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노뜰 ‘침묵’ 

폭력은 눈으로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생명체에게 심대한 변화를 일으킨다. 작고 귀여운 강아지마저 학대에 시달렸다면 애정 어린 손길에도 내면의 공포로 울부짖는다. 사람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어릴 적 경험과 기억은 자신도 모르게 평생에 걸쳐 영향을 끼친다. 만약, 그런 폭력이 집단과 공동체를 대상으로 이뤄진다면 어떨까. 

덴마크 영화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가 연출한 2014년 개봉 다큐멘터리 영화 ‘침묵의 시선(The Look of Silence)’은 집단을 대상으로 벌어진 거대하고 참혹한 폭력의 흔적을 쫓아간다. 특히 피해자, 가해자들의 각기 다른 기억과 대응을 정면으로 담아내는 당돌한 시선은, 이 작품에게 베니스국제영화제(2014) 5관왕이라는 영예를 안겨줬다. 

1965년 인도네시아에서는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다. 군사 정권은 독재에 반발하는 시민들에게 ‘공산당’이라는 멍에를 덧씌우고 학살을 자행한다. 1년 동안 전역에 걸쳐 희생된 인원은 약 100만명. 영화는 학살의 광풍 속에 형 ‘람리’를 잃어버린 ‘아디’의 눈으로 가해자들을 찾아다닌다. 아디가 하나 둘 가해자들을 만나면서 영화는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준다. 바로 같지만 전혀 다른 ‘침묵’이다.

목전에서 아들 람리를 민병대에게 빼앗긴 어머니는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디의 행보에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면서, 람리가 떠난 뒤 이빨이 모두 빠져 지금은 치매 환자인 남편을 묵묵히 뒷바라지 한다. 그저 “내 아들을 죽인 사람들의 아들, 손자까지 똑같이 고통 받기를 날마다 기도한다”고 읊조릴 뿐이다. 그녀의 침묵은 마을 학살에서 도망쳐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들뻘 남자를 만나면서 터져 나오는 울음으로 깨지고 만다. 

마을 학살을 주도한 민병대 간부의 가족들은 아디를 마주하고 나서부터 침묵하기 시작한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아버지이자 남편이 학살을 자랑스럽게 설명하는 영상을 보면서 눈동자는 싸늘해지고 입은 굳게 닫힌다. 침묵은 오래 가지 않는다. 자신들은 몰랐던 일이라며 이내 화를 내고, 감독에게 ‘대체 왜 이러냐’며 결국 인터뷰를 거부하고 만다. 

누군가는 강요된 침묵, 누군가에게는 거부하고 싶은 침묵. 같은 상황 속에서 상이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침묵은 비단 인도네시아 대학살만의 것은 아니다. 41년 만에 공수부대원이 사과했지만 아직도 책임자로 지목되는 인물은 철면피인 광주5.18,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야 희생자들이 조금씩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제주4.3. 학살 속 침묵의 두 얼굴은 세계 어디라도 공통분모에 가깝다.

강원도 극단 ‘노뜰’(대표 원영오)이 제주에서 여는 연극 ‘침묵’ 역시 침묵의 이면을 민낯으로 보여준다. 나아가 밀도 높은 연출과 응축하는 연기, 생동감 있는 음악, 몰입을 가중시키는 공간의 특성까지 더해지면서 작품은 “전쟁과 학살, 죽음의 기록”을 써내려 간다. 

연극 '침묵' 제작진과 출연진들. ⓒ제주의소리
연극 '침묵' 제작진과 출연진들. ⓒ제주의소리

# 학살, 가혹하게 마구 죽임

노뜰은 이번 작품에 대해 “전쟁이라는 명목 아래 자행돼온 무차별적 학살과 죽음의 배경, 상황을 다양한 연극적 구성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한다.

▲1장 비통 ▲2장 가해자 ▲3장 학살 ▲4장 구덩이 ▲5장 피에타 ▲6장 위무 ▲7장 귀로까지. ‘침묵’은 “한 권의 책을 읽는 듯 한 구성”으로 학살의 과정을 순서대로 펼친다.

