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 (24) 한림읍 금능리 ‘북스토어 아베끄’

마을책방은 단순한 기호품을 파는 곳이 아닙니다. 대형서점처럼 책을 어마어마하게 팔아치우는 곳은 더욱 아닙니다. 후미진 도심 골목이나 시골 언저리에서 마을책방을 만난다면 그것은 행운이지요. 마을 초입 팽나무 아래 마을사람들이 모여들듯 책벌레들이 도란도란 어우러질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곳입니다. 제주도 마을 곳곳에 작은 책방들이 사람을 살리고, 다시 사람이 마을을 살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마을책방의 가치입니다. [제주의소리] 시민기자 고봉선 시인이 바람을 쐬듯 책방마실을 다니고 있습니다.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마을 책방’에서 책방지기의 책 살림 이야기를 시인을 통해 듣습니다. [편집자 글] 

장마를 불러들이며 앞다퉈 피어나는 수국과 치자꽃, 6월은 땡볕에서 여름꽃을 밀어 올리느라 연일 바쁘다. 훤칠한 키를 자랑하며 전성기를 누리던 접시꽃도 6월의 가운데에서 슬슬 그 빛을 잃어간다. 오로지 내비게이션 안내에 따라 책방을 찾아가는 중산간 길이 낯설다. 아직 산중에 있는가 싶었는데 웬걸, 난 이미 금능해수욕장에 도착해 있었다. 쪽빛을 노래하는 금능해수욕장 옆에서 “북스토어 아베끄”를 운영하는 책방지기이자 방송작가인 강수희 씨를 만났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금능1길로 접어들면 바로 책방 아베끄로 들어가는 골목을 만날 수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제주에 머무르다”

책방지기 강수희 씨 고향은 서울, 하지만 제주라고 해야 옳을 듯도 싶다. 이곳엔 할머니, 고모, 삼촌, 사촌 등이 모두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강수희 씨는 대학 졸업 후 방송작가로 일했다. 일하던 중 오가던 제주를 동경했고, 급기야는 금능에 정착하였다.

오로지 한 집을 위한 골목, 책방으로 들어가는 골목은 꽤 길다. 긴 만큼 또 운치도 있다. 누구라도 이 골목을 따라서 걷다 보면 고향에 다다를 것 같은 기분이 들 것이다. 금방이라도 머릿수건 두르고 호미를 쥔 어머니께서 구부러진 허리로 달려와 반겨줄 것만 같다. 아니다, 막 물질에서 돌아온 해녀복 차림으로 달려온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어쨌든 마당에 다다르면 고향의 품인 듯 어머니 대신 아담한 책방이 두 팔 벌려 반긴다. 거기 그곳, 책방 아베끄에서 어깨동무한 책들이 독서 문화를 퍼뜨리고 있다. 

2014년에 잠시 머무르고자 온 제주, 그때만 해도 제주로 이주할 생각은 없었다. 방송작가인 강수희 씨는 재택에서 작업하고 있었다. 아파트가 밀집한 도심,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있는 듯 숨이 막혔다. 자꾸만 자연이 부르는 것 같았다.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좋아하는 장소에서 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장대 같은 비가 쏟아지던 여름날 새벽, 강수희 씨는 노트북과 캐리어를 끌고 제주로 내려왔다. 그리고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르기 시작했다. 그 머무름의 시작은 한달살이로 이어지고, 다시 석달살이가 되었다. 드디어 제주에서 드라마 작업을 마쳤다. 하지만 떠나기 싫었다. 결국에는 눌러앉았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 끝나는 지점에 대문이 있고, 다시 골목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고민”

MBC라디오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 《두 시의 데이트》, 심야방송 청소년 프로그램인 신동•김신영의 《심심타파》, 《원더풀 라디오》 등에서 메인 작가로 활동하던 강수희 씨는 아침 드라마에서 보조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예능에서 드라마 보조작가로 이어가던 시기, 잠시 살아 본 제주는 힐링의 장소였다. 도심과 전혀 다른 힐링의 제주, 정확히 말해서 바닷가 금능 마을은 아침 드라마 보조작가를 마지막으로 자신의 작품을 쓰라고 강수희 씨에게 속삭이는 듯하였다. 

금능이 너무 좋아서, 금능 마을과 한바탕 누리는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것을 쓰기 위해 정착했건만 정작 작품은 써지지 않았다. 그러는 중에도 일이 들어오면 서울을 오가며 일했다. 초집중해도 나올까 말까 한 드라마,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공모전을 넣었다. 경쟁률이 만만치 않은 공모전, 떨어졌다. 집중도 되지 않았다. 방송이고 드라마고 안 하겠다며 방송 제의도 거절했다. 

