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운동가 송강호 박사

제주도가 ‘세계 평화의 섬’인가? 내가 보기에 제주도는 결코 평화의 섬도 아니고 평화의 섬을 향해 나아갈 의지도 없는 군사주의의 섬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솔직한 표현 일 것이다. 이미 강정에 거대한 해군기지가 지어졌고 도지사는 여론조사의 결과를 무시하고 성산에 군사적 용도의 제 2 국제공항을 건설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정에는 공군이 운용하는 항공우주 박물관이 지어져 공군을 홍보하고 도의회는 미래의 우주작전 수행을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국가위성통합운영센터를 건설하기 위해 제주도가 소유한 토지를 매각하기로 했다.

제주도가 평화의 섬으로 선언된지 16년이 지났지만 17대 평화 사업 중에 완료된 것은 7개뿐이며 이것 조차도 아주 오래전에 끝난 것들이다. 원희룡 도지사나 도의회 의원들이나 이미 빛이 바래가는 ‘세계평화의 섬’이란 슬로건에 아무런 책임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 한때 박희식氏가 제주도가 비무장 평화의 섬이 되도록 힘쓰겠다고 도지사 지명 선거에서 공언한 바 있었지만 그 마저도 지금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이제 제주도의 정치 지도자들 가운데 ‘세계 평화의 섬’의 비전을 실천할 열정을 갖고 있는 이는 한 사람도 없는 것 같아 보인다. 나는 이런 현실이 가슴 아프다. 내가 제주도에 입도한 이유는 제주도가 ‘세계 평화의 섬’이라고 공표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제주도가 진정한 평화의 섬이 되기를 간절히 바랬고 군대나 무기로는 평화를 만들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에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했다. 그 과정에서 제주 교도소에만 4번이나 수감되는 불행을 겪었다. 나는 제주도가 평화주의자도 자유롭게 살아 갈 수 있는 진정한 평화의 섬이 되기를 바래서 몇 가지 제안을 드린다.

첫째, 제주도를 진정으로 평화의 섬이 되도록 만들겠다는 비전과 열정과 사명감을 갖은 정치 지도자를 도지사로 선발하자. 지금까지 어떤 도지사도 그런 전망과 열의를 갖고 있었던 사람이 없었다. 선장이 평화를 향해 항해할 의지가 없는데 어떻게 배가 평화의 섬을 향해 나갈 수 있겠는가? 

둘째로 제주도의 미래를 위한 정책에서 평화를 핵심 가치로 추진해 나가기를 바란다. 원희룡 도지사는 제주도를 위한 그린뉴딜 정책을 공표하면서 제주도를 우리나라에서 가장 친환경적이고 청정한 지역으로 만들겠다고 했는데 이런 비전은 우리 나라 전국의 모든 지방자치 단체들의 모토이고 차별 없는 경쟁의 예고다. 아이러니하게 그린 뉴딜은 블루오션이 아니라 레드 오션인 셈이다. 제주는 그린 뿐 아니라 거기에 더해서 평화를 결합시켜야 본연의 정체성과 발전의 역동성을 배가 할 수 있다. 국가 폭력에 의한 역사적인 희생을 제주 공동체의 총체적인 발전 동력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평화정책을 펼쳐 나가야 한다.

셋째로 제주도를 비무장 평화의 섬으로 만들기를 바란다. 군대와 무기로 무장한 섬을 평화의 섬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진정한 평화의 섬은 군사기지도 군병력도 주둔하지 않는 오로지 평화시민들 만의 것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제주도 내의 모든 군시설들을 평화적인 목적으로 전환하는 혁신을 감행하기 바란다. 도민들을 대표하는 도의회가 모든 군사적 목적의 시설과 토지들을 제주도민들의 평화로운 삶을 위해서 재활용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 무엇인지 진지한 토론을 시작하기를 바란다.

넷째로 제주도가 평화의 섬이 되기 위한 뿌리는 평화교육의 철저한 시행이다. 최근 학교에서 4.3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을 학생들에게 교육하고 더 나아가 여순항쟁과의 역사적 연관성까지 그 학습의 폭을 확대하는 것은 분명 평화교육의 청신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평화교육이 단지 지나간 역사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는 것에서 끝나면 안될 것이다. 평화교육은 그런 과거의 역사가 재현되고 있는 현재와 미래에 더 주목해야 한다. 제주도는 평화의 섬이라는 호칭이 무색하게 ‘소송과 분쟁의 섬’이 되어가고 있다. 제 2공항으로 도민들은 분열되고 있고 강정해군기지 건설은 강정 마을 공동체를 무너뜨렸다. 각종 난개발은 제주도의 자연을 파괴시키고 있다. 평화교육은 지금 현재 제주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과 불화를 진지하게 다루는 열띤 토론의 장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위성곤 의원은 지난 4월 21일 제주 특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면서 국제 자유도시를 국제도시로 명칭을 바꿀 것을 제안했다. 그의 개정안에서도 여전히 평화의 가치는 배제되어 있다. 제주도가 세계평화의 섬이 되기를 바라는 희망이 마음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경제와 환경이 조화를 이루는 환경 친화적인 국제도시’를 만들자는 취지로 발의하였다. 그러나 진정으로 제주의 ‘지역 역사적 특성을 살리고 자율과 책임, 창의성과 다양성을 바탕으로 자치권이 보장되는 제주’ 를 희망한다면 ‘국제 자유 도시’는 ‘국제 평화 도시’ 로 거듭나는 것이 옳다. 평화야 말로 제주의 역사적 정체성과 공동체성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게 하는 가장 제주 적인 가치이기 때문이다. / 평화운동가 송강호 박사

# 송강호 박사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수학하던 중 세계교회협의회(WCC) 추천을 받아 독일 하이델베르그 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에서 학위과정을 밟는 동안 내전으로 비극을 겪는 르완다와 보스니아 전쟁지역을 방문한 뒤, 그 충격으로 평화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20년 넘도록 동티모르 내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인도네시아 아체 내전 등 전쟁 피해자와 난민들을 돕는 일을 했다.

제주 해군기지 반대운동에도 참여한 송 박사는 해군기지 철조망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지난 2020년 3월 30일 법정 구속 됐으며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아 제주교도소에 수감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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