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왓 칼럼] 모든 사람들이 좀 더 나은 삶을 평화롭게 살아가는 제주를 상상하기

편견으로 무장한 이들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여전히 반인권적 발언과 행동을 주저하지 않는 일들을 우리는 종종 목격하곤 합니다. 존재 자체로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들이 있어선 안됩니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난민 등 대상은 다르나 일상 곳곳에서 여전히 차별이나 혐오, 폭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인권문제에 천착한 '인권왓 칼럼'을 격주로 연재합니다. 인권활동가들의 현장 목소리를 싣습니다. [편집자 글]
출처=픽사베이.
부유함이 없더라도 어떤 측면에서는 더 풍요로웠던 과거를 기억하고,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공동체적 삶을 다시 주목하기 시작했다. 출처=픽사베이.

마을에 신작로가 들어왔다. 어릴 적 생각을 해보면, 가끔 식구들 끼니로 ‘지실범벅’이나 ‘감재빼때기’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동네 다른 집들을 보면 특별히 못 사는 집도 아니었지만, 아주 잘 사는 집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는 모두가 다 어렵게 살던 시절이라 먹거리가 그리 풍부하지도 않았고, 입맛에 맞는 음식도 많지 않았었다. 그런 시골 마을에 신작로가 들어오고, 사람들이 하나 둘 자가용을 마련하면서 사람과 상품, 자본은 활발하게 교류되었고, 재산은 늘어갔다. 하지만 사람들은 점차 도시로 떠나갔고, 추석 명절에 북적대던 마을 운동회는 점차 생기를 잃어갔다. 마을이 갈수록 조용해졌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생활이 한결 나아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지금 이 시기, 사람들은 즐거웠고, 인간미 넘쳤던 과거 기억들을 더듬고 있다. 어릴 적 바당에서 자유롭게 잡아먹던 촘깅이와 보말, 너른 들판에서 뽑아먹던 삥이와 꿩마농을 기억하곤 한다. 제주가 나아졌다고 하는데 사람들은 과거의 제주에서 누렸던 다채로운 행복을 기억하면서 그 풍요로움에 대해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돈은 많아졌지만 삶은 더 팍팍해지고 있는 현실에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는 것이다.

어느날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이하 ‘제주특별법’)이 제정되었다. 제주특별법은 제주특별자치도의 제도와 제주사회의 비전을 강하게 표현하는 특별한 법이다. 제주특별법은 현재의 제주를 뒷받침하는 가장 기본적인 근거 법률인 셈이다. 사실 이 법의 핵심은 ‘제주특별자치도’가 아니다. 실제는 제2조에 정의되는 ‘국제자유도시’이다. "사람·상품·자본의 국제적 이동과 기업 활동의 편의가 최대한 보장되도록 규제의 완화 및 국제적 기준이 적용되는 지역적 단위"라는 것이다. 법률의 실제 목적 조항(1조)에 나와 있는 제주의 지역적, 역사적, 인문적 특성, 그리고 자율과 책임, 창의성과 다양성, 고도의 자치권은 모두 제2조에 나와 있는 국제자유도시를 위한 종속적인 수식어로 전락해 버렸다. 환경과 조화를 이룬다고 이야기 하지만 이 역시 환경친화적인 국제자유도시로 수렴되었다. 제주도의 모든 비경제적 요소와 환경은 경제적 상품, 자본 그리고 경제적인 사람들의 교류의 확대와 편의 제공을 위한 부분적 요소로 취급될 뿐 이었다. 더불어 이 법의 최종 목표는 국가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함으로 중앙정부의 목적과 일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실례로 제주특별자치도의 예산·재정적 측면을 고려해보면 여전히 특별자치도라고 하기에는 특별한 점이 별로 없다. 아직도 중앙정부의 예산부서의 통제 하에 있는 것이 많다. ‘제주특별자치도’라고 써놓고 여전히 중앙정부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국제자유도시’라고 읽는 꼴이다. 

