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노동문제 해결은 우리 사회 모두를 위한 과제 / 김효철

소리시선’(視線)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글

투표는 민주주의 꽃이라 한다. 대부분 민주주의 사회는 투표제도를 운영하고 유권자는 공정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자로서 대표를 뽑거나 주요 정책을 결정한다. 

하지만 민주주의 꽃인 투표행위가 늘 공적 목적에 충실하지는 않는다.

유권자들은 철저하게 비밀이 보장되는 0.5㎡ 공간에서 억눌렸던 감정과 불만, 욕구를 담아 선택한다. 지난 4월 7일 서울과 부산 보궐 선거는 정권 심판이라는 이름으로 요구와 욕망이 반영된 선거다.

지난 선거 결과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중 하나는 부동산 문제였다.

집을 가진 사람들은 규제 강화로 재건축을 못해 개발이득이 제한된데 불만이고 집을 못 가진 사람들은 부동산 가격이 올라 집 마련이 힘들다고 불만이다. 분노는 집권당과 정권에 향하는데 집권 세력은 답을 내놓지 못했다. 어쩌면 이 두 가지 욕망을 채울 답은 처음부터 없었다.

지난 보궐 선거는 현재 우리 사회 분위기가 반영된 한 사례일 뿐이다. 이미 우리 주변에는 ‘영끌 투자’란 이름으로 부동산과 주식, 가상화폐에 대한 투자 열기가 휩쓸고 있다. 여전히 찬반 논란이 가시지 않는 제2공항 문제도 제주경제 발전이라는 공익성 포장 뒤에는 사사로운 욕구들이 존재하기 마찬가지다.

부에 대한 욕구와 이를 얻기 위한 노력을 탓할 수는 없다.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담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인간이 가진 이기심을 부를 창출하고 사회를 발전시키는 힘이라 정의했다. 종교가 지배하던 중세시대 부도덕한 존재로까지 비판받던 부자들에게 도덕적 족쇄를 풀어주고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이론 토대다.

이후 산업혁명을 거치며 자본주의는 짧은 기간에도 인류 역사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성장과 함께 불평등이라는 가장 어렵고 본질적 문제에 부딪혔다. 우리나라도 대표적 불평등 국가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알고 보니 우리도 선진국’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게 경제 규모나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있어 딱히 우리가 부러워할 나라가 있나 싶을 정도로 성장한 것은 사실이다. 경제만 보면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은 약 1조5867억 달러로 세계 10위다. 1인당 국민총생산도 3만1497달러로 25위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고 더욱 불안한 삶을 산다. 경제는 성장하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하고 힘들어 한다. 각종 불평등 지표는 나아지지 않고 있다. 청년은 일자리를 고민하고 노동자는 근로빈곤층으로 살아가다 노인빈곤이라는 수렁으로 빠져든다. 장래가 불안하니 출산율은 계속 낮아지고 자살률은 여전히 높다.

열심히 일해도 임금보다 더 빠르게 오르는 집값과 물가로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로빈곤층이 일상화됐다. 한 사회가 얼마나 건강하고 지속가능한지는 노동을 얼마나 존중하는지에 달려있다. 그러기에 노동문제 해결은 노동자를 위한 것이 아닌 우리 사회 모두를 위한 과제다. ⓒ제주의소리
열심히 일해도 임금보다 더 빠르게 오르는 집값과 물가로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로빈곤층이 일상화됐다. 한 사회가 얼마나 건강하고 지속가능한지는 노동을 얼마나 존중하는지에 달려있다. 그러기에 노동문제 해결은 노동자를 위한 것이 아닌 우리 사회 모두를 위한 과제다. ⓒ제주의소리

불평등 발생에는 여러 원인이 있으나 노동 소득과 자산 또는 자본소득이 갈수록 벌어지는 차이를 주목한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만 잘 알려진 아담스미스가 경제학 아버지로 불린 데는 노동가치가 국부를 이루는 원천이라 정의한 영향이 크다. 오랜 경제활동에서 인간은 노동을 통해 생활과 축적을 이뤄왔다.

