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유일한 해법은 원점으로 돌아가 도민의 소리를 경청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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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제2공항 백지화 전국행동이 16일 오후 국회 본관 계단 앞에서 문재인 정부의 제2공항 백지화 결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외세침탈

국토부가 결국 환경부에 제2공항 건설에 대한 전략환경영향평가서를 제출했다. 사실상 제2공항 건설에 대한 강행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지난 2월 도와 도의회의 공식적 합의하에 실시한 제2공항에 대한 도민 여론조사에서 반대가 우세하게 나온 결과를 국토부 또한 아예 묵살하는 오만한 태도로 나가고 있다. 국토부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자신의 삶의 터전에 대한 운명을 결정하는 권리가 우선적으로 주민에게 있음은 언급조차 할 필요가 없다.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주민에게서 빼앗는 것은 단언컨대 또 다른 ‘외세 침탈’에 다름 아니다.   

4.3 항쟁과 강정사태도 기본적으로 중앙권력이 제주도민들의 민심의 역린을 건드린 결과다. 수만 명의 아까운 인명이 희생될 정도로 치열했던 4.3 항쟁은 8.15 광복 후 민주적, 민족적 해방의 공간에서 강압적인 외세통치를 반대하고 ‘자율적인 주민자치’라는 지극히 소박하면서도 당연한 시대를 앞서간 도민들의 의사를 중앙권력이 총칼로 무참히 짓밟은 결과다. 강정사태 또한 중앙정부가 도민들의 여망인 세계평화를 위한 ‘평화의 섬’을 강제적인 공권력으로 반대 목소리를 탄압하며 일거에 황량한 군사기지촌으로 만들어버린 외세침탈의 대표적 사례다. 

지렁이 

반성 없는 과거의 비극은 미래에도 반복되는 법. 현재 상황이 바로 그 길로 가고 있다. ‘강정의 비극’의 원흉인 MB정권의 적자(嫡子) 중 한 명인 원희룡 지사, 그리고 군사정권부터 이어져 온 개발독재의 잔재인 국토부가 교묘한 앙상블을 이루며 새로운 비극을 부르고 있다. 도민과의 약속을 번복한 원지사의 의도는 대선주자로서의 입지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기승전문재인”식 발언으로 정권과 대립각을 세움으로써 극우세력의 관심을 모으기도 하지만 그의 지지도는 아직도 미미하다. 여전히 급이 안 되는 “잠룡(潛龍)” 아닌 “잠룡(蚕龍)”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한번 타오른 욕망의 불길은 끄기 어려운 법. 대망의 끈을 놓지 못하는 원지사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이런 그에게 8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임기를 무성의하고 빈약한 도정으로 하릴없이 낭비만 했다는 세간의 따가운 눈총을 일거에 무마할 수 있는 그럴듯한 치적의 ‘랜드마크’로서 초대형 토목공사인 제2공항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까. 실상 이런 추측이 사실이 아닐지 모르지만 확연하게 드러난 민심을 부정할 정도로 제2공항에 대한 그의 집착은 도를 넘었다. 제주도민이 아닌 원지사의 개인적 의견만을 묻는 국토부도 마찬가지다. 

속셈

사전 및 예비 타당성 조사가 졸속으로 이뤄지고 환경영향평가도 이미 정해진 결론에 꿰맞춘 격식에 불과하다는 의심은 여전하다. 청정 자연과 유서 깊은 마을들을 마구잡이로 파헤치는 또 다른 “새마을”식 토건개발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는 상태다. 심지어 국토부마저도 이런 무리한 개발이 청정자연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야 하는 제주의 미래만을 위한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제2공항을 강행하는 데는 중앙정부의 다른 ‘속셈’과 더불어 점차 존재이유를 잃어가는 방대한 조직을 지켜야 하는 관료 이기주의가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선의로 생각해도 제2공항 강행의 두 주역 모두 제주 미래를 볼모로 사익을 추구한다는 의혹을 떨칠 수 없다. 땡중이 제사보다 잿밥에 눈독을 들이면 변명도 궁색해지는 법이다. 여론조사에서 “예정지인 성산지역 주민들은 압도적으로 찬성했다. 지역주민 수용성은 확보된 것으로 이해하며, 적극 추진하라는 요구로 해석된다” 고 억지를 부리는 원지사와 국토부의 주장에 실소를 금치 못할 정도다. 물론 숫자는 과학이며 정확한 계산과 절차를 거쳐 명확한 답을 제시한다. 다만 통계 실행자와 해석자의 주관과 의도가 개입되지 않는 조건 하에서 그렇다.