이곳에서 직업이 있어야 했다. 지역 도서관에 출근하기로 했다. 오후 2시에 출근하고 11시 퇴근, 의외로 힘들었다. 퇴근할 땐 무섭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저녁 없는 삶이 싫었다. 방송 제의는 계속 들어왔지만, 대책이 필요했다. 

안채와 바깥채가 공존하는 제주 전통의 공간을 활용할 수는 없을까? 때마침 작가 선•후배들이 책을 막 내고 있었다. 20~30대 중•후반인 선•후배들은 특히 연애 에세이를 많이 냈다. 그 신간들을 도서관에 입고하고, 읽다가 퍼뜩 머릿속에 켜지는 불이 있었다. ‘연애 소설, 연애 에세이 등 연애 관련 책을 판매하는 서점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젊은이는 많고, 본인은 이런 장르의 책을 쓰는 사람들 세계를 알고 있다. 서점을 내면 이들을 초대해서 북토크도 할 수 있다. 충분한 인프라가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서울에선 작은 동네책방이 스멀스멀 유행처럼 올라오고 있을 때다. 그 유행의 물결은 머잖아 제주까지 흘러들 것이다. 제주도에는 동네책방이 많지 않은 때였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마당에 들어서면 책방지기 강수희 씨가 꾸민 화단에 수국이 피어나고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꿈을 향하여”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던가. 책방지기는 고등학생 때부터 라디오 사연을 즐겨 썼고, 당선 선물도 종종 받았다. 체질이었을까? 방송일이 재미있을 것 같았다. 대학 진학은 언론정보 쪽으로 결정했다. 돌이켜보면 좋아하는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꿈은 정하지 않은 때였다. 

나 역시 어렴풋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은 티브이보다는 라디오와 친했다. 늦은 밤, 왕영은•전영록이 진행했던 《우리끼리 만나요》, 이종환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즐겨 들었다. 책방지기의 이야기를 듣노라니 문득 그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밤의 분위기답게 잔잔하면서도 분위기 있는 진행자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잠시나마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어 행복했다.

대학 2년, 이때 강수희 씨는 방송작가가 되기로 했다. 마지막 학기엔 방송 아카데미에 등록하고 학점을 관리했다. 아카데미는 7월, 마지막 학기는 9월에 개강한다. 개강 후 교수님께 방송작가가 되겠다고 했더니 기꺼이 리포트를 대체하는 등 배려해 주셨다. 졸업하면서 SBS 예능으로 취업했다. 드디어 방송작가로 활동하게 되었다. 

방송작가로 취업했다고 해도 바로 대본을 쓰는 건 아니다. 막내 작가의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막내 작가는 집필 외에도 자잘한 업무가 많다. 촬영이며 연예인 관리, 장소는 물론 연예인 섭외까지, 게다가 편집도 도와야 하고 자료도 찾아야 한다. 홍보물도 써야 한다. 예능방송 프로그램 하나가 만들어지려면 이처럼 많은 손이 따른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 앞에 책방임을 알리는 간판과 함께 몇 개의 화분이 놓여 있다. 사진은 북스토어 아베끄에서 제공해 주셨다. ⓒ제주의소리

“손님”

강수희 씨는 책방 아베끄의 행사 공지용으로 인스타그램을 이용하고 있다. 날마다 아침이면 그날 오픈 여부와 영업시간 등 오픈 피드를 올린다. 기본적인 영업시간이 있지만 1인 책방이라는 특성상 부득불 일이 생기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많은 손님이 인스타그램의 공지를 보며 찾아온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인스타그램을 보고 오는 건 아니다. 이용하지 않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가끔은 ‘제주도 가면 아베끄에 가 봐라.’ 하는 소개를 받고 왔다는 손님이 있다. 최근 마을 안쪽에 생긴 이름난 카페에 왔다가 검색하고 오는 손님도 있다. 이렇게 보면 또 모든 손님이 관광객인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도 않다. 비율상으로 따지면 6대 4 정도로 지역주민도 꽤 있는 편이다. 