관객이 입장하면서 공연장을 울리는 흥겨운 악기 연주. 배우 5명은 정교하진 않아도 제각각 악기를 들고 연주를 펼친다. 그렇게 떠들썩한 짧은 공연은 이내 차분해지면서 배우 한 명 한 명이 차례대로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자리로 전환한다. ▲전쟁의 슬픔 ▲베트남 전쟁 ▲제5도살자 ▲보헤미아의 우편배달부 등……, 전쟁에 대한 책을 각자 읽고 느낀 점을 나누는 분위기를 알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흥미로운 건 이 장면에서 배우들의 말은 정교하게 짜인 극 대사와는 다른 느낌이다. 관객들은 ‘이게 연기인지 아닌지’ 아리송하게 느낄 만큼 일상의 느낌으로 대화를 나눈다. 

“인간의 존엄성을 다시 생각했다”, “우리에게도 가해자의 얼굴이 있지 않을까?”, “내가 가해자 쪽에 속해 있다면 내게도 원죄가 있나?” 

마치 독서 토론회처럼 각자 느낀 점을 편하게 주고받으면서 연극은 ‘앞으로 무엇을 다룰 것인지’ 예고한다. 그러나 방식은 전혀 다르다. 종이에 찍힌 문자를 배우의 음성으로 전해주면서 시작한 ‘침묵’은 곧 ‘몸의 언어’로 전환한다.

1장이 ‘비통’으로 시작한 이유는 아마도 전쟁과 학살의 가장 큰 특징은 고통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에 기반 하지 않을까 싶다. 몸부림치고 움츠리면서 고통스러워하는 배우들의 몸짓은 끔찍한 행위로 발생하는 모든 고통들을 함축해 놓는 듯하다. 그것은 육체적 반응의 단순한 고통보다는 ‘몹시 슬퍼서 마음이 아프다’는 감정(悲痛, 비통)도 함께 포함한다. 

‘2장 가해자’는 비통의 원인을 찾는 흐름으로 읽힌다. 무엇이 그들을 비통하게, 몸부림치게 만들었나. ‘침묵‘은 건장한 남자 배우 한 명이 군인 정복(正服)을 입고, 소총을 잡는 동작을 취하면서 자연스럽게 공권력이라는 존재를 암시한다. 군인과 다소 거리를 둔 나머지 4명. 양 쪽은 서로 다른 셈을 시작한다. 군인은 격발하면서 숫자가 올라가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이들도 제각각 숫자를 센다. 십 단위, 백 단위까지 올라가는 셈. 이어 달리기 마냥 솟구치는 셈은 군인의 한 마디로 끝을 낸다.

"3만"

1에서 30,000이라는 수치까지 얼마나 많이 방아쇠가 당겨졌고, 얼마나 많이 무기가 휘둘러졌나. 얼마나 많은 피가 흘렀나. 작품은 셈과 격발이라는 행위를 조합하면서 제주4.3의 ‘공식적인’ 희생자로 기록된 3만명이란 무게를 끄집어 올린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4.3을 읽고 쓰고 이야기하면서 자주 쓰는 ‘3만’이란 단어가, 실제로는 얼마나 처참했을지 다시 한 번 상상하게 만든다. 나아가, 우리가 숫자에 익숙해지면서 본질적인 고통을 망각하지 않았는지도 일깨운다.

군인의 격발은 이제 더 큰 모습의 폭력으로 나타난다. 3장 구덩이에서 배우들은 연발 사격을 입으로 소리 낸다. 소리와 소리가 겹치면서 소리는 더욱 두터워지고 많은 옷가지와 신발이 널부러진 무대는 어느새 학살터 구덩이로 바뀐다. 총소리가 이어지면서 쓰러지는 배우들. 동시에 조명은 얇게 조정하면서 발사된 총알 궤적을 묘사한다. 고통스럽게 뒤틀리는 배우들 위로 찬송가 ‘Amazing Grace(어메이징 그레이스)’가 연주된다. 놀라운 신의 은총을 칭송하는 노래, 그것도 개신교와 미국을 대표하는 곡이 울러 퍼지는 동안 시민들에게는 총알 세례가 쏟아진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극단적인 대비다. 

