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⑥] 하천정비 아닌, 범람원을 제주도에서 매입해야

한라산을 기점으로 남북으로 수많은 혈관처럼 뻗어있는 제주의 하천은 도외지역과는 전혀 다른 지질·생태·경관적 특징을 갖고 있다. 화산활동 때문에 만들어져, 물이 스며드는 특성과 급경사로 인해 하천의 물이 급속도로 바다로 흘러가 버려 도외지역처럼 유유히 흐르는 강은 없지만, 용암 암반 위에 형성된 수많은 소(沼)가 오아시스처럼 수없이 흩어져있다. 

또한, 도외지역의 강처럼 수변 지역이 수생식물대가 아닌 울창한 수림과 기암괴석으로 형성되어 기나긴 녹색 띠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독특한 제주의 하천은 그동안 하천정비라는 이름으로 원형이 무참히도 훼손되었다. 특히, 제주도에서 가장 길고 복잡한 하천인 천미천은 대표적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하천정비사업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최근 또다시 제주시와 서귀포시 권역에 걸쳐 정비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 환경부를 중심으로 지난 하천 개발사업의 문제점을 반성하고 생태하천 복원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여전히 제주도 당국은 토건 중심의 하천정비사업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제주환경운동연합은 천미천 정비사업의 문제점을 다각적으로 분석하는 기획연재를 시작했다. 천미천을 중심으로 하되 더불어 제주도 하천정비의 전반적인 문제점도 돌아보고자 한다. 기고는 고병련 제주국제대 교수, 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 소장, 양수남 제주환경운동연합 대안사회국장의 순으로 6회에 걸쳐 싣는다. 

이번 회는 6회차인 마지막회로 지난번 5회차에 이어 양수남 대안사회국장의 글을 싣는다. 

양수남 제주환경운동연합 대안사회국장

# 천미천의 상류부터 하류까지 하천정비 공사 중

천미천은 큰 줄기인 본류 이외에도 작은 줄기인 지류가 상당히 많은 하천이다. 하늘에서 바라보면 마치 사람의 손금 모양이나 나뭇가지 모양을 닮았다. 이처럼 변화무쌍한 모양의 천미천은 큰 물줄기를 이루는 본류로 이어지기까지 60여 개의 지류와 합류한다. 그래서 김정호는 1861년 ‘대동여지도’에서 제주도를 그렸을 때도 하천 중, 천미천을 줄기가 가장 길고 복잡한 하천으로 묘사했던 것이다. 

천미천의 중류에 해당하는 천미천 구좌지구 공사. 높은 제방이 만들어졌다. 사진=제주환경운동연합. ⓒ제주의소리

이처럼 작은 지류들이 합쳐지면서 매우 큰 넓이의 하천을 이루게 되었다. 천미천을 하류부터 상류로 나눈다면 하류는 바닷가에서 성읍2리 마을 입구까지이고 중류는 성읍2리~교래 사거리의 돔배오름 일대이고 상류는 돔배오름에서 해발 1,100m 일대 발원지까지이다.

그런데 이미 하류는 1990년대 초부터 정비사업이 이뤄졌고 또다시 최근에도 제방 공사를 중심으로 한 하천정비사업(천미천 표선지구)이 추진되고 있다. 중류도 마찬가지이다. 중류는 제주시 권역으로서 천미천 구좌지구라는 이름으로 송당리 비치미오름 일대에서 교래리 사무소 일대까지 현재 정비공사가 진행 중이다. 그러니까 하류와 중류 일대 모두가 공사 중인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721~교래리 제4교래교’2.8km의 천미천 정비계획이 포함된 제주시 지방하천 하천 기본계획 수립 전략환경영향평가도 통과되었다. 이 구간은 돔배오름을 포함한 구간으로서 돔배오름을 기준으로 위아래가 정비계획에 포함된 것이다. 즉, 이 구간은 천미천의 상류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현재 천미천의 상류부터 중류, 하류 가릴 것 없이 모두 하천 정비구간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물론, 동부지역의 거의 유일한 하천이라고 할 수 있는 천미천은 우기 때 빗물을 집중적으로 받아들이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성읍민속마을, 신천리, 신풍리, 하천리 등의 하류 지역 마을들은 큰비가 올 때 침수피해를 겪었던 곳들이다. 그래서 일찍부터 침수피해 방지를 위한 사업을 했었다. 이는 당연히 필요한 일이다. 주민들의 인명보호와 재산피해를 막는 일은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하는 책무이기 때문이다. 
 