우리나라를 보자. 상대적으로 노동 의존이 컸던 산업발전 시기 구로공단을 비롯한 산업 현장과 멀리 중동까지 가서 땀 흘려 번 돈이 국가 경제 성장 밑거름이 됐다.

자본주의 초기 생산성 향상은 노동소득 상승으로 이어지며 노동자들도 경험하지 못한 부를 누리고 사회 불평등 지수도 개선되는 시기도 있었다. 물론 노동조합이라는 노동자들이 힘을 결집하는 조직이 존재하면서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흔히 신자유주의로 불리는 자유경쟁사회가 보편화한 현재 자본주의는 더 이상 낙수효과를 보여주지 못했으며 성장은 곧 불평등이 되고 있다.

불평등은 노동소득과 자본소득간 차이에서 나타난다. 

지난 20년간 노동소득은 완만한 증가를 보였으나 자본소득 증가세는 노동소득을 앞지른다.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 넘어섰고 심지어 경제 하락에도 자본은 수익률을 높이며 부를 축적해왔다. 더욱이 상위 10%가 차지하는 소득집중도가 50%에 이르며 소득 불평등은 커지고 있다. 시장이 불완전하거나 불평등해서가 아닌 시장 자체가 불평등 원인이 되고 있다. 경제적으로 성공한 선진 자본주의에서 양극화가 지속하고 심화한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소득양극화가 커질수록 노동은 점점 초라해지고 사라지고 있다.

한 때는 노동을 통해 경제발전도 이루고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과 자부심이 힘든 노동을 지탱해왔다. 대학나무라 부르던 감귤 농사만으로도 생활하고 부를 축적할 수도 있었다. 교육에 투자해 좋은 기업에 취업하는 것도 선택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노동을 통해 부를 쌓는 것은 일부에게나 가능한 시대가 됐다. 부동산이나 주식 등 투자 가치가 있는 자산이 없다면 영원히 패배자로 산다는 전혀 다른 믿음이 지배하는 사회다. 불평등이 일상화한 사회에서 주식 투자나 부동산 투자는 어쩔 수 없는 탈출구가 되고 있다. 

인류 역사는 인간 행복을 위해 발전해왔다. 그럼에도 노동하는 인간으로서 누려야할 가치와 행복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노동자는 불안한 노동환경에 살고 있다. 경제 규모와 달리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가운데 두 번째로 길다. 산재비율은 가장 높고  비정규직 비율은 평균보다 부배 많다.  

열심히 일해도 임금보다 더 빠르게 오르는 집값과 물가로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로빈곤층이 일상화됐다. 제주에서도 3.3㎡ 당 2,000만원이 넘는 아파트값이 현실이 된 요즘 청년들에게 열심히 일해서 내 집을 마련하는 얘기는 분노만 불러온다. 첫 집을 마련하는데 걸리는 기간은 평균 8년으로 전국에서 가장 오래 걸린다. 다행히 물려받은 자산이 있다면 희망은 있으나 이미 상위 1% 부자가 우리나라 사유지 절반이상을 독점하는 사회다.

곧 131주년 노동절을 맞는다.

한 사회가 얼마나 건강하고 지속가능한지는 노동을 얼마나 존중하는지에 달려있다. 노동 존중은 곧 노동 주체인 인간에 대한 존중이고 협력과 연대로 살만한 사회를 만드는 출발이다. 

소수에게 편중되고 세습하는 자본보다는 인간 누구나 타고난 권리로서 누리는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가 우리가 가야할 더 평등하고 인간다운 사회임은 명확하다.

김효철 (사)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상임대표 ⓒ제주의소리
김효철 (사)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상임대표 ⓒ제주의소리

그러기에 노동문제 해결은 노동자를 위한 것이 아닌 우리 사회 모두를 위한 과제다. 불평등 완화를 위한 분배정책을 비롯해 최저임금 인상 문제나 비정규직 문제, 건강하게 퇴근할 권리를 포함한 노동 환경을 바꾸는 수많은 과제가 남아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이자 의무인 노동이 다시 희망이 되고 떳떳한 이름이 되는 사회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가?

노동자였던 우리, 노동자인 우리, 앞으로 노동자일 우리가 또다시 노동절에 스스로 물어야 할 질문이다. / 김효철 논설위원, (사)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상임대표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