몸부림 말미 배우 한 명은 의자를 감싸 안고 서서 관객들 천천히 돌아본다. 영아처럼 소중하게 품은 의자를 보여주며 마주치는 눈빛에는 ‘이곳은 작은 생명의 씨앗마저 짓이겨진 죽음의 구덩이, 당신의 자리는 어디인가,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나’라는 간절한 호소가 담겨있는 듯하다.

# 학살, 그 후

3장까지 폭력을 묘사·고발하는 데 집중한 ‘침묵’은 사후 단계로 진입한다. 어쩌면 살아남았다는 이유만으로 극도의 압박에 시달리며 보낸 힘든 시간 속에서, 침묵을 깨뜨리고 진정한 구원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살핀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여자, 그를 다른 여자가 일으킨다. 잡아서 세우고 안고 끌어본다. 함께 걷다가 쓰러지면 다시 일으켜 잡아서 업어본다. 힘겨운 몸부림으로 애쓰던 여자는 어느새 등이 굽어버렸다. 이런 과정에서 의자에 앉아있는 남자 배우 3명은 굳은 표정으로 아무 소리도 미동도 없이 지켜만 본다. 

학살 이후 생존 피해자들은 육체적·신체적·사회적 트라우마에 시달리지만, 가해자들의 경직되고 고압적인 태도는 그들의 고통을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결국 피해자를 위로하는 것은 같은 피해자들. 상처 입은 존재가 다른 상처 입은 존재를 보살피는, 아니 보살필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아픔은 낫지 않는다. 영화 ‘침묵의 시선’에서 인도네시아 대학살 가해자 측이 피해자의 호소에 입을 다물었던 것처럼, ‘5장 피에타’ 속에서 남자 배우들의 냉정한 시선은 현실 고발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다음 ‘6장 위무’는 진정한 위무·해원의 필수 조건을 말한다. 앞서 등이 굽어버린 여자는 그래도 있는 힘을 짜내 바닥에 깔린 옷가지와 신발을 끌어안는다. 옴팡밭 학살터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순이삼촌이 평생을 그 순간, 그 자리에 묶인 채 끝내 최후를 맞이하듯이, 등이 굽은 여자는 여전히 ‘그날’의 기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피해자들을 상징한다. 다른 여성이 나서서 눈을 가리고 붙잡아도 몸부림은 멈출 수 없다. 서로를 껴안으며 흐느끼는 장면은 진정한 위무를 이루지 못한 채 끊임없이 고통 받는 5장과 동일하지만, 어느새 앉아있던 남자 2명이 일어나 두 여인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어깨를 감싼다. 남자들이 여인들을 각각 들어 의자로 옮긴 뒤, 무릎까지 꿇는 진행은 가해자가 침묵을 깨고 나설 때 위무가 더 큰 힘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가해자가 먼저 나서는 반성이 무엇보다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점도 함께 떠올린다. 그럼에도 남자 3명 가운데 한 명은 계속 앉아서 침묵을 지키는 연출은 현실과의 괴리를 일깨워주는 장치로 보인다.

그렇게 위무의 길 위에서 영령들은 다시 본래 자리로 돌아간다. 6장 귀로에서 내내 맨발이던 배우들 손에는 신발이 들려있다. 짝이 맞지 않고 어린이용부터 성인까지 크고 작은 것들이 섞여있다. 천천히 움직이며 관객을 향해 뒤돌아보는 모습에서는 ‘무대 안으로 달려가 저들에게 신발을 신겨주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칠 만큼 여운을 남겼다.

# 몸짓과 절제된 말의 조화

연극 ‘침묵’은 학살의 순간과 그 이후 생존자들의 시간까지 순서대로 밟아가는 진행 위에서 강렬한 상징을 구현해내는 몸짓 연기로 상당한 밀도를 만들어간다.

