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25) 각단 밭에서 새소리 한다

* 각단 : 초가지붕을 덮는 띠(茅, 띠 모) 가운데 잘 자라지 못한 것. 이것으로 초가를 덮고 가로, 세로 동여맬 때 쓰는 줄을 놓았다.
* 밧듸 : 밭에
* 생이 : 새(鳥)

어떤 새든 다들 나뭇가지를 좋아한다. 나뭇가지가 아니면 동산 높은 곳에 앉아 각기 다른 음색, 결 고운 운율로 고유의 소리를 내며 울어댄다.

한데 이 말에서는 새가 ‘각단 밭’에서 울고 있다. 초가지붕을 새(띠)로 덮을 때 바람에 날리지 않게 하기 위해 꽁꽁 동여매는 줄(새를 꼬아 만든 굵은 새끼 모양의 것)을 놓는(만드는) 데 쓰이는 짧은 놈을 각단이라 하는데, 새가 그 각단 밭에 앉아 울부짖고 있다는 말이다.

산과 들에 크고 작은 나무가 숲을 이뤄 지천일 텐데, 하다못해 작은 잡목도 아닌 각단이 빼곡한 속에 앉아 울고 있다니 답답한 노릇이 아닌가. 그런데도 울음소리를 내고 있다. 언뜻 생각하거니와 상식에 벗어난 일이 아닐 수 없다.

많이 써 온 말이다. 조금 달리 표현해 ‘억새 밧듸서 생이소리 혼다’로 말하기도 한다. 새가 앉아서 고운 소리로 울 마땅한 장소는 못 되는 곳이 각단 밧이고 억새 밧이다. 그래도 새가 그 거칠고 빽빽한 속에 우비고 들어가 울고 있으니 이상한 일이다.

‘각단 밧듸 생이소리’ 했다 본전도 못 찾게 될 것이 불 보듯하니, 언행에 조심할 일이다. 출처=픽사베이.
‘각단 밧듸 생이소리’ 했다 본전도 못 찾게 될 것이 불 보듯하니, 언행에 조심할 일이다. 출처=픽사베이.

풍자성이 강한 말이다.

사람 사는 세상은 각양각색, 각색 춘향이요 별의별 가지로 요지경 속이다 이런저런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살아간다. 남이 들으면 웃을 것도 생각하지 않고 멋대로 입에 올린다든지, 도대체 경우가 아닌 것도 모르면서 말하고 행동함으로써 빈축을 사기도 한다. 

한창 좋은 의견들을 내어 분위기가 무르익는 장합에 흐름을 훼방놓는 한두 사람이 끼어 있게 마련인 게 공동체라는 틀인지도 모른다. 설레발치거나 어깃장을 놓는 것이다. 그럴 때 자리를 같이 한 사람들이 그냥 듣고만 있겠는가.

“아이고, 각단 밧든 생이소리 혼다”, “억새 밧든 새소리 허고 잇네”라 한다.

왜 사람이 문제를 풀어 가는 데 도움이 되는 말은 못할지언정 엉뚱한 말을 해서 망쳐 놓는 것이냐 하는 것으로, 이를테면 항의성 욕설 또는 냉소적인 성토다. 각단 밭에 숨어 지저귀는 새처럼 굴지 말라는 강한 어조가 녹아 있다. 어찌 보면 모자라거나 비정상적인 언행이기 때문이다.

적절하지 못한 말을 지적해 빈정거릴 때 쓰는 말이다. 이런 언행이 거듭되면 인심을 잃어 마침내 사회에서 낙오자가 될 것 아닌가.

요즘처럼 말이 많고 또 말에 대한 반응이 민감한 때도 없지 않은가 한다. 편파적이거나 조금만 이치에 닿지 않아도 공격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다. ‘각단 밧듸 생이소리’ 했다 본전도 못 찾게 될 것이 불 보듯하니, 언행에 조심할 일이다. 

할 말도 못하고 입 다물고 사는 세상인데, 남에게 흉 잡힐 말을 할 게 무언가. 고시조에 나왔듯이.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입에 자물쇠 채우고 살아 나쁠 것도 없으리라.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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