# 하천을 파괴하는 하천정비가 아닌 범람원을 제주도에서 매입해야!

그런데, 문제는 두 가지다. 첫째는 공사 방식의 문제이다. 제주도 하천의 형태는 오랜 세월 동안 고난의 흔적이다. 그 고난의 흔적은 기암괴석과 소(沼)라는 형태로 제주만의 하천 지형을 만들어냈다. 또한, 오랜 세월 동안 식물들은 치열한 투쟁의 역사를 통해 하천의 암벽 양안에 울울창창한 숲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독특한 지형과 생태계는 한반도와 부속도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제주의 하천만이 가진 것이다. 또한, 이 지형은 생태적 가치뿐만 아니라 자연적인 재해 방지 효과도 갖고 있다. 큰비가 올 때 큰 바위와 소, 숲 그리고 구불구불한 지형은 유속을 늦춰주고 주변 지역의 침수피해를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 물론 큰 홍수가 터질 때는 무력화되기도 하지만 웬만한 물은 이 지형 안에서 해결했다.

ⓒ제주의소리
천미천의 중류에 해당하는 천미천 구좌지구 구간의 대형 소. 사진=제주환경운동연합. ⓒ제주의소리

그런데 제주 하천의 생태 환경적 가치와 자연적인 재해 방지 기능이 하천정비라는 명분으로 수십 년간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중에서도 천미천은 대표적이다. 아마 도내에서도 하천정비가 가장 많이 된 하천일 것으로 짐작한다. 

둘째는, 홍수 피해 방지를 위한 명분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너무 과도하다는 것이다. 지난 회에서 언급했듯이 천미천 하류와 중류 일대는 하천정비뿐만 아니라 도내 최대의 성읍 저수지가 건설되어 있다. 그런데 최근에 성읍 저수지 앞에 또다시 홍수 피해 방지라는 명분으로 저류지 건설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과연, 그동안 천미천 정비사업, 성읍 저수지 건설사업으로 인한 홍수피해 방지에 대한 투입 대비 성과 분석이 나온 적이 있었던가? 수많은 예산이 투입되었다면 그만큼의 홍수피해 방지 효과가 나왔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한 분석도 없이 또다시 천미천 정비사업에 수백억 원이 투입되고 있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최근, 제주환경운동연합은 행정당국에 199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천미천 정비사업에 대한 공사 구간, 예산 등 사업내용에 대해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그런데 행정당국은 그러한 자료가 없다는 회신을 해왔다. 그동안 수많은 예산을 들인 사업내용이 파악이 안 된다면 행정당국은 그동안 하천정비사업을 종합적인 계획이 아닌 주먹구구식으로 해왔단 것인가?

즉, 수많은 예산이 투입된 데 비해 천미천 정비 명분은 미흡하고 이를 뒷받침해 줄 근거자료도 명확하지 않다. 천미천은 예전부터 침수피해 방지를 목적으로 이미 하상(하천의 바닥) 평탄화, 제방 건설 등 하천정비 작업으로 인해 원형을 상당 부분 상실한 상태이다. 그렇다면 기존 하천정비로 인한 침수피해 방지 효과에 대한 평가가 먼저 나왔어야 하며 이 평가를 토대로 하천정비 계획이 시행되는 것이 순리이다.

천미천 구좌지구의 우안 5지구. 천미천 내에서도 가장 큰 소를 갖고 있다. 오른쪽으로 제방을 건설할 계획이다. 그런데 하천 오른쪽 바로 옆에 타운 하우스 13개 동이 건설되고 있다. 사진=제주환경운동연합. ⓒ제주의소리

그리고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침수피해를 주로 받는 곳은 대부분 하천과 인접한 농지 등이다. 이런 곳은 원래 홍수터(=범람원, 주기적인 범람의 피해를 받기 쉬운 지역)였다. 태풍이나 홍수가 있을 때 물에 잠기는 곳을 말한다. 그래서 하천의 범위는 이 홍수터를 포함해야 한다. 수시로 범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제주도의 하천정비는 이 범람원이 있는 곳을 보호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하천을 변형시키는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제주도 하천의 원형이 파괴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공사 방식을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하천정비 비용을 이용하여 범람원을 제주도에서 매입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범람원까지도 하천의 범위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최근 5년 동안의 하천공사비만 3300억 원을 넘어선다. 이 많은 돈으로 하천을 파괴하는 공사를 할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공사만 하고 범람원을 매입하는 방향으로 틀어야 한다. 

