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작가 한진오, 대한민국 도슨트 8번째 ‘제주 동쪽’ 펴내

출처=21세기북스 누리집.

제주 섬의 설화, 역사, 자연을 직접 보고 들으며 담아낸 책이 나왔다. 특히 조천부터 남원까지 ‘제주 동쪽’ 지역에 주목한 한진오 작가의 ‘제주 동쪽’(21세기북스)이다.

이 책은 출판사가 ‘한국의 땅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라는 주제로 이어가는 기획물 ‘대한민국 도슨트’의 일환이다. 국내 최초 지역별 인문지리서를 표방하며 지금까지 속초, 인천, 목포, 춘천, 신안, 통영, 군산까지 이어왔는데 최신판인 여덟 번째가 바로 ‘제주 동쪽’이다.

“섬 한가운데 제주 전역에 걸쳐 자리한 한라산을 비롯해, 조천읍과 구좌읍에 뻗어있는 거문오름과 성산읍의 성산일출봉”과 “해초 덮은 너럭바위의 행렬이 장관을 이루는 광치기해변, 제주 안의 제주 우도, 잊지 못할 숲 트레킹을 선물하는 머체왓숲길, 기암괴석과 한반도를 품은 해변산책로로 유명한 큰엉해안경승지” 등 제주 동쪽에는 그 만의 매력을 품은 자연 경관이 자리하고 있다.

‘제주 동쪽’은 구좌읍, 남원읍, 성산읍, 우도면, 조천읍, 표선면까지 분포한 경관 뿐만 아니라 자연 위에서 피어난 설화·역사도 함께 소개한다.

“창조의 신 설문대할망과 원조 수호신 금백조”에 “바다로 들어가는 길목 용궁올레와 칼선다리를 세우게 한 해녀 송 씨의 이야기”를 비롯해 “탐라를 건국한 삼신인과 500m에 이르는 모래 해변을 하루아침에 만들었다는 당캐할망 설화” 등 동쪽에서 전해지는 옛 이야기를 보기 좋게 정리했다.

이런 섬세함은 저자가 제주의 ‘무속·설화’에 매진해왔기에 가능한 구성이다. 뿐만 아니라 “유적지 안내문, 위령비, 아기무덤 등 공식적인 희생자 추모를 위한 장소의 이야기부터, 공간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사람에게서 전해지고 기억에 남은 많은 이야기까지 제주 동쪽의 아픈 역사를 가감 없이” 풀어놓는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비현실적인 아름다움뿐이다. 아득하게 펼쳐진 모래톱과 그 위의 너럭바위 행렬은 파도가 아니면 누구도 빚어내지 못할 절정의 풍광이다. 노련한 석공이 다듬기라도 한 것 같은 바위 위에는 키 작은 해초들이 밀림을 이루고 있다. 이 밀림은 계절에 따라 싱그러운 연초록빛이었다가 적갈색 카펫처럼 변신한다. 조간대 너럭바위에 붙은 생명은 해초뿐이 아니다. 바위마다 둥글둥글한 조수웅덩이들이 보석처럼 빛을 낸다. 그 조그만 웅덩이를 잠자코 들여다보면 또 하나의 은하가 그 속에 숨어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광치기해변’ 가운데

제주는 널리 알려진 대로 1만 8천에 이르는 수많은 신들이 곳곳을 지키는 신화의 섬이다. 웹툰에서 영화까지 공전의 히트를 쳤던 작품 ‘신과 함께’도 제주신화 중 하나인 차사본풀이와 문전본풀이를 모티프로 삼은 작품이다. 수산초등학교의 세 번째 보물인 감귤밭 한편의 ‘진안할망당’도 수많은 신들 중 한 여신을 모신 신전이다. 여신의 이름이 바로 진안할망인데 진성 안에 모신 할머니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 ‘수산진성’ 가운데

꼬리에 꼬리를 물던 인명 살상은 1949년 1월 17일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학살로 이어졌다. 이날 아침 주민들을 모두 북촌국민학교 운동장에 모이게 한 토벌대는 온 마을에 불을 질러 마을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북촌국민학교에서의 총격을 시작으로, 400명 넘는 주민들이 총탄의 희생양이 되었다. 사건이 있고 난 뒤 오랫동안 북촌리는 무남촌(無男村)으로 불리게 되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죽임을 당했지만 남자라는 이유로 폭도의 혐의를 받고 죽은 사람이 넘쳐난 까닭에 생긴 끔찍한 별명이었다.

- ‘너븐숭이’ 가운데

21세기북스는 책 소개에서 “제주 신화와 굿의 매력에 빠져 오랜 시간 제주 곳곳을 발로 뛰며 기록해온 저자는 제주 동쪽이야말로 깊은 역사와 특별한 이야기가 숨겨진 빛나는 곳이라 말한다”면서 “제주 동쪽에는 세계도 반한 아름다운 풍경과 그 속에 숨 쉬고 있는 신과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그 오롯한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 23곳의 장소를 선정했다”고 소개한다.

저자는 집필을 위해 동쪽 구석구석을 누비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예상치 못한 여러 사고를 겪기도 했다. 책 어디를 살펴도 보이지 않겠지만, 첫 장부터 마지막 288쪽을 채우기까지 저자가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견디며 몰두했다는 사실을 사족으로 남긴다.

한진오는 제주도굿에 빠져 탈장르 창작활동을 벌이는 작가다. 스스로 ‘제주가 낳고 세계가 버린 딴따라 무허가 인간문화재’라고 너스레를 떤다. 그는 자신의 탈장르 창작 활동에는 굿의 ‘비결정성’과 ‘주술적 사실주의’가 관통한다고 소개한다. 저서로 제주신화 담론집 ‘모든 것의 처음, 신화’(한그루, 2019), 희곡집 ‘사라진 것들의 미래’(걷는사람, 2020)가 있고 공저로 ‘이용옥 심방 본풀이’(보고사, 2009) 등 다수가 있다.

21세기북스, 288쪽, 1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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