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꽃이 필 때
귤꽃이 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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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호의 짧은 글, 긴 생각] 스물 여덟 번째
시간이 지날수록 제주다움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제주출신의 공학자, 이문호 전북대학교 초빙교수가 '제주의소리' 독자들과 만난다. 제주다움과 고향에 대한 깊은 성찰까지 필자의 제언을 ‘짧은 글, 긴 생각’ 코너를 통해 만나본다. / 편집자 주
귤꽃. 출처=제주도청 홈페이지.
귤꽃. 출처=제주도청 홈페이지.

이른 봄, 하얀 수선화가 피고 이어 4월 중순이면 하얀 귤꽃이 핀다. 꽃잎이 5장이다. 

꽃 속에도 ‘피보나치 수열’이 숨어 있다. 피보나치(Leonardo Fibonacci, 1170~1250)는 이탈리아의 수학자다. 우리 주변에 피어 있는 꽃들의 꽃잎 수를 세어 보면 거의 백합류가 꽃잎이 3장, 장미류가 5장, 코스모스가 8장, 크리산 세멈 13장 등으로 돼 있다. 이 외에도 과꽃과 치커리는 21장, 질경이와 데이지는 34장, 쑥부쟁이는 종류에 따라 55장 또는 89장이다. 각 꽃잎의 수를 나열해 보면 3, 5, 8, 13, 21, 34, 55, 89…로 피보나치 수열과 일치한다. 3, 5, 8, 13, 21, 34, 55, 89… 꽃들이 피보나치의 수만큼의 꽃잎을 갖는 이유는 꽃이 활짝 피기 전까지 꽃잎이 봉오리를 이루어 꽃 안의 암술과 수술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 꽃잎들이 이리저리 겹쳐져야 한다. 이때, 꽃잎의 수가 3, 5, 8, 13, …일 때, 꽃잎을 겹치기가 가장 효율적이다. 해바라기 씨가 박힌 모양을 보면, 시계 방향과 시계 반대 방향의 나선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나선의 수는 해바라기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한쪽 방향으로 21열이면 반대 방향으로 34열, 또는 34열과 55열 같이 항상 이웃하는 피보나치 수열의 두 수가 된다. 해바라기가 이렇게 나선형 배열을 하는 것은 좁은 공간에 많은 씨를 촘촘하게 배열하여 비바람에도 잘 견디기 위함이다. 식물들도 어려움을 이겨 내기 위한 생존본능적인 진화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식물 이외에 앵무조개 껍질의 무늬에도 피보나치 수열이 있고, 달팽이 껍질과 여러 바다 생물의 껍질에서도 피보나치 수열을 발견할 수 있다..

제주에서 귤의 흰꽃이 필 때는, 가파도 청보리 밭의 푸름과 싱싱한 자리돔회가 때를 같이한다. 김진경 씨의 글을 보자.

봄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노란 유채꽃과 분홍빛 벚꽃이지만, 봄의 절정을 알려주는 것은 꽃이 아니다. 연둣빛 순에서 시작하여 푸르른 청록색의 절정을 보여주다 황금빛으로 물드는 파노라마 같은 향연을 보여주는 보리, 지금 제주에서 가장 아름답고 친근한 풍경이다. 뭍에서 보리가 제주 봄의 절정을 알려준다면, 바다에도 역시 제주의 봄을 알려주는 제철 생선들이 있다. 시장의 어물전에는 한창 옥돔과 고등어, 전갱이, 우럭, 황돔 등은 물론이요, 멜과 자리돔이 싱싱함을 가득 머금은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비단 생선들만 그러할까, 톳과 미역도 바다의 봄내음을 안고 좌판 위로 올라와 있다. 제주 사람들은 보리가 익어가는 시시각각의 변화를 온 몸으로 받아들이면서 계절의 변화를 체감한다. 보리가 익어가면, 제주사람들은 이제 곧 산과 들에서 보리탈을 보면서, 보리콩 수확이 목전에 왔음을 인지하게 된다. 바다도 마찬가지이다. 보리와 연결되어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는 바다에도 있다.

“자리돔은 보리철이 가장 맛있어. 보리수확이 끝나 가면 자리도 맛이 없지.”