음료를 판매하는 곳은 아니지만, 책방 아베끄를 관광지 카페처럼 생각하고 오는 사람도 있다. 주변 게스트하우스에는 사색이나 독서를 즐기는 친구들이 종종 내려온다. 한달살이 혹은 몇달살이로 오는 사람들, 게스트하우스 스텝들, 책방지기의 경우처럼 제주도가 좋아서 잠시 내려왔다가 정착하게 된 프로세스로 그 과정에 있는 사람들도 있다. 모두 아베끄를 즐겨 찾는 사람들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 아베끄에는 사랑을 소재로 한 연애 에세이, 연애 소설은 물론 그 밖에도 다양한 장르의 책들이 있다. 사진은 아베끄에서 제공해 주셨다. ⓒ제주의소리

“책방을 하게 된 이유” 

제주에서 책방을 하겠다고 생각했던 이유 중 하나는 선•후배들이 책을 내면서 인프라 이용에 따른 것이다. 둘째는 시내권에 서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 외 지역에선 책을 구매할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시내권을 벗어난 지역에서는 책을 둘러보고 펼쳐보고 구매하는 등의 행위를 누릴 수 없다. 서점이 가까이 있다면 어떨까? 그렇게만 되면 일부러 시내까지 나가지 않아도 된다. 아이도 어른도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맘껏 책방 문화를 누릴 수 있다. 

뭍에서 온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들 대부분은 어느 정도 문화를 누리던 사람들이다. 당연히 그들만의 독서량이 있다. 그러나 제주에 오면 그들은 책방에서 책 고르는 행위를 누릴 수 없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꼭 필요한 게 동네책방이 아닐까. 수요가 될 거란 생각도 들었다. 

책방지기 역시 서울에선 교보나 영풍문고에 가서 책을 한 보따리씩 사고 스트레스를 푸는 게 낙이었던 사람이다. 뭍에서 내려온 사람 중엔 자신의 처지와 같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생각이 옳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제주에 내려와 온라인으로만 책을 주문하다가 아베끄에서 종이책을 만지며 읽을 수 있으니 좋다는 분들도 계시다. 그런 분들을 만날 때 책방지기는 보람이 크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북스토어 아베끄 내부 중 일부. 창가로는 바다가 보인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파스텔톤 귀부인”

책방 아베끄는 젊은이들이 많이 오는 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중년 부인 한 분이 찾아왔다. 책방 옆에는 책을 좋아하고 책방에서 하룻밤 머무르는 걸 로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북스테이 “오! 사랑”이 있다. 이 사실을 알고 온 중년 부인이었다. 

부인은 “오! 사랑”에 묵으면서 책을 고르기도 하고 말을 붙이기도 했다. 그런데 왜일까? 부인의 말과 행동은 물론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품격이 느껴졌다. 경제력도 충분히 있어 보이는 중년의 부인은 에코백을 메고 있었다. 귀부인처럼 보이면서도 명품으로 치장한 게 아니라 젊은 감각을 갖고 있었다. 마치 파스텔톤, 그 느낌이었다. 고왔고, 왠지 글을 쓰는 분일 것만 같았다. 부쩍 궁금증이 일었다. 직업을 묻는 게 실례가 된다는 걸 알면서도 궁금증을 이길 수 없었던 책방지기는 혹시 문인이냐고 여쭤보았다.

글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부인은 그쪽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알고 봤더니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이었다. 그 뒤로도 방학이면 다시 왔다. 세 번째에는 남편과 함께였다. 부부는 일주일을 묵으며 아침저녁으로 금능 주변을 산책하는 등 여유를 즐겼다.
 
이분이 인상 깊은 이유는 따로 있다. 처음 왔을 때 몇 박 묵은 후 떠나는 날 새벽이었다. 공항으로 가기 위해 책방을 나선 부인은 그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가는 게 아니라 들고 갔다. 골목은 흙먼지가 이는 곳이 아니다. 당연히 질퍽거릴 일도 없었다.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으므로 편하게 돌돌돌 끌고 갈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잔디 위에서는 끌고 가는 것이다. 잔디를 넘어서면 다시 들고 갔다. 알고 봤더니 새벽에 주민들이 깰까 봐 걱정되어서였다. 충분한 위치의 소셜 포지션에 계신 분이 새벽에 주민들을 깨울까 저어하는 모습은 책방지기를 뭉클하게 했다. 강수희 씨가 아베끄 손님을 이야기할 때 그 부인을 제일 먼저 떠올리는 이유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기증한 책들이 꽂혀 있는 ‘당신의 헌책장’이다. 여기서 판매된 금액은 동물보호단체에 기부한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당신의 헌책장”

도내의 손님 중에는 서로 존대하는 단골 친구가 있다. 책방 아베끄는 2017년 7월에 오픈했다. 오픈하기 전인 3~4월에 강수희 씨는 이미 인스타 계정을 만들고 홍보를 시작하고 있었다. 이때 헌책을 기증받아 판매하는 ‘당신의 헌책장’ 코너를 만들면서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당신의 헌책장’은 헌책을 기증받아서 팔고, 판매금액은 동물보호단체에 기부하는 기획 섹션이다. 단, 기증받는 책은 마냥 헌책, 안 팔리는 책이 아니라 기증자의 큐레이션이 담긴 책이어야 한다. 책장에는 칸마다 누구누구의 책이라고 기증자의 이름을 써서 붙여 놓았다. 

