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6차산업人] (21) 찬란한 제주의 색 담아내는 강인옥 물드련마씸 대표

제주 농업농촌을 중심으로 한 1차산업 현장과 2·3차산업의 융합을 통한 제주6차산업은 지역경제의 새로운 대안이자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창의와 혁신으로 무장해 변화를 이뤄내고 있는 제주의 농촌융복합 기업가들은 척박한 환경의 지역 한계를 극복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메이드인 제주(Made in Jeju)’라는 브랜드를 알리는 주역들입니다. 아직은 영세한 제주6차산업 생태계가 튼튼히 뿌리 내릴수 있도록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기획연재로 전합니다. [편집자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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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잎으로 자연염색한 천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 염색한 천은 재봉을 거쳐 ‘쪽빛 하늘 커텐’이 된다. ⓒ제주의소리

‘쪽빛’을 담은 천이 제주 바람을 타고 하늘 위에서 나부낀다. 그 옆으론 귤나무들과 초록빛 쪽들, 새단장한 귤창고와 하우스에서 천연의 색을 눈에 담아가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농산물로 예술하고, 치유하고, 행복하자’는 가치를 담고 있는 '물드련마씸'은 제주도의 햇살과 바람, 청정함과 빛을 담은 자연 염색원단으로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기업이다.

제주 천연염색 기법을 보존, 발전시키며 제주의 아름다움을 건강하게 담아내는 6차산업인증업체 '물드련마씸'의 강인옥 대표(54)를 [제주의소리]가 지난 12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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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만든 해녀 발도르프 인형을 들고 웃고 있는 강인옥 물드련마씸 대표. 제주 전통 천연염색 기법을 통해 아름다운 제품을 만들어내는 6차산업인이다. ⓒ제주의소리

“감물로 염색한 옷은 항균 효과가 좋고 몸에 들러붙지 않아요. 땀 냄새는 줄여주고 전자레인지 같은 가전제품에서 나오는 전자파를 막아준다고 해서 부엌에서는 감물로 염색한 앞치마를 입으라는 말도 있죠.”

물드련마씸은 귤, 쪽 등 천연염색의 재료를 직접 수확한다. 체험장 옆 약 1500평의 귤밭 앞에 쪽을 심어뒀다. 체험하는 사람들은 직접 재료를 따다가 염색하는 공정까지 모두 즐길 수 있다. 부족한 재료는 다른 농가에 부탁하거나, 사오기도 한다.

노란 계열은 양파피로, 붉은 계열은 꼭두서니, 보라색은 로그우드, 초록빛은 귤 이파리로, 다채로운 색을 자연 곳곳에서 뽑아낸다. 비상품 귤로 즙을 내 염색을 하면 아이보리색이 나오기도 한다. 자연에서 얻은 재료들은 색도 색이거니와, 우리 몸에도 건강하게 어울리며 조화로움을 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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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드련마씸에서 직접 기르고 있는 쪽. 뒤로 귤나무들이 줄지어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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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드련마씸의 판매장이자 공방 내부. 천연염색으로 만든 옷, 스카프, 모자, 가방, 인형, 침구 등 다양한 제품을 만나볼 수 있다. ⓒ제주의소리

한편으로는 감물로 염색한 옷이 ‘올드하다’는 인식도 있어, 감물을 입힌 옷에 쪽으로 혼합염색을 하는 방식도 자주 쓴다고 한다. 타 지역에서는 감색을 깔면 색이 탁해져 꺼리고 옷감도 부드러운 것을 좋아하지만, 제주도민들은 복합염색도, 빳빳한 옷감도 꺼리지 않는다. 아마 겉으로 드러나는 멋보단 실용적이고, 자연스러운 멋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강인옥 대표는 사실 관광학과를 전공하고, 20대에는 간호조무사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딴 후, 병원과 시설에서 일한 경력도 있다. 사회복지 일을 하면서도 조물조물 손을 쓰는 일이 좋아, 지역기술센터를 통해 재봉틀과 바느질, 발도르프 인형 만드는 법을 틈틈이 배웠다.

그 기술을 살려 사회복지시설에 계신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소근육 운동 프로그램을 구성해 진행하기도 했다. 바느질, 가위질을 함께 하며 옛날 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쏠쏠했다고 한다.

“할머니랑 인형을 같이 만들다 보면, 옷도 입혀 보고 하다가 옛날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뭐, 차롱이 어떻고, 구덕이 어떻고, 어머니가 생전에 어떠셨다던지….요양보험이 안 생겼으면 지금도 근무했을 거예요. 일은 많은데, 월급도 동결되고, 애들도 키워야 되니까 그만두자고 생각했죠.”

이후 강 대표는 본격적으로 서귀포 농업기술센터 천연염색바느질연구회 회원으로 약 15년 간 활발히 활동하며 경험을 쌓고, 2017년 '물드련마씸' 공방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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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연염색 문화상품전에서 수상한 ‘등용문 필통’(왼쪽). 구름과 바다를 표현한 천연염색 천 위에 물고기 모양 필통이 물살을 헤치는 듯한 모양이다. / 제21회 제주도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 동상을 수상한 ‘현무암 닮은 전통감염색 스카프’(오른쪽). 작업을 함께 한 남편 송훈 씨의 이름으로 수상했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관광기념품 공모전 수상작 홈페이지. ⓒ제주의소리

그때만 해도 제주도 관광기념품이 돌하르방밖에 없을 때여서 ‘뭐라도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으로 다양한 천연염색 제품을 만들고, 이중섭 창작스튜디오에서 <차롱의 꿈>, <물고기의 꿈> 등 개인전도 여러 차례 열었다. 

