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문학 2021년 봄호 특집...4.3 다룬 희곡·단편소설 8편 조명

제주를 대표하는 극작가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강준의 제주4.3 작품을 조명한 기회가 마련됐다. 제주문인협회의 ‘제주문학 2021년 봄호’(통권 86호) 특집으로 실린 ‘4.3과 나의 문학’이다.

봄호 가장 서두에 실린 첫 번째 특집 코너는 강준이 쓴 희곡 7편과 단편 소설 1편을 요약 소개하는 구성이다.

강준은 제주시 애월읍 출생으로 경희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극단 ‘이어도’ 창단 대표를 역임했다. 월간문학 신인상(1987), 삼성문학상(1991), 한국희곡문학상(1996), 한국소설작가상(2017), 전영택문학상(2020) 등을 수상했다.

희곡집 ▲폭풍의 바다 ▲더 복서 ▲랭보, 바람구두를 벗다 등을 비롯해 장편소설 ▲붓다, 유혹하다 ▲사우다드와 소설집 ▲오이디푸스의 독백 등을 펴냈다 블로그 ‘예술정원, JOON’( http://blog.daum.net/joonartgarden )을 운영한다.

강준은 “소설 ‘순이삼촌’이 ‘창작과비평’에 실려 4.3이 처음 공론화되던 해에 나는 제주에서 극단 이어도를 창단했다”면서 “시대정신을 천착하는 제주 출신이라면 4.3은 숙명처럼 안고 가야 하는 화두다. 평생 글을 쓰더라도 작가를 대표하는 작품은 두세 편 정도인데 내 희곡에서의 출세작 ‘폭풍의 바다’와 ‘좀녜’는 모두 4.3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더불어 “돌이켜보니 발표한 작품 중 열댓 편 정도가 4.3을 소재 또는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그 아픔의 질곡 속에서 나도 30여년을 허우적거린 셈”이라고 강조했다.

강준 작가.

강준은 4.3과 연관된 개인 가족사도 언급했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권투 선수로 이름을 날렸던 내 작은 할아버지는 4.3 때문에 일본으로 피신했다. 숙조부가 조총련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연좌제가 있던 당시에는 내 공무 생활에 불이익이 되기도 했다”면서 “그 선인들이 남긴 문화, 이를테면 신화와 전설, 민요 등의 구전 설화, 그들이 고통 속에서 살아냈던 역사와 저항의 사연들, 죽음으로서 지켜냈던 개인의 아픈 서사들이 다 내 문학의 자양분이었다”고 살펴봤다.

강준이 소개한 자신의 4.3 작품은 ▲좀녜 ▲폭풍의 바다 ▲우리의 관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해경 무렵 ▲더 복서 ▲랭보, 바람구두를 벗다 ▲돗추렴 ▲자서전 써주는 여자 등이다.

좀녜는 4.3 사건에 연루돼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육지 바닷가를 전전하다가 딸까지 떠나보내는 비극적인 주인공 남 씨의 이야기다. 이 작품은 1991년 삼성미술문화재단에서 제정한 도의문화저작상(삼성문학상 전신) 희곡 부문 당선작이다. 강준은 “제주 해녀를 처음으로 무대화해 중앙에 알린 작품”이라고 밝혔다.

폭풍의 바다는 4.3이 남긴 상처와 아픔을 가족사라는 소재로 다룬 작품이다. 제주여인 김경자는 4.3 당시 혼인을 약속한 남자가 있었지만 생존을 위해 서북청년회 출신과 결혼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서청 출신 남편과는 이혼하고 재일교포 모국방문을 계기로 옛 연인과 조우한다. 이 작품은 1993년 한국연극협회가 주관한 창작극개발 3개년 프로젝트 사업 1차년도 당선작이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창작지원금으로 서울문예회관 대극장에서 공연을 가졌고, 대산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을 받아 희곡집을 내고 한국희곡문학상까지 수상하며 작가에게는 뜻 깊은 작품이다.

4.3 때 저지른 부친의 잘못으로 인한 부자의 갈등(작품명 : 우리의 관계는 끝나지 않았다), 화해와 인간애의 아름다운 하모니(해경 무렵), 오라리 방화사건에 상상력을 더해 정의란 이름의 폭력, 인간애를 다룬 작품(더 복서), 시대정신에 대처하는 두 젊은 지성인의 태도(랭보, 바람구두를 벗다), 육식 본능에 의한 폭력의 양태(돗추렴), 에로스적 욕망과 죽음(자서전 써주는 여자) 등 강준의 작품은 4.3을 직접 묘사할 뿐만 아니라, 지난 역사를 통해 오늘 날 우리들은 무엇을 반추해야 하는지 화두를 던진다.

강준은 “4.3은 오늘날에도 진행형이다. 그것이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이유는 한 가족 내에서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혼재해 있고, 복수가 복수를 낳았기 때문”이라며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정략적인 결혼을 해야 했고, 사욕을 채우기 위해 인척과 이웃 간에도 밀고를 했다. 그렇게 얽힌 실타래를 하나씩 풀면서 해법을 마련해야 하는 게 문인들에게 주어진 과제”라며 작가로서 4.3에 대한 자세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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