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구술문학, ‘대안의 근대’를 모색하는
아프리카의 구술문학, ‘대안의 근대’를 모색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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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世通, 제주 읽기] (201) 이석호, ‘아프리카 만인보’, 도서출판 아프리카, 2020.

1.
여기, 몇 만년 전부터 구술(口述)로 전해내려와 현재도 널리 애송되는 아프리카 부족 산(San)의 구술시(口述詩) 한 편을 들어보자. 

“오늘부터 그대는 조금씩 죽어가게 될 것이다.
조금씩 죽어 가리라는 것, 이것이 그대에게 내린 저주다.
밤낮으로 배불리 먹여줄 것이다
그러나 더 먹고 싶다는 욕망이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침나절부터 해질녘까지 풀을 뜯고 또 뜯어도.
보라, 이것이 내가 그대에게 내린 저주니라,” 태양이 말했다.

이후로 말의 죽음은 시작되었다.
— ‘태양의 저주를 받은 말’ 부분

놀랍지 않은가. 구술시의 대부분이 그렇듯 정확히 언제 구연(口演)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남아프리카의 대표적 반체제 작가인 제임스 매튜(James Matthews)는 아프리카 문학 연구자인 이석호와 인터뷰하는 도중 이 시를 읊었다고 한다. 이 시에 대해 간략히 소개한다면, 이 시에는 유목민인 산(San)의 신화가 녹아들어 있다. 태양이 땅에 내려와 말을 잡아탔는데 말이 태양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자 말 대신 소로 갈아탄 것을 두고 태양은 말에게 저주를 내렸다고 한다. 산(San)의 유목 생활을 짐작해볼 수 있는 이 시는 태양의 저주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들려준다. 태양은 말로 하여금 “더 먹고 싶다는 욕망이 멈추지 않을” 정도로 “아침나절부터 해질녘까지 풀을 뜯고 또 뜯어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노예가 된 채 “조금씩 죽어가게 될” 저주를 내린다.

흥미롭게도, 태양의 저주를 숙고할 때 이 저주가 아프리카 유목민 산(San)의 신화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 모두가 성찰해야 할 신화적 진실을 타전하고 있는 게 아닐까. 전지구적 자본주의 세계체제 속에서 온갖 최첨단의 과학기술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인류는 끝 간 데 알 수 없는 욕망의 무한 증식에 붙들린 채 서서히 세계의 난경으로 내몰리고 있지 않은가. 그 단적인 사례가 바로 코로나19 팬데믹의 고통을 우리는 일상에서 체감하고 있는 셈이다. 

2.
이처럼 구석기 시대부터 현재까지 구술 전승되고 있는 아프리카의 구술시와 관련한 문학적 및 문명적 가치를 주목하고 있는 책이 아프리카 문학 번역․연구자인 이석호의 ‘아프리카 만인보’로 출간되었다. 이석호는 국내에 아프리카 문학에 대한 심도 있는 공붓길을 낼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문화 전반에 걸쳐 그 온전한 실상을 널리 알리는 전령사이다. 이석호의 ‘아프리카 만인보’는 그가 만난 아프리카 작가 6인과의 대화 형식으로 이뤄진 것으로, 각 작가에게 주목해야 할 아프리카 문학의 특장(特長)을 집중하되, 그것이 그 작가 또는 아프리카 문학을 이해하는 데 머물지 않고 구미 중심의 근대문명에 낯익은 우리에게 래디컬한 성찰의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감히 말하건대, 팬데믹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필독서로서 추천하고 싶다. 

이 짧은 지면에서 6인과 나눈 대화의 핵심을 상세히 정리할 수 없지만, 몇 가지 경청해야 할 전언이 있다. 흔히들 아프리카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들 때문에 아프리카는 근대성(modernity)이 아예 없든지, 근대성의 발전 속도가 현저히 늦든지, 그래서 지구에서 현대문명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가장 후진적 대륙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아프리카의 유구한 문명에 대해 무지할 뿐만 아니라 서구 제국주의의 식민 침탈 과정에서 아프리카에 대한 온갖 왜곡된 인식과 서구의 강제적 계몽이 초래한 식민주의 역사에 대한 몰이해의 산물임을 직시해야 한다. 루이스 응코시(Lewis Nkosi)는 이것을 아프리카 문학의 시선에서 매우 예리한 비판적 성찰을 보인다. “아프리카 문학은 ‘근대성’을 상상하는 방식이 달라요.”(27쪽)란 응코시의 발언에 압축돼 있듯, 아프리카의 근대성을 구미 중심의 근대성만으로 파악하는 것은 커다란 오류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는 거시적이고 미시적인 이유들이 존재하는바, 문학적 측면에서 살펴볼 때, 구미 중심의 근대성의 바탕에는 인쇄술의 발달로 인한 문자성(literacy) 위주의 근대세계의 확장을 이룩하기 위해 전근대 세계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면, “아프리카의 작가들에게 ‘근대성’이란 전통으로부터의 일탈의 의미보다 ‘회복’의 의미가 강하다고 볼 수 있”(28쪽)는, 그래서 이 글의 서두에서 소개한 구술시의 구연이 끊겨지지 않은 채 아프리카 문학의 엄연한 영역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이 구술시의 구연이 우리에게 낯익은 문자성 위주의 텍스트중심주의의 문학과 어떤 차이를 가질까. 이석호는 마다가스카르의 시인 날리소아 라발리테라(Nalisa Ravalitera)와 마다가스카르의 구술문학의 이모저모를 이야기하면서, 구술문학의 묘체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학이 텍스트와 이미지의 시각적 충돌을 넘어 소리와 소리의 물리적 충돌, 즉 웃음과 울음의 충돌, 회유와 야유의 충돌, 가르치려는 자의 훈고학적인 목소리와 그것을 거부하려는 자들의 당돌한 저항의 소리들의 충돌로 이루어진 모종의 물질성을 가진 어떤 대상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56쪽)

