 주인 소식 전해들은 까치구멍집 

무자년 사내가 가고 72년 만에 내가 한 일은 다만 그의 흔적을 찾은 것일 뿐, 고작 대문간에 막걸리 한 잔 올리고 그의 죽음을 전하는 일이었을 뿐, 그 사이 하늘나라 법정에서 받아놓았을 그 사내의 판결문을 이 집 우체통에 전해주는 일은 그 날 이후 남겨진 모든 사람들의 몫이라고 생각하며 음복주를 마셨다. 경자년 경칩 무렵, 복수초가 까치구멍집 화단에 피어 있는 날이었다.  

안상학 시인은 26일 [제주의소리]와의 통화에서 '기와 까치구멍집' 탄생 배경이 이규배 제주4.3연구소 이사장의 제안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1월 4.3평화문학상 심사를 위해 방문했다가 뒷풀이 자리에서 이규배 이사장으로부터 ‘문상길 중위가 안동 출신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마침 당신 고향도 안동이니 흔적을 찾을 수 있냐’고 제안을 받았다. 나도 몰랐던 내용이었는데, 얼핏 생각해보니 이름 석 자 가운데 ‘문', '상’이 들어가는 내 주변 동창도 여럿 있었다. 문상길 중위가 안동 집안사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제안을 수락하고 수소문에 나섰다”고 계기를 설명했다.

종친회를 뒤지며 조사한지 한 달 만에 찾은 문상길 중위의 흔적. 하지만 현실은 더욱 비참했다. 

시인은 “종친 분들을 만나 대화해보니 문상길 중위가 4.3이 아닌 여순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알더라. 문상길 중위가 사형된 이후,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연좌제뿐만 아니라 집안에서 문상길 중위와 비슷한 길을 걸었던 사람들까지 고초를 겪고, 한국전쟁 전후 보도연맹으로도 (집안 사람들이) 희생 당했다는 사연을 접했다”면서 “그래서 문상길 중위가 어떤 분이었는지 직접 설명해드렸다. 개인적으로 이제는 문상길 중위에 대해 재평가를 할 때가 왔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문상길 중위의 생가는 댐 건설을 피해 이전하면서 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검암리에 현재까지 남아있다.

문 중위에 대한 행적을 최초로 밝힌 시 '기와 까치구멍집'은 발표 이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시인은 “문상길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4.3때 어떤 일을 했는지 정도만 알려졌고 출신이나 삶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물이 나오고 나서 제주에 있는 동료 작가들이 엄청난 반응을 보여줬다. 역사학자들의 연락도 받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촬영한 문상길 중위 생가인 기와 까치구멍집.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69호로 지정됐다. 제공=강덕환.
지난해 8월 촬영한 문상길 중위 생가인 기와 까치구멍집.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69호로 지정됐다. 제공=강덕환.
지난해 8월 촬영한 문상길 중위 생가인 기와 까치구멍집.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69호로 지정됐다. 제공=강덕환.
지난해 8월 촬영한 문상길 중위 생가인 기와 까치구멍집.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69호로 지정됐다. 제공=강덕환.

시인은 2002년 제주를 처음 방문했다. 제주가 아닌 타 지역 출신을 낮춰 부르는 ‘뭍것(육짓것)’이라는 용어가 매우 인상 깊었다고 기억한다. 그는 “그 단어 속에는 모든 타 지역 사람이 역사적인 간접 가해자라는 인식이 담겨 있지 않느냐. 역사적 부채의식을 느끼는 용어에 굉장한 충격을 받았고, 4.3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4.3과의 인연을 풀어냈다.

그 뒤로 김수열 시인이 제4회 오장환문학상을 수상할 당시 ‘김수열론’을 쓰고, 이종형 시인의 시집 ‘꽃보다 먼저 다녀간 이름들’ 발문도 쓰고, 4.3 당시 안동형무소에 수감된 제주 여성들에 대해서 알아가면서 점점 4.3과 제주와 가까워졌다. 그래서 문상길 중위를 만나게 된 인연은 “운명적인 사건이 아닌가 싶다”라는 소감을 남겼다.

시인은 ‘시집 발표와 이번 수상으로 4.3을 기억하는 제주도민들이 고마움을 느낄 것 같다. 당신을 아는 도민과 모르는 도민 모두를 포함해 제주도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그동안 많이 애쓰셨다”고 답했다.

그는 “도민들이 오랫동안 4.3을 위해 애쓰신 것을 옆에서 지켜봤다. 내 시집은 뭍것 가운데 하나로서 미약하게나마 동참하자는 의미로 더한 것이다. 알이 깨지려면 안에서도 노력해야 하지만 밖에서도 힘을 함께 할 때 새 생명이 비로소 온전히 새로운 세상으로 나온다. 이번 기회로 4.3을 기억하는, 기억하려는 모든 제주도민들에게 조금이나마 같이 하고 싶다는 마음을 전한다”고 연대의 뜻을 전했다.

안상학 시인은 1962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1987年 11月의 新川’이 당선됐다. 시집 ▲그대 무사한가 ▲안동소주 ▲안상학 시선 등을 펴냈다. 동시집 ‘지구를 운전하는 엄마’, 평전 ‘권종대-통일걷이를 꿈꾼 농투성이’, 시화집 ‘시의 꽃말을 읽다’도 펴냈다. 고산문학대상(2015), 권정생 창작기금(2016), 동시마중 제2회 작품상(2018), 5.18문학상(2021)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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