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공간 오이 ‘누구에게나 김택수는 있다’

사람을 웃게 만드는 일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본인은 전혀 기쁘지 않고 오히려 고통스러운 사정임에도 관객을 웃기기 위해 무대로 나서거나, 기발한 발상을 위해 밤새 머리를 맞대는 코미디언들의 고충은 익히 알려진 바 있다.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반응하는 일명 ‘웃음 코드’가 각자 다르고, 되도록 보다 신선한 자극을 원하는 기대 등 여러 가지 조건들도 따라붙기 마련이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웃음을 만들려면 더더욱 정교한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이런 어려운 조건이지만 웃음이 우리들에게 가져다주는 만족감은 분명하다. 지상파 방송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사라져도 그 자리를 유튜브 같은 새로운 플랫폼들이 채우고 있다. 연극계로 빗대보면 서울 대학로에서 비교적 오랫동안 공연하는 작품들을 보면, 적지 않은 수가 코미디 비중이 높다. 

제주 연극계에서 코미디극을 만나기란 꽤 어려운 일이다. 지역 극단·연극인들이 추구하는 방향성은 각자 존재하지만, '순수하게 웃기는' 연극은 정말 드문드문 제주 관객과 만난다. 27일까지 이어지는 제주 극단 예술공간 오이의 ‘누구에게나 김택수는 있다’는 제주에서 몇 없는 순수한 코미디극 작품으로 부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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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김택수는 있다' 출연진. 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수민, 부지원, 홍서해, 김지은. ⓒ제주의소리

이 작품은 불투명한 상황이 던져지고 이야기가 서서히 풀리는 구조다. 신원불명의 익사자가 지닌 증거물 가운데 종이 하나가 발견된다. 종이에는 의문의 전화번호 3개가 적혀있고, 사건을 맡은 형사는 전화번호 주인들을 용의자로 불러 조사한다. 

작품은 익사자와 수상한 전화번호라는 소재 대신 다른 길을 택한다. 익사 사건은 부수적인 소재에 불과하고, 전화번호 소지자 모두 젊은 여자에 형사는 젊은 남자라는 설정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로 향한다.

특히 익사자가 누군지 찾는 과정에서 여자들 기억 속에 하나씩 존재하는 ‘김택수’라는 이름 석자를 끄집어내고, 작품 진행은 탄력을 받는다.

대학 동아리 선배, 무단횡단 단속 경찰, 제주 여행에서 만난 제주 남자. 제각기 다른 김택수지만 공통점은 흔한 말로 ‘썸 타던 관계’다. 애정전선이 한쪽 주도이거나 혹은 양쪽 쌍방이라는 차이가 다소 있지만, 흐뭇한 기억으로 남아있다는 점은 모두 동일하다. 동시에 과정은 좋았으나 결말이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김택수들이 눈치가 없거나 뻔뻔하거나 하는 식으로 하나씩 아쉬운 성격 역시 동일하다. 이렇게 작품은 세 용의자의 세 가지 사연을 중심으로 웃음을 만든다.

등장인물로 만들어낸 웃음도 빠질 수 없는데, 그 중에서도 용의자3역의 배우 김수민이 가장 큰 힘을 가진다. 냉철한 검사와 드라마 마니아라는 이중적인 설정으로 반전 매력을 선사한다. 홍서해, 김지은, 김수민이라는 젊은 여자 배우 세 명이 만들어내는 유기적인 조합은 작품의 가장 큰 동력이다. 1인 4역으로 애쓴 배우 부지원도 인상 깊다. 

웃음 코드는 각자 다르다는 점을 감안하고, 형사가 말실수를 하고 용의자1(배우 홍서해)과 용의자2(김지은)가 서로 다른 말을 쏟아내는 장면은 두 사람이 몰아치고 형사가 곤란해 하며 정신 없지만, 확실하게 웃음을 자극하기에는 부족해보여 기억에 남는다. 용의자3 등장 전·후 대비되는 분위기는 의도한 설정일 수 있지만 크게 체감된다.

그렇지만 아기자기한 세트 구성, 빠르게 치고 들어가는 속도감 있는 전개, 제주어를 포함한 재치있는 유머들, 유쾌한 마무리까지. ‘누구에게나 김택수는 있다’는 관객을 즐겁게 만드는 코미디극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무엇보다 말 그대로 ‘누구에게나’ 한두 명씩 있는 그때 그 시절 속의 인연을 슬쩍 찔러보기에 기분 좋게 웃을 수 있다.

이 작품은 2017년 초연한 이후 두 번째 공연이다. 처음에는 작품을 쓴 전혁준 작가가 연출까지 맡았지만 이번에는 김소여 연출로 만들었다. 연출은 “공연이 끝나고 나가면서 우리 추억 속의 김택수를 오랜만에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 유쾌한 1시간 20분이 되시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슬슬 더워지는 요즘, 부담 없이 코미디 연극 한 편 보고 싶다면 ‘누구에게나 김택수는 있다’는 괜찮은 선택이 되겠다. 

공연은 6월 27일까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3시와 7시마다 소극장 예술공간 오이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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