배우들의 몸부림은 속도와 강도를 조절하면서 온몸으로 고통을 토해낸다. ‘3만’이라는 외침, 날것의 느낌으로 입에서 뿜어낸 총성 소리, 단말마의 비명처럼 피해자 여자가 끝내 토해내는 울음처럼 극 안에서 몇 없는 배우들의 말은 몸짓보다 더욱 절제된 방식으로 쓰이며 메시지를 효율적으로 각인시킨다.

여기에 배우와 관객이 작은 숨소리마저 공유하는 밀접한 무대 환경까지 더해지면서, 관객은 70분 공연 시간이 흐를수록 서서히 짓눌리는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기에 마지막 귀로에서의 여운은 더욱 길게 오래 남는다. 

‘침묵’ 출연진은 이은아, 주동하, 홍한별, 송정현, 양승한이다. 크게 볼 때 젊은 배우 3명, 중견 배우 2명으로 나뉘는데, 그들 사이에서 힘의 차이를 느끼는 장면이 몇몇 있었지만, 메시지를 보고 느끼는데 있어 조화를 잘 이뤘다고 본다. 그 중에서도 피해자의 감정을 온전히 감당한 이은아의 역할이 인상 깊다.

‘침묵’은 어떤 기계적인 음향, 음악 없이 오로지 현장에서의 피아노 연주만 존재한다. 음악이 더욱 적극적인 역할로 쓰인 3장 구덩이를 비롯해, 장면마다 감정과 이야기를 풀어낸 채진솔의 피아노 연주는 단순함 이상의 힘을 오롯이 증명했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틀고 도약을 준비하는 제주 간드락소극장에게도 이번 작품은 가능성을 확인한 뜻 깊은 자리일 것이다.

# 학습의 중요성

'침묵'은 노뜰의 전쟁 연작 두 번째 작품이다. ▲국가(2019~2020) ▲침묵(2021) 그리고 올해 쇼케이스를 가진 'Your Body' 순이다. 노뜰은 본 공연에 앞서 지난해 2월 제주에서 '침묵' 쇼케이스를 가진 바 있다. 당시 제작진과 배우들은 제주4.3에 대해 보고 배우면서 작품의 토대를 쌓아갔다. 쇼케이스와 달리 본 공연은 4.3을 직접 나타내는 비중이 크다고 볼 순 없지만, 원영오 연출의 말대로 “본질”에 다가서는 접근은 4.3 뿐만 아니라 국내외 아픈 역사까지 공감할 수 있는 구조로 확장했다.

‘침묵’ 배우와 제작진은 전쟁과 학살에 대한 책, 자료들을 보고 토론하면서 작품 내용을 채워갔다. 품평회를 연상케 하는 작품 도입부가 나머지와 사뭇 느낌이 다른 이유는, 배우마다 느낀 점을 자유롭게 말하는 열린 연출이기 때문이다.

노뜰 뿐만 아니라 광주5.18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연극 ‘휴먼푸가’에서도 나타났지만, 역사에 대해 접근하는 극 예술 창작에 있어 학습은 당연한 말이지만 매우 중요하겠다. 탐라미술인협회나 제주작가회의가 4.3 예술에 있어 끈기 있게 나아가는 이유도 매해 빠뜨리지 않는 현장 답사와 학습에 있다고 본다. 현실적으로 4.3을 다루는 제주 지역 극예술의 움직임은 소수에 가깝지만, 이런 초청 공연으로 자극이 된다면 제주 관객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 “다양한 공연 언어를 탐구하고 발견하는” 극단을 마주하는 경험은 무척 신선하다. 

침묵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역사는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

제주4.3이 있다. 광주5.18이 있다. 여순도 있다. 보도연맹도 있다. 대만,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근·현대 시기 세계 각지에서 벌어진 무수한 학살들이 있다. 오늘 날 중국 신장·위구르와 홍콩이 있다. 그리고 미얀마가 있다. 연극 ‘침묵’은 이런 모든 고통의 역사를 품을 수 있는 서사와 예술 언어로 관객과 만난다.

‘침묵’은 4월 29일부터 5월 2일까지 오후 8시마다 간드락소극장에서 공연한다. 

문의 : 033-732-0827, 인터파크 티켓( http://ticket.interpark.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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