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분묘기지권 있어도 지료 지급 의무 인정...밭-오름 등 제주 곳곳서 분쟁 우려

이 사진은 기사의 특정사실과 관련 없습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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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기존 관습법을 뒤집고 토지주의 요구에 따라 지료(地料), 즉 묘지 사용료를 내야 한다고 해석하면서 장묘문화가 발달한 제주에서도 후폭풍이 예상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토지주 A씨 등이 분묘 기지권자 B씨를 상대로 낸 지료 청구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소송의 발단은 A씨가 2014년 경기도 이천시의 한 임야 4969㎡의 지분을 취득하면서 시작됐다. 해당 토지에는 1940년과 1961년에 고인이 된 B씨의 조상 묘 2개가 있었다.

B씨는 분묘기지권을 행사해 왔지만 새로운 토지주가 된 A씨가 토지 사용료를 요구하면서 결국 소송전으로 번졌다. 

결과는 토지주의 승리였다. 대법이 25년만에 기존 판례를 뒤집으면서 벌어진 일이다. 오랜 관습을 뒤집는 대법원의 판단까지도 꼬박 8년의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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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1996년 다른 사람 소유의 토지에 허락없이 묘지를 설치했더라도 20년간 평온하고 공연하게 묘지를 점유했다면 지상권과 유사한 관습상 분묘기지권을 인정하도록 했다.

분묘기지권은 토지 소유자의 승낙 없이 봉분 있는 분묘를 설치해 일정기간이 지난 경우 토지 소유자가 분묘 설치자나 그 연고자에게 분묘의 이장을 요구할 수 없는 권리다.

당시 대법원은 별도의 약정이 없다면 토지 소유자는 사용료를 청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남의 땅에 묘지를 설치하더라도 무상으로 토지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 것이다.

이번 판결로 25년 전 대법원의 판례가 사실상 뒤집혔다. 대법원은 분묘기지권이 고유한 전통과 관습에 근거해 인정된 것일 뿐, 권리 내용이 민법상 지상권과 동일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관습적으로 분묘기지권을 인정한 건 타인의 토지 사용을 허락한 것이다. 땅 주인과 분묘 소유자 중 어느 한 편의 이익만 보호하려는 게 아니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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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결정에 따라 분묘기지권을 얻은 후손이라도 토지주가 사용료를 청구할 경우 지급할 의무가 생긴다. 사용료는 당사자 간 협의로 정하거나 당사자의 청구에 따라 법원이 정할 수 있다.

만일 분묘기지권을 얻은 후손이 사용료를 2년 이상 지급하지 않으면 토지주가 법원에 분묘기지권 소멸을 청구 할 수 있다. 이 경우 강제로 이장을 해야하는 일도 벌어질 수도 있다.

제주의 경우 사유지 곳곳에 묘가 조성된 경우가 많고 부동산 폭등으로 분묘기지권 민원도 적지 않다. 오름에 묘가 대규모로 들어선 사례도 있어, 사유지의 경우 오름 형태까지 바뀔 수 있다. 

토지주가 지료 지급 청구를 하더라도 누가, 얼마를 부담하는지를 두고서도 후손들 간 논쟁이 불거질 수 있다. 

관습법인 분묘기지권에 대한 해석도 시대 흐름에 따라 달라지면서 매장 문화가 발달한 제주에서 분묘 이장과 관련한 후손들의 고민이 한층 깊어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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