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22) 유월 발바닥 사흘 뜨거우면 누워서 먹는다

* 발창 : 발바닥
* 사을 : 사흘(동안), 삼일(간)
* 지저우민 : 뜨거우면
* 누엉 : 누워서

유월이라 함은 음력 (오)뉴월이니 무척 더운 때이다. 땡볕으로 나들이가 힘들 만큼 연인 뜨거운 날씨가 이어진다.

옛날 우리 선인들은 그런 땡볕 아래라고 나무 그늘에 앉아 땀 들이며 모여 앉아 한담이나 하며 지내지 못했다.

긴긴 여름날 이글거리는 폭염 아래 밭에 앉아 검질(김)을 매었다. 고작 밀짚 패랭이를 쓰고 밭이랑에 눌러앉으면 내리쬐는 뜨거운 볕에 아래선 복사열이 올라와 발을 딛고 오래 앉아 있지 못할 지경이었다. 엉덩이를 움직거려야 할 정도로 여름 볕이 뜨거웠다.

1971년 8월~10월 사이 오라1동에서 촬영한 한천 풍경. 출처=이토 아비토, 제주학아카이브.
1971년 8월~10월 사이 오라1동에서 촬영한 한천 풍경. 출처=이토 아비토, 제주학아카이브.

그래도 눌러앉아야만 했다. 사흘이라 했지만 사흘로 되는 일이 어디 있었으랴. 초불(초벌)에서 두 불, 세 불까지 검질을 매야 한다. 여름 석 달을 두고 제완지(바랭이)며 쇠비늠(쇠비름)과의 싸움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밭을 모면 사람을 안다고 했다. 행여 불더위에 검질 매는 걸 게을리 했다가는 밭이 검질로 무성해 엉망이 돼 버린다. 까딱하다가는 검질로 무성한 묵정밭이 돼 버릴 수가 있다. 금방 일하러 오가는 마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다. 

“어이고, 밧을 그냥 내버렸구나. 저영해여사 농사지영 밥 먹을 염치가 날거라.”
(아이고, 밭을 그냥 내버렸구나. 저렇께해서야 농사지어 밥 먹을 염치가 나겠나.)

이쯤 되면 밭 임자는 게으름뱅이로 낙인찍히게 되고 만다.

여름 밭에 앉아 있으면 위에서 내리쬐는 불볕과 아래서 올라오는 더운 김에 한 시간 견디기기 어렵다. 한 시간이 무언가. 여름해가 얼마나 얄궂게 길고 긴가.

검질 매느라 고생했지만, 고생한 덕에 조나 산디(산도, 밭벼)가 잘 돼 풍년이 든다. 농사는 그야말로 볕과 흙과 농부의 합작품인 게 백번 맞다.

그렇게 가을 수확이 풍성하면 겨울 석 달 다리 죽 펴고 앉아 삼시세끼 거르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 거둬들이기에 따라서 춘궁기, 그 어려운 보릿고개를 어찌어찌 넘길 수도 있었다. 걱정 없이 추운 겨울 한철을 보내는 것이 옛 선인들에게 큰 소망이었다. 또 겨울은 농한기라 잔치는 왜 없었을까. 곳간에 갈무리한 곡식이 있으면 먹지 않아도 배 든든했다. 

그걸 잘 앎으로 여름의 그 뜨거운 볕에도 쉬지 않고 더위와 한바탕의 싸움을 치렀던 것이다. 믿는 것이 이 말이었다. 

‘유월 발창 사을 지저우민 누엉 먹나.’

고진감래(苦盡甘來)란 말은 여기에도 통하겠다. ‘오뉴월 흘린 땀이 구시월에 열음 뒌다’ 했다. 오뉴월에 흘린 땀이 구시월에 열매 된다 함이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