그렇다. 이석호의 언급이야말로 아프리카의 구술문학은 물론, 세계의 각 지역에서 엄연히 존재하는 구술문학의 존재성을 간파하고 있다. 텍스트중심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시각의 특권화된 감각을 신봉하지 않고 소리의 물질성이 추구하는 “당돌한 저항의 소리들의 충돌”이 어우러진 삶의 진실을 담아내는 것이 바로 구술문학의 매혹임을 주목한다. 달리 말해 이것은 민중의 삶의 정동과 구술문학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라발리테라가 “마다가스카르 인들이 가장 애용하는 입말인 말라가시어가 라틴어 알파벳을 차용하여 문자화되기 시작하면서 민중적 서사의 힘이 약화되었다”(55쪽)고 한 것은, 이와 같은 구술문학이 시나브로 사그라들기 시작하면서 민중의 삶의 정동을 표현한 마다가스카르 문학의 힘도 약해지고 있다는, 어쩌면 아프리카 문학에 도래할 우울한 징후인지 모를 일이다. 

3.
기실, ‘아프리카 만인보’에서 구술문학과 관련한 대화에 특히 주목하는 데에는,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한국문학과 제주문학의 어떤 면이 포개지기 때문이다. 나는 최근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듯, 구미 중심의 근대세계에 강하게 결속돼 있을수록 자연스레 이러한 세계 속 문학이 구미 중심의 문학을 창조적으로 극복하는 것은 여간 어렵고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불운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창조적 극복 자체가 원천 봉쇄된 채 기를 쓰며 구미 중심의 문학 질서 안에서 최량의 문학으로 인정받으려는 인정 투쟁에 자족할 뿐이다. 문자성 위주의 텍스트중심주의 문학에 안주하는 한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고 하면 너무 심한 억측일까.

그래서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아프리카 만인보’에는 이 억측을 어쩔 수 없이 승인할 게 아니라 이 자체를 무화시켜버리는 생산적 대화의 지점이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 있다. 그것은 한국의 근대문학 태동부터 뒷전으로 밀쳐버렸던 구술문학 전통이 지닌 우리식 근대성의 가치를 주목함으로써 구미 중심의 강고한 근대세계를 창조적으로 넘어설 수 있는 어떤 새로운 ‘대안의 근대’를 모색할 수 있는 문명적 자부심을 벼려야 한다. 제주문학은 이를 위해 제주어가 지닌 구술성의 보배스러움을 갈고 다듬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막무가내로 제주어를 문학적으로 구현하라는 게 결코 아니다.

제주문학이 경계해야 할 것은 제주어중심주의에 매몰됨으로써 토착주의의 폐쇄성과 경직성이 마치 제주문학의 본령인 양 자가당착에 빠져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제주어의 구술성에 대한 법고창신을 바탕으로, 구미 중심의 근대세계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제주문학이야말로 ‘대안의 근대’를 모색하는 문명적 주체의 역할을 보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고명철

1970년 제주 출생.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998년 <월간문학> 신인문학상에서 <변방에서 타오르는 민족문학의 불꽃-현기영의 소설세계>가 당선되면서 문학평론가 등단. 4.3문학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세계문학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연구와 비평에 매진하고 있다.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문화)을 공부하는 ‘트리콘’ 대표. 계간 <실천문학>, <리얼리스트>, <리토피아>, <비평과 전망> 편집위원 역임. 저서로는 《흔들리는 대지의 서사》, 《리얼리즘이 희망이다》, 《잠 못 이루는 리얼리스트》, 《문학, 전위적 저항의 정치성》, 《뼈꽃이 피다》, 《칼날 위에 서다》, 《세계문학, 그 너머》, 《문학의 중력》 등 다수. 젊은평론가상, 고석규비평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mcritic@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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