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④] 천미천 정비사업 무엇이 문제인가

한라산을 기점으로 남북으로 수많은 혈관처럼 뻗어있는 제주의 하천은 도외지역과는 전혀 다른 지질·생태·경관적 특징을 갖고 있다. 화산활동에 의해 만들어져, 물이 스며드는 특성과 급경사로 인해 하천의 물이 급속도로 바다로 흘러가 버려 도외지역처럼 유유히 흐르는 강은 없지만, 용암 암반 위에 형성된 수많은 소(沼)가 오아시스처럼 수없이 흩어져있다. 

또한, 도외지역의 강처럼 수변 지역이 수생식물대가 아닌 울창한 수림과 기암괴석으로 형성되어 기나긴 녹색띠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독특한 제주의 하천은 그동안 하천정비라는 이름으로 원형이 무참히도 훼손되었다. 특히, 제주도에서 가장 길고 복잡한 하천인 천미천은 대표적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하천정비사업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최근 또다시 제주시와 서귀포시 권역에 걸쳐 정비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 환경부를 중심으로 지난 하천 개발사업의 문제점을 반성하고 생태하천 복원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여전히 제주도당국은 토건중심의 하천정비사업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제주환경운동연합은 천미천 정비사업의 문제점을 다각적으로 분석하는 기획연재를 시작한다. 천미천을 중심으로 하되 더불어 제주도 하천정비의 전반적인 문제점도 돌아보고자 한다. 기고는 고병련 제주국제대 교수, 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 소장, 양수남 제주환경운동연합 대안사회국장의 순으로 6회에 걸쳐 싣는다. 

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 소장

꽤 오래전 제주지방기상청장에게 들은 얘기다. 지금은 백록담에도 자동기상장비가 설치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없었다. 도대체 한라산 고지대에 얼마만큼의 비가 오는 것일까. 궁금하여 성판악코스 진달래밭 대피소에 수동 강우량 계를 설치해 보았단다. 어느 날 밤새 비가 왔는데 아침에 보니 하룻밤 사이에 1000ml를 기록했다고 한다. 

깜짝 놀랄만한 수치다. 우리나라 육지부의 연평균 강수량이 약 1100ml이므로 거의 1년 치의 강우량이 하룻밤 사이에 내린 것이다. 다음날 아침에 건천은 ‘내가 터져서’ 흙탕물로 범람하며 세차게 바다로 흘러간다. 만약 한라산 남북사면에 건천이 없다면 해안가 마을은 모두 홍수로 사람이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제주의소리
▲ 천미천의 모습. 제주의 하천은 육지부의 강과는 전혀 다르다. ⓒ제주의소리

제주에서 하천은 우선 한라산 고지대의 엄청난 강우량을 바다로 급속하게 이동시키는 배수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제주 사람들은 건천을 ‘냇창’이라고도 불렀다. 평상시에는 물이 없기 때문에 하천 바닥의 암반이 그대로 드러난다. 큰 왕바위들도 놓여 있다. 제주에서 하천 조사는 이런 암반으로 이루어진 하천 바닥을 걸어가면서 진행된다. 육지부의 하천인 강과는 전혀 다르다. 육지의 산속에 형성된 계곡이 제주의 건천과 유사한 곳이다. 

육지의 하천, 강과 제주의 건천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라산 고지대에는 토양이 거의 없다. 약 30cm 두께의 박토로 되어 있다. 현무암의 빌레 위를 얇은 토양층이 덮고 있다. 지표의 빗물을 저장하는 공간이 토양층이다. 육지부의 강 주변 토양층은 매우 두껍다. 대개 땅속으로 20∼30미터 아래에 화강암의 암반선이 나온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지하수 개발은 이 토양층을 뚫고 암반이 나오는 곳까지만 굴착하면 된다. 

반면 제주는 전혀 다르다. 토양이 거의 없고 바로 현무암이 나오거나 빌레와 같이 지표에 바위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지하수 개발은 이 암반을 뚫어야만 한다. 금강석 비트를 이용하여 현무암을 수십 미터 또는 수백 미터 암반 굴착을 해야 한다. 해발고도에 따라 거의 해수면까지 뚫어야 대수층이 나오며 양수기를 이용하여 뽑아내고 있다. 