# 침수 피해 방지 목표와 맞지않는 천미천 정비계획

제주시 당국에서 추진하는 천미천 구좌지구의 경우 천미천의 중류에 해당한다. 그런데 제주환경운동연합이 사업계획 구간을 모두 조사해 본 결과, 하천 주변이 숲이거나 목장지대가 많았다. 하천정비의 이유가 침수피해 예방이라면, 피해가 있는 지역이 가옥이 있거나 농지가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 

천미천 구좌지구의 우안 5지구 바로 옆에 13개 동의 타운 하우스가 건설되고 있다. 침수피해 지역이어서 제방을 건설하는 천미천 정비계획이 통과된 것인데 바로 옆에 대규모 건축물이 들어서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사진=제주환경운동연합. ⓒ제주의소리

농지가 있다 하더라도 필지가 많지 않았다. 이 정도의 농지라면 침수피해가 나는 농지를 매입하는 정도로 해도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 그런데도 굳이 양안의 상록활엽수림을 훼손하면서까지 제방을 건설해야 하는지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 게다가 천미천 구좌지구 우안 5지구의 경우 하천 옆으로 대규모의 타운 하우스가 건설되고 있다. 

천미천 구좌지구 계획 중 ‘우안 5지구’는 천미천 내에서도 가장 큰 소(沼)를 갖고 있다고 할 정도로 물이 많은 곳이고 경관이 아름다운 곳이다. 이곳은 성읍 저수지에서 상류로서 천미천의 중류에 해당하는 곳으로서 경관이 아름다워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제주환경운동연합이 현장을 조사해보니 하천정비 대상으로서 선정한 필요성이 매우 낮아 보였다. 특히 하천정비구역이라고 하면 침수구역이라는 뜻인데, 정비구역 10m도 되지 않는 거리에 타운 하우스 허가가 나서 13개 동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상습 침수 지역이어서 제방을 건설하는 하천 정비 계획을 세운 것인데 그 바로 옆으로 개발사업 허가를 내준 건 앞뒤가 안 맞는 행정이다. 이는 천미천 정비사업의 타당성 자체를 흔들 수도 있는 사안이다. 제주시 당국은 이 물음에 답해야 할 것이다.

# 정부에서도 하천 관리 정책의 대전환을 시작했다

지난 이명박 정권은 4대강 사업을 벌이면서 강을 인공적인 수로로 변형시켜 버렸다. 그 결과 여름철마다 녹조라테가 만들어지는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 그래서 정부는 2020년 6월, 우리 강 자연성 회복구상을 발표했다. '사람과 자연이 하나 되어 살아가는 우리 강'이라는 비전 아래 '더불어 사는 강', '맑은 물이 흐르는 강', '살아 움직이는 강', '생명이 숨 쉬는 강' 등 4가지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즉, 그동안의 하천을 인위적으로 변형시켰던 하천 정비 역사를 벗어나 하천 복원을 중심으로 한 하천 관리 정책의 대전환을 선언한 것이다. 

또한, 국가 물관리위원회는 제주도가 포함된 ‘영산강․섬진강․제주권 자연성 회복 구상(안) 마련을 위한 연구’를 통해 제주도의 하천정비문제를 반성하고 새로운 하천 관리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하천의 생태학적 가치 훼손을 최소화하는 범위내에서 하천 정비사업을 추진하고 하천 인근의 상습 침수지역은 토지를 매입해 관리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양수남 제주환경운동연합 대안사회국장

정부의 하천 관리 정책이 이처럼 크게 바뀌고 있지만 제주도당국은 제자리걸음이다. 제주의 하천 정비사업은 규모만 다를 뿐 또 하나의 4대강 사업과 다를 바 없다. 기존의 하천 정비사업 방식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천미천 정비사업에 대한 추진은 그 시금석이 될 수 있다. 현재 공사 중인 천미천 구좌지구와 아직 공사를 시작하지 않은 천미천 표선지구는 공사계획을 백지화하고 홍수피해 방지와 하천 원형 훼손 방지를 위한 새로운 계획을 세워야 한다.

 * 6회 차로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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