그릇 

문제는 주민수용성을 판단하는데 있어서 주민의 범위를 어디까지 설정할 것인가이다. 원지사와 국토부가 “주민수용성이 확인됐다”는 주장의 근거로 든 것은 제주도민 전체가 아닌 성산지역 주민 5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일 뿐이다. 주민을 성산읍으로 자의적 설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치사한 꼼수는 원지사가 도민여론조사와는 별도로 성산읍 여론조사를 강력하게 요구한 것에서 미리 감지했어야만 했다. 하지만 정상적인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상상조차 못할 일이었다. 대망을 이룰 그릇도 아니고 이뤄서도 안 될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원지사와 국토부는 성산읍으로 한정한 이유를 제2공항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고 변명할 것이다. 하지만 굳이 직접적인 영향을 따진다면 공항부지로 마을전체가 수용당해야 하는 온평리, 신산리, 그리고 난산리 등 실질적 이해당사자인 5개 마을의 의견을 더 우선시해야 함이 당연하다. 잘 아시다시피 이 마을들은 반대의견이 압도적이다. 민심을 거역하는  두 주역이 이미 정해진 결론에 억지로 짜깁기한 해석이라는 비판은 괜한 말이 아니다. 또 “제2공항이 성산읍의 마을버스 정거장인가”라는 한 도민의 냉소도 일리 있는 따끔한 지적이다.

업보   

당초 제2공항에 대한 도민 여론조사를 앞두고 “제주특별자치도가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절차에 의해 도민 의견을 수렴하여 제출할 경우 이를 정책 결정에 충실히 반영, 존중한다”는 국토부의 공언(公言)은 “주민수용성 판단에 있어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도민 전체의 의견”이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너무도 당연하다. 제주도 안에서 성산만이 따로 존재할 수 있는가. 환경용량의 한계와 경제적 비용은 차치하고라도 제2공항이 불러올 관광객 증가로 인해 가중되는 일상생활의 혼잡도와 불편함은 성산읍만이 아닌 도민 전체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이처럼 일시적 궁지만 모면하려는 조삼모사(朝三暮四) 식의 궁색한 변명은 도민을 더욱 기만하는 것이며 들끓는 민심을 오히려 악화시킬 뿐이다. 제2공항의 전격적 결정과 부지 선정에서 시작해서 현재의 환경영향평가까지 국토부는 수많은 문제들과 의혹들 중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솔직하게 답변한 적이 없다. 제2공항을 위한 모든 과정에 걸쳐 불신을 사기만 하는 것은 도민들의 잘못이 아니라 원지사와 국토부의 자업자득이다. 그들은 언제나 도민 여론 따위는 상관없다는 오만한 자세를 보여 왔으며 이번 여론조사 결과를 대하는 태도에서 확인됐을 뿐이다. 

촛불 

자기결정권이 배제된 외생적 개발은 도민들에게 약탈적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중앙정부가 해군기지 설치를 우격다짐으로 관철시킨 강정사태는 장장 8년 이상 “몸을 사리지 않는” 반대 주민들의 저항을 초래했다. 동원된 경찰력이 수만 명이고 체포되거나 연행된 주민들만 거의 일천 명에 달한다. 도민 전체의 공감대가 확인되지 않은 강정사태도 이럴진대, 주민투표나 다름없었던 여론조사 결과마저 불복하고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제2공항을 강행한 결과는 어떻게 될지 불 보듯 뻔하다. 믿는 구석이 기껏 공권력인가. 그러나 촛불의 힘은 이미 확인됐다.

궁극적으로 민심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 제2공항은 제주의 백년대계다. 차분하고 여유 있게 설계해도 결코 늦지 않다. 원점으로 돌아가 진정한 도민의 소리를 경청하라. 이것만이 가래로 막아야 할 것을 호미로 막는 유일한 길이다. / 김헌범 논설위원, 제주한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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