ⓒ제주의소리
▲ 천미천은 제주의 여느 하천에 비해 소(沼)가 상당히 많아 절경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이곳도 하천 정비구간에 포함된 상태이다. ⓒ제주의소리

토양이 없거나 얇은 토양층을 순식간에 포화시킨 지표수는 넘쳐흐를 수밖에 없다. 하천으로 모아진 하천수는 순식간에 바다로 흘러가버리기 때문에 평상시에는 물이 없는 건천이 되는 것이다.

제주에는 왜 육지와 같은 강이 없는 것일까. 하천 발원지인 백록담의 해발고도 약 2㎞를 극복하고 하천 하구까지의 거리인 약 10여㎞의 하천에서 과연 상시 물이 흐르는 강이 형성될 수 있을까. 매우 급한 경사의 하천은 결국 계곡과 같은 건천밖에는 형성될 수 없었다. 제주의 하천은 육지부의 하천과는 사뭇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강을 이루고 있는 육지부의 하천 수로와 비교한다면 발원지 부근의 산악지역에 형성된 계곡과 같은 곳으로 간주해야 한다. 그러니까 육지의 강들은 대부분 수백 ㎞의 연장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낙동강을 보면 발원지인 태백산에서 제주의 하천과 같이 흘러드는 물이 저지대의 평야로 여러 지류들이 합쳐진 후에 비로소 큰 강으로 발달되어 간다. 그런데 제주에서는 이 계곡 지류들이 합쳐지는 지점이 바로 ‘바다’다. 이것이 육지의 강과 제주의 하천이 근본적으로 다른 특징을 갖게 된 이유다. 

하천 바닥의 암반은 보존가치가 높은 자연 경관자원이다

제주도 대부분의 하천이 건천을 이루고 있는 원인을 하천 바닥을 구성하고 있는 암석의 특징과 연결시켜 해석하는 것보다는 하천으로 물을 공급할 수 있는 지표수와 복류수의 부족과 하상용천의 결핍으로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표면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현무암 용암류도 그 내부를 보면 비교적 치밀한 구조를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현무암의 암석은 물을 투수하지 못한다. 보통 제주의 현무암에 구멍이 많아서 지하로 물이 모두 빠져 버린다고 하는 말은 실은 과학적으로 맞지 않다. 암석에 발달된 절리라고 하는 틈을 통하여, 또는 동굴의 천장이 무너져 만들어진 ‘숨골’이라고 하는 곳을 통하여 지하수는 지하로 스며들고 암석층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송이층에 물을 보관하게 된다. 

ⓒ제주의소리
▲ 천미천. 제주의 하천은 억겁의 시간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작품이다. ⓒ제주의소리

이런 송이층은 공극이 많기 때문에 물을 다량으로 함유할 수 있다. 지하에는 이런 송이층이 시루떡과 같이 연속적으로 분포한다. 중력에 의해 지하로 내려간 지하수는 지하 지층의 압력을 받아 높은 압력으로 눌려져 있는 형태가 제주에서 지하수가 지하에 저장되어 있는 모습이다. 그러니까 지하수는 지하에서 어떤 공간속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암석층 속에 강한 압력으로 저장되어 있는 것이다. 

이 지하수층은 해수면에서 담수층과 해수층이 맞닿는 해안선에서 자연스럽게 솟아 나온다. 이것이 제주의 해안 용천이다. 지질학적 조사 지점을 노두(露頭, outcrops)라고 한다. 지질학자들은 보통 산이나 계곡 아니면 암석이 노출된 해안가를 조사한다. 제주에서 하천을 걸어가다 보면 마치 시루떡과 같은 용암류 단위(lava flow units)가 연속적으로 관찰된다. 

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 소장<br>
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 소장

제주에서 하천 바닥과 하천 양쪽 벽을 구성하고 있는 용암류와 하상퇴적층은 연구가치가 높은 화산지질학적 자원이다. 어릴 적 친구들과 멱 감고 놀던 하천 바닥에 고여 있는 물과 엎드려 몸을 말리던 암반덩어리는 제주만의 독특한 자원이다. 

포클레인으로 부숴버리면 수만년 동안 자연적인 풍화침식 조각품이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자연자원의 복원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하천 바닥의 아름다운 암반을 다시 만드는데 수만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