신작로를 빼고 부유해지는 것 그리고 ‘국제자유도시’라는 것은 과거 제주 사람들의 기본적인 욕구였다고 생각한다. 4.3의 역사적 아픔은 진실을 가리려는 중앙정부의 압력과 함께 이러저러한 사회적 차별과 배제를 배가 시켰을 것이다. 꼭 그 때문만은 아닐지라도 그로 인한 가난과 설움은 ‘부유해짐’에 대한 욕구를 강화시켰을 것이고, 다른 한편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환경자원은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의 단초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제주사람들의 욕구는 ‘국제자유도시’로 표현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국제자유도시’에 동의했던 안했던 간에 제주사람들은 경제적 부유를 희망했고, 그러한 비전을 어느 정도 수용했던 것 같다. 하지만 ‘부유해짐’에 대한 사람들의 비전은 이제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제주 제2공항에 대한 분분한 사회적 여론은 그러한 점을 잘 드러낸다. 제2공항은 정책 초반기 제주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수용이 되었던 측면이 있다. 하지만 경제적 성장에만 매몰된 정책, 특히 중앙정부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정책에 대해 사람들은 이제 달리 받아들이고 있다. 제주도민의 의사결정권을 주장하고, 제주 환경에 대한 생태적 가치를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부유함이 없더라도 어떤 측면에서는 더 풍요로웠던 과거를 기억하고,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공동체적 삶을 다시 주목하기 시작했다. 

제주 제2공항 논란에서 주목하는 지점이 있다. 바로 도민의사결정권이다. 과거와 달리 제주 사람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결정함에 있어서, 자신들의 주체성과 주체적 의사결정권을 강조한다. 이는 지금까지의 개발에 관련된 정책에서 수동적 입장을 보여 왔던 전반적인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지점이다. 인권의 측면에서 봤을 때, 도민들의 의사결정권 주장은 주민들의 당연한 권리이며, 그러한 권리는 충분하고 적절하게 보장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1986년 유엔 총회에서 ‘발전권 선언’을 결의했다. 이 선언에서 ‘발전권’은 ‘모든 인간이 모든 인권들과 기본적 자유를 최대로 실현하는 경제적·사회적·문화적·정치적 개발에 참여(participation)하고, 기여(contribution)하고, 향유(enjoy)할 수 있도록 부여된 양도불가능한 인권’(발전권선언 제1조 1항)이라고 정의했다. ‘인권으로서 이러한 발전권’의 정의를 통해서 본다면, 제2공항 뿐만 아니라 제주도의 모든 개발의 정책은 제주도민이 참여하고, 제주도민이 결정하며, 제주도민이 향유할 수 있는 개발정책이어야 한다. 경제적 성장에만 매몰되지 않고, 제주의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발전도 함께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다. 제주도의 지역과 역사, 인문학적 특징을 제주도의 경제적 성장으로만 축소 수렴하는 현 제주특별법의 비전은 이제 인권의 관점에서, 국제인권규범의 지향점이 되고 있는 인간발전의 개념으로 극복되고 확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제주는 4.3을 통해서 평화의 섬이라는 인문학적 이념을 획득하였다. 나는 바로 그 평화의 원리가 제주도의 비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사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제주도를 상상해야 한다. 사람과 사람이 평등하고 살아가고, 공동체가 편안하며, 사람과 자연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 제주 사람들의 사람답게 살아가는 섬 공동체에 대한 비전은 경제적 성장에만 매몰된 협소하며 각박한 공동체의 모습이 아닐 것이다. 

‘발전’이란 한 ‘사회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개발을 통해, 인간들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만드는 행위’로 재정의 되어야 한다. ‘인간발전’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평화의 섬은 제주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환경, 정치적 발전을 표현하는 이념이다. 그리고 평화의 섬은 평화로운 경제 공동체의 원리로도 작동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회적 경제는 ‘호혜와 신뢰, 소통과 연대에 기반하고 자본보다는 사람을 우위에 두는 경제’를 뜻한다. 평화의 원리로 경제공동체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평화의 섬’은 지금 많은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는 경제성장 중심주의를 벗어나 공존의 경제, 평화적인 삶을 향유할 수 있는 제주도민들의 권리이며, 인간발전의 표상이 될 수 있다. 제주도행정부와 제주도의회 뿐만 아니라 제주도내 시민사회가 제주도의 미래 비전을 고민하는 지금 ‘평화의 섬’이라는 가치는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채워나갈 수 있는 비전이 아닐까 생각한다. /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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