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현장] 창고에 쌓여가는 폐 배터리...민간 시장까지 풀렸지만 상용화 근거 미비

제주첨단과학기술단지 내에 위치한 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 공장 안에 전기차에서 분리한 폐배터리가 쌓여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제주첨단과학기술단지 내에 위치한 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 공장 안에 전기차에서 분리한 폐배터리가 쌓여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17일 오후 제주첨단과학기술단지 내에 위치한 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 공장 안으로 들어서자, 기계식 주차장과 비슷한 거대한 설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층층이 마련된 설비 안에는 각종 전기차에서 분리한 폐 배터리 팩(pack)이 자리하고 있었다. 배터리 생산업체와 완성차 제조사가 저마다 달라 팩 모양도 제각각이었다.

공장 바닥에는 어제(16일) 입고된 전기차 배터리 팩이 놓여져 있었다. 폐차장에서 전문 운송업자를 통해 폐 배터리가 입고되면 지게차로 옮겨 평평한 지면에서 안정화 작업을 거치게 된다.

이후 차종과 연식, 차량 번호, 제조업체 등의 테이터를 입력하고 전용 바코드를 부여받는다. 새롭게 이름이 정해진 폐 배터리 팩은 전동화 시설에 올라 지정된 공간에 차곡차곡 쌓인다.

계단에 올라 연구시설 쪽으로 이동하자, 폐 배터리 팩에서 분리된 모듈(module)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차량 바닥에 있던 팩 커버를 열면 배터리 셀(cell)이 담긴 모듈이 나온다.

제주테크노파크(JTP) 에너지융합센터에서 운영하는 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는 제주도가 수거한 전기차 폐 배터리를 보관하고 활용방안을 연구하는 사업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기존 대기환경보전법 제58조(저공해자동차운행 등) 제5항에 따라 보조금이 들어간 전기차는 소유자가 폐차하거나 말소할 경우 지방자치단체장에게 배터리를 반납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올해 1월1일자로 대기환경보전법이 개정되면서 지자체의 배터리 반납 의무조항은 사라졌다. 그 이전인 2020년 12월까지 제주에 등록된 전기차 2만1000여대는 제주도가 폐 배터리를 책임져야 한다.

현재 제주도는 도내 11개 폐차장을 통해 폐 배터리를 강제 수거하고 있다. 지금까지 입고된 폐 배터리만 170대를 넘어섰다. 차량 보급에 비례해 입고량은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에서 수용 가능한 저장 공간은 250대 가량이다. 이마저 모자랄 것에 대비해 인근 부지를 확보해 최대 500대까지 저장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문제는 그 이후다. 배터리는 코발트와 리튬, 니켈 등이 포함된 유독물질로 분류돼 매립이 금지돼 있다. 배터리 셀 분리과정에서 각종 유독물질이 유출돼 해체 작업도 어렵다.

제주도가 셀 분리 전인 모듈 형태로 폐 배터리 재사용 방안을 연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폐 배터리는 항공 및 해상 운송도 사실상 어려워 제주에서 자체 활용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는 국비 지원 사업을 통해 폐 배터리를 가정용 및 가로등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사무용 무정전전원장치(UPS) 등으로 재사용하는 실증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보관 중인 폐 배터리 중 일부를 연구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재사용이 불가능한 배터리 셀은 폭발 위험에 대비해 물 속에 넣어 특수 보관하고 있다. 

2022년부터는 산업통상자원부 공모인 ‘전기차 배터리 재제조 제품 시험평가·인증지원 기반 구축사업’ 선정에 맞춰 2024년까지 국비 60억원 등 86억원을 지원받아 추가 실증에 나선다.

폐 배터리 활용을 위해서는 민간영역으로 확산과 함께 법률적 제도개선이 뒤따라야 한다. 폐 배터리를 통한 재사용 제품은 표준기술이 마련돼야 상용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 시점에서는 폐 배터리를 제품화할 법적 근거가 없다. 상용화에 나서도 가격 경쟁력이 있을지 미지수다. 제주도가 연구에 집중하며 폐 배터리를 창고에 쌓아두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 관계자는 “9명의 연구원들이 각종 활용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전국에서도 제주가 폐 배터리에 대한 연구가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증을 거쳐 폐 배터리에 대한 수요가 확인되면 제도개선을 거쳐 실사용이 가능할 것”이라며 “다만 실제 상용화 시점에 대해서는 예측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제주도 관계자는 “안전성에 대한 국내 기준 자체가 없어 상용화 방안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며 “국가 기술표준원에 기준이 마련되도록 정부에 계속 건의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2021년 이후 생산된 전기차는 배터리 회수 의무가 없어 민간에 풀릴 것”이라며 “폐 배터리 급증에 대비해 전문기관 추가 지정 등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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