‘당신의 헌책장’에 들어갈 책을 기부받는다고 올렸을 때, 그 친구는 에코백 두 개 가득 책을 담고 왔다. 단순히 기증받는 책을 처음 가지고 왔고 지금까지 단골이라는 이유로 아베끄 손님을 이야기할 때 떠오르는 건 아니다. 다독가이자 애독가인 그 친구는 진정으로 책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처음 올 때 그 친구는 아들이 읽었던 동화책과 그림책, 본인이 읽은 책까지 갖고 왔었다. 갖고 온 책마다 내지엔 ‘이 책은 뭐가 좋으며 또 누구한테 받은 책’인지 일일이 메모가 있었다. 나 역시 중고책을 즐겨 구매한다. 중고책을 구매하고 펼쳤을 때 간혹 발견하게 되는 메모도 반가운데, 하물며 책의 서사와도 같은 메모가 있다면 그 책을 읽는 사람은 잠시나마 행복의 나라에 다녀올 수 있잖을까? 잠시 아름다운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책방을 오픈하던 당시엔 모든 것이 특히 감사하고 더 기쁠 때였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3학년 때 좋아했던 책인데 너도 좋아했으면 좋겠다. 내가 이 책을 좋아했던 만큼 네가 좋아했으면 좋겠다.’라는 등 애정이 담긴 어린 아들의 메모, 그 메모들을 보는 순간 강수희 씨는 울컥했다. 눈물을 뽑아내기 충분한 감동이었다. 강수희 씨는 책방을 시작하기 전부터 지금까지 그 손님과 안부를 묻고 전하며 지내고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기증한 책들이 꽂혀 있는 ‘당신의 헌책장’이다. 여기서 판매된 금액은 동물보호단체에 기부한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가장 제주스러운 것이 가장 아베끄스러운 것이다”

책방 아베끄는 규모가 작다. 규모가 크건 작건 책방으로만 살아가기는 사실상 힘들다. 그나마 강수희 씨는 방송일을 하고 있으니 조금 나은 셈이라고 할까. 그러나 이제 자신이 원하는 방송도 예전처럼 많이 잡히지 않는다. 제주도에만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만 있을 수도 없고, 제주도에만 있을 수도 없다.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원고만 보낼 때도 있다. 방송 수입도 워낙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이 또한 비정기적이다. 다른 묘안을 찾아야만 하는 이유다.

작년 이맘때쯤엔 생각지도 않았던 초당옥수수 공구(공동구매)를 진행했었다. 2019년, 아베끄에서 초당옥수수를 맛있게 먹었던 작가가 자신의 에피소드를 담은 책을 출판하면서 초당옥수수와 세트로 묶어 판매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책은 필요 없고 옥수수만 먹고 싶은 사람이 꽤 있었다. 그래서 공구를 진행하게 된 것이었다.

지난번엔 금능 마을에서 일본으로 수출하던 뿔소라 판로가 막혔다. 이걸 어떡하나, 고민하던 부녀회장님께서 ‘뿔소라를 팔아볼 수 있느냐?’는 연락을 주셨다. 뿔소라의 단점은 만만찮은 껍데기다. 삶는 것도 일이고 껍데기를 버리는 것도 일이다. 이 단점을 보완하고 삶아서 진공 포장한 뿔소라였다. 공구가 진행되자 무난하게 팔렸다. 이런 일들이 이어지면서 본의 아니게 아베끄는 제주도 먹거리인 고기도 팔고, 귤도 팔고, 옥수수도 파는 책방이 되었다. 

명색이 책방인데, 주객이 전도되는 건 아닐까? 책방에서 일년살이를 하던 친구는 이와 같은 제주특산물 공구 진행이 아베끄 색깔과 안 맞는 게 아니냐고 걱정도 했다. 아베끄의 정신이랄 것까지야 없지만, 책방지기 역시 아베끄의 이미지가 훼손될까 염려되었다. 아이템은 좋은데, 어떻게 아베끄랑 엮고 버무릴 수 있을까? 숙제였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상 받을 때였다. 그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은 “가장 개인적인 게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원래 마틴 스코세이지 영화감독이 한 말이다. 마틴 스코세이지는 봉준호 감독과 함께 후보에 논의된 감독으로 봉준호 감독이 상 받을 때 시상식 앞 객석에 있었다. 봉준호 감독은 자기가 롤모델로 생각하고 존경하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앞에서 그 말이 항상 자기한테 그렇다고 얘기했다. 

