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왓 칼럼] 역사 속에서의 장애, 모습의 차이가 가치의 차이는 아니다

편견으로 무장한 이들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여전히 반인권적 발언과 행동을 주저하지 않는 일들을 우리는 종종 목격하곤 합니다. 존재 자체로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들이 있어선 안됩니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난민 등 대상은 다르나 일상 곳곳에서 여전히 차별이나 혐오, 폭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인권문제에 천착한 '인권왓 칼럼'을 격주로 연재합니다. 인권활동가들의 현장 목소리를 싣습니다. [편집자 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을 보다 보면 독질 또는 폐질이라는 생소한 단어를 접하게 된다. 독질은 매우 위독한 상태를 말하고, 폐질은 말 그대로 고칠 수 없는 상태를 뜻한다. 의학의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이 시대에는 손이나 다리를 심하게 다치면 장애를 입었고, 갑작스러운 고열로 인해 시각이 손상되면 시각장애인이 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세종 또한 시각장애를 갖고 있었으며, 시각장애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더 잘 알기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실시했다는 것은 기록에서 알 수 있다. 위와 같이 조선시대에서의 장애는 극복이 아닌 질병으로 인식하고, 장애인은 돌봄의 대상이 아닌 동등한 사람으로서 존중받았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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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서의 장애인은 동등한 사람으로서 존중받았던 시절이 존재한다. 우리는 존중받았던 시절의 의미를 계승하고 장애인 또한 동등한 주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모습의 차이가 가치의 차이는 아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시간이 흘러 일제강점기에는 장애인을 위한 정책들은 약화 되었고, 수많은 장애인은 차별과 억압으로 범죄자, 실업자 등으로 취급을 받는 사람으로 전락하였다. 이후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갈 곳 없는 장애인을 지역사회와 분리된 공간에서 보호하자는 측면에서 한국전쟁 때 사용했던 시설들을 장애인 시설로 사용하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형 거주시설은 이 시기에 만들어졌으며 88올림픽을 개최하였던 1980년대에는 도심 외곽지역까지 대형시설을 확장하였다. 확장된 거주시설에서는 장애인 학대가 빈번하게 일어났으며 돌봄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시설에서는 자기 결정과 선택권은 없었다. 우리나라의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하였지만, 사회적인 의식은 반대로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국제적으로 장애인에 대한 인권이 강조되고 국내에서는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지역사회 서비스기관들을 설립하기 시작하였다. 사회적 모델이 제시되었고 자립생활운동이 시작되고 나서부터는 장애인 당사자 중심으로 서비스 요구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닌 동등한 주체로서 이동권, 접근권, 교육권 등 당사자의 다양한 목소리가 이슈가 되고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기반들이 갖춰지기 시작한 시점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럼 현재의 이슈는 무엇일까? 문재인정부는 장애인분야의 국정과제로 ‘탈시설’과 ‘지역사회 정착환경 조성’을 포함하였다. 집권 5년차인 지금 무엇이 달라졌을까? 장애등급제를 폐지하였지만, 서비스 개편에 따른 예산확대는 없었다. 탈시설을 추진한다고 하지만 커뮤니티케어는 탈시설이 전제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이 지역사회의 동등한 주체로서 살아가기 위한 것인지 또다시 장애인을 돌봄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다. 혹여나 돌봄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다면 정책을 추진하는 사람들의 장애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과거의 정책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정책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그에 따른 예산은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 지역 간의 균형은 어떻게 맞출 것인지 등 다양한 고민을 해야 한다.

역사 속에서의 장애인은 시혜와 동정, 또는 돌봄의 대상이 되었던 시절이 있었던 반면 동등한 사람으로서 존중받았던 시절 또한 존재한다. 우리는 존중받았던 시절의 의미를 계승하고 장애인 또한 동등한 주체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모습의 차이가 가치의 차이는 아니다. / 제주장애인인권포럼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성환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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