옷, 모자, 인형 등 여러 제품들 중 특히 빛을 본 제품으로는, 한국천연염색 문화상품전에서 수상한 ‘등용문 필통’이 있다. SNS에 올렸던 물고기 필통 제품에 폐목자재로 물고기를 깎는 예술가 한 분이 ‘등용문 필통’이라 이름을 붙여준 게 아이디어가 됐다. 구름과 바다를 표현한 천연염색에 정교한 바느질이 더해진 물고기 필통은 시험합격의 소망과 승진 등의 희망의 의미까지 담아 날아올랐다. 

줄기차게 도전해왔던 관광기념품도 성공한 바 있다. ‘현무암 닮은 전통감염색 스카프’로 제21회 제주도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 입상한 것. 가풋감이 제주의 태양과 만나 염색되는 모습이 우연찮게도 제주의 돌 모양을 띄었다. 여기에 푸른 바다 빛을 더하니 제주를 한껏 담은 스카프가 탄생했다.

그 외에도 소비자들이 즐겨 찾는 제품으로 앞치마와 모자, 스카프, 침구류, 카펫 등이 있다. 이 제품들은 전국의 타 천연염색 업체들과 함께 제주도는 물론 가파도, 인사동을 중심으로 도매로 판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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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물 염색 과정. 흰 천에 금방 짙은 남색빛의 쪽물이 흡수된다. 시간 차를 두거나 빈도의 차이를 두어 자연스러운 음영을 만들어 낸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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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으로 물들인 천을 헹구는 작업 중인 강인옥 대표. 수차례 헹구는 작업 뒤에 햇볕에 말려야 한다. ⓒ제주의소리

코로나19로 집에서 취미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이들을 공략한 해녀 발도르프 인형 DIY 키트도 새로 제작했다. 인형 만들기 클래스로 따지면 고급반에 속하는 내용이지만, 자녀들의 도움으로 동영상을 함께 제작해 쉽게 만들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소비자를 위한 제품 개발에 매진해도, 지역 행사가 줄다보니 제품 자체를 선보이기 어려워진 현실이다. 소비자의 반응을 직접 느낄 수 있는 플리마켓이나 행사장이 본래 판매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지만, 올해와 작년은 코로나19 여파로 그마저 쉽지 않아졌다. 온라인박람회나 라이브 커머스도 참여해봤지만 반응이 거의 없었다. 제품 판매에 주력하다 체험을 시작한 일은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강 대표는 “염색 일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게 체험”이라며 “체험은 거의 침구류가 많다. 인견 이불이나 앞치마, 최근엔 인형도 한다. 주로 부녀회나 지역 단체에서 보조사업으로 지원을 받아 체험 문의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물드련마씸의 천연염색 체험 모습. 앞치마나 옷, 카페트 등 체험을 할 수 있다. 사진=물드련마씸.
물드련마씸의 천연염색 체험 모습. 귤, 양파껍질, 나뭇잎 등을 활용해 염색을 체험할 수 있다. 사진=물드련마씸.

'물드련마씸'은 처음부터 체험을 염두에 둔 공간이 아니었다. 공방 겸 판매장의 모습을 띠고 있어, 체험공간을 위해 하우스를 활용하고 창고를 리모델링하는 등 공간을 재정비하고 있다. 주로 성인 체험을 많이 열고 있지만, 초중등 클래스도 고려하고 있다.

6차산업에 대해서는 여러 사업계획서를 쓰면서 알게 됐다. 제주의 아는 업체들은 이미 6차 산업을 하고 있어서 자연스레 관심이 갔던 터다. 홈페이지를 들여다 보다가 6차산업체 인증까지 받게 됐다.

감귤 농사도 짓고 있는 강 대표는 “노지귤은 수확량이 적어 평균 수입이 많지 않다. 농민이 농업으로 살아야 하는 시기인데 이게 안 되니, 딴 데로 눈을 돌리게 되는 게 아쉽다”며 “물드련마씸은 1인 기업이다 보니 체험과 홍보를 크게 하는 게 조금 겁이 난다. 수십 명 체험을 하다보면 거기에 매달려야 하니 자잘한 일에 신경을 못 쓴다. 앞으로 직원을 조금 늘리고 싶다”고 앞으로의 바람을 전했다.

“(이 일은) 죽을 때까지 해야죠. 건강이 걱정인데, 정리 안 된 채로 아프지 않을까 염려돼요. 몸이 힘들어지기 전까지는 하지 않을까요? 그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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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드련마씸 공방 겸 판매장 전경. 인근에 귤밭을 낀 체험장을 따로 두고 있다. ⓒ제주의소리

'물드련마씸'은 제주농업농촌6차산업지원센터 등의 도움으로 홍보, 마케팅 컨설팅을 받으며 더욱 제주도민에게 다가가려는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눈으로만 담기엔 너무나 찬란한 제주의 색을 담아내는 물드련마씸의 내일이 더욱 기대된다.

한편 강 대표가 속한 이주여성작가회 이신예는 오는 19일부터 25일까지 서귀포시 남원읍의 한 감귤창고(한신로 87-27)에서 '서귀포문화콘테나' 전시회를 운영할 예정이다. ‘삶의 공간에 예술을 담다’라는 주제로, 제주를 담은 수공예품 40여 점이 전시된다.

물드련마씸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한신로 1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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