책방지기는 여기서 힌트를 찾고, “가장 제주스러운 것이 가장 아베끄스러운 것이다.”라고 봉준호 감독이 한 말을 변형하여 아베끄와 버무리기로 했다. 제주특산물 공구 진행으로 수익 모델을 만들면 수익 면에서 아베끄를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유행의 흐름이 있어서인지 원활했다. 책방 수입만으로는 인건비는커녕 본전치기만 해도 잘 되는 구조다. 이 부분을 채워줄 제주특산물 공구 진행은 필요로 하는 이들과 지역주민 모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가장 아베끄스러운, 아베끄만이 가질 수 있는 색깔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마당 한쪽 공간 데크 위에 놓인 탁자와 의자가 풍경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행복이란”

쪽빛 바다 해수욕장을 낀 곳에 있는 책방의 장점은 무엇일까? 매출로 따질 때 성수기보다는 9~10월 매출이 더 낫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여름을 넘기고 혼자 여행 오는 경우가 많다. 공간의 장점은 바다가 있는 위치여서 매출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책방지기 본인이 좋아하는 것이다. 워낙 금능을 좋아하기 때문에 책방지기가 발붙이고 살 수 있는 곳이어서 좋은 것이다. 금능이 아니면 굳이 제주에 살 이유가 없다는 책방지기, 그는 산보다 물이 좋은 사람이다. 육지에서도 여의도나 일산 등 항상 물가 근처에 살았다. 책방 아베끄가 있는 금능은 책방지기에게 장점이지 가게의 장점이 아니라는 뜻이다. 금능에서 8년 차가 되는 동안 다른 데서 살아보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처음부터 이곳이 좋았다.

누군가가 나에게 지금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무어라고 대답할까? 물론 추상적인 질문이다. 행복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는 힘들지만, 강수희 씨는 제주도에 와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40대 초반, 20대가 보면 늙은 나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아직은 젊다. 귀농이나 귀촌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년퇴직에 이른 분들이다. 그런데 강수희 씨는 정년퇴직 후에나 누릴법한 일들을 지금 누리고 있다. 제주도에 와서 ‘너무 좋은 고기를 일찍 먹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자신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은 지금 다 누리고 있다는 뜻이다.

결론을 내리자면 ‘행복은 파랑새’다. 청담동이든 어디든 좋다는 곳에 지인들이 있다. 거기 가서 며칠 살아보면 빨리 제주로 오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인다. 이곳에 행복이 있기 때문이다. ‘뒤에 행복이 없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진정한 행복의 근원은 마음에 닿는 풍경 그리고 자연이다. 파랑새는 항상 옆에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에서 나와 100여 미터 정도 내려오면 만날 수 있는 금능해수욕장이다. 해수욕장 한가운데에는 어부상이 서 있다. 오른쪽에는 용천수인 단물깍이 있고, 왼쪽으로는 비양도가 한눈에 보인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금능 마을 바닷가에서 바닷가 마을답게 바다 냄새가 풍기는 골목이 보였다. 아득한 그 시절로 돌아가는 상상에 젖어 한 컷 눌렀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북스토어 아베끄는”

당신은 지금 행복하신가요? 북스토어 아베끄를 찾아가 보세요. 쪽빛 바다 금능해수욕장을 낀 책방에서 ‘당신의 헌책장’ 코너에 담긴 이들의 고운 마음과 함께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책방에는 하룻밤 묵을 수 있는 “오! 사랑”이 있어 북스테이를 즐기는 행복도 맛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너무 좋은 고기를 일찍 먹어 행복으로 가득한 책방지기에게서 행복의 기운을 얻을 수 있습니다. 

찾아가는 길: 제주시 한림읍 금능9길 1-1
인스타: www.instagram.com/bookstay_avec
영업시간: 하절기 13:00~19:00, 동절기 12:00~18:00, 매주 수요일 휴무

# 고봉선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식물과 함께 자랐다. 지금은 허름한 고향 시골집에서 꽃과 함께, 독서지도사를 하며 아이들과 지내고 있다.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 운영위원, 애월문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를 통해 격주로 독자들을 만난다. 마을 책방에 깃든 사람과 책 이야기가 소개된다.저서로는 시집 ‘詩를 먹고 자라는 식물원’, 꽃과 함께 사는 이야기 ‘詩가 사는 기행식물원1, 2, 3, 4’, 동화집 ‘지우개’가 있다. 식물원 시리즈로 전자도서관에 식물원을 꾸미는 게 소망이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