이렇게 제주의 봄은 꽃으로 시작하여 자연스럽게 보리로 이어지고, 보리는 다시 제철 먹을거리로 이어 준다. 제주에서 보리는 그야말로 봄을 알려주는 전령사. 그렇다면 제주 사람들은 언제부터 보리를 먹게 되었을까? 

아니, 언제부터 제주의 보리가 제주사람들의 주식이 되었을까? 이유인 즉, 옛날 못 살았던 시절 이 톳이나 고구마를 넣은 보리밥을 너무도 많이 먹었다. 지금에야 적당히 톳향이 배어들고 오독오독 씹히는 식감을 살리는 정도로만 톳을 넣어 만들어 먹지만, 먹을 것이 넉넉지 않았을 시기, 보리에 고구마를 넣어 밥을 지어 준 어머니가 그립다.

어릴 때 먹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육지에서 보리밥은 거끄러워 먹기가 좀 그렇다. 보리밥은 고향의 보리밥이 최고다. 쌀, 보리, 좁쌀, 콩, 팥처럼 잡곡 식사를 좋아한다. 요즘 같은 봄 날씨에는 자리회가 일품이다. ‘자리 삽서.’ 어릴 때 서광에서 들었던 그 말. 자리회에 얽힌 이야기는 총각 때, 4월말 경 자리회 초대를 받았다. 그게 인연이 돼 같이 늙어 가고 있다. 

# 이문호

이문호 교수는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출신 전기통신 기술사(1980)로 일본 동경대 전자과(1990), 전남대 전기과(1984)에서 공학박사를 각각 받고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서 포스트닥(1985) 과정을 밟았다. 이후 캐나다 Concordia대학, 호주 울릉공- RMIT대학, 독일 뮌헨,하노버-아흔대학 등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1970년대는 제주 남양 MBC 송신소장을 역임했고 1980년부터 전북대 전자공학부 교수,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며 세계최초 Jacket 행렬을 발견했다. 2007년 이달의 과학자상, 과학기술훈장 도약장, 해동 정보통신 학술대상, 한국통신학회, 대한전자공학회 논문상, 2013년 제주-전북도 문화상(학술)을 수상했고 2015년 국가연구개발 100선선정, 2018년 한국공학교육학회 논문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제주문화의 원형(原型)과 정낭(錠木) 관련 이동통신 DNA코드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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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곤 2021-05-30 09:31:12
꽃을 피우려고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피보나치 수열이라니요...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떤 수열로 정리될런지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182.***.***.20

유만형 2021-05-07 17:59:01
@제주도 여행을 할때 귤나무 꽃이 어떨까 호기심이 많았다. 막상 제주에서 늦 봄에 귤나무 연록 잎속에 새하얀 꽃망울을 내미는 청순한 하얀꽃잎을 만났다. 미선나무꽃 같은귤꽃향내가 은은히 주위를 집어삼키는 분위기. 육지에 아카시꽃과 밤꽃 향기가 온천지에 흘러넘치면 긴밤을 그 향기에 취해있던 기억도 되살아난다. 이맘때 귤향기가 현무암 들판을 채우고, 오름 등산때 그 향기에 취하며 산책의 새맛을 느끼기도 했다. 그때가 바다에선 자리돔 세상이라. 모슬포 어느식당에서 자리돔 무침을 시켰는데 얼마나 많이 주던지, 태산같았다. 큰 접시에 수북히 쌓인 자리돔 무침을 먹던 그 추억도 아른거린다. 너무 많아 옆 테이블 나이 비슷한 부부팀에 덜어 드렸더니 좋다고 하던 일이 벌써 오래전의 일화다. 신비한 귤꽃향이 그리워진다.
222.***.***.129

성산읍 2021-05-07 08:35:35
청보리, 자리돔, 톳 등...제주를 상징하는 재료들이죠. 정말 귤꽃이 필 때 쯤이면 자리물회 생각이 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175.***.***.227

권기열 2021-05-06 19:13:11
제주의 보리가 제주사람들의 주식이었다니 옛날 어린시절 보리밥 먹고 자라던 시절이 그립내요. 이글을 읽으면서 꽃잎의 수도 알게 되었고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218.***.***.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