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사무처’된 제주도 공보실...이준석 국힘 대표 23일 제주 일정 실시간 중계하듯 자료 송부

23일 제주시 구좌읍 신재생에너지홍보관 인근 도로에서 전동킥보드를 타고 있는 원희룡 제주도지사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23일 제주시 구좌읍 신재생에너지홍보관 인근 도로에서 전동킥보드를 타고 있는 원희룡 제주도지사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모처럼 제주 일정에 전념했다. 정치권 돌풍의 중심에 선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제주를 찾은 날이다. 원 지사는 당 대표의 수행(?)을 자처했고, 제주도청 공보실은 자연스럽게 정치권의 사무처로 변질됐다.

이준석 대표는 23일 아침 일찍 제주를 방문해 한 시간 간격을 두고 빽빽한 일정으로 하루를 강행군 했다. 

이 대표는 오전 10시 제주4.3평화공원을 방문한데 이어 오전 11시에는 제주시 구좌읍 신재생에너지홍보관, 오후 2시에는 제주더큰내일센터, 오후 3시에는 국민의힘 제주도당을 잇따라 방문했다.

그리고, 이날 대부분 일정에는 원희룡 지사가 밀착 동행했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에 따라 국민의힘 당사 방문에만 빠졌을 뿐, 그 외 온전한 하루를 이 대표에게 할애했다.

현직 도지사가 정치인의 하루 일정을 온전히 동행하는 것도 드문 일이었지만, 제주도 공보관실이 모든 일정을 실시간 중계하는 것은 더욱 이례적인 일이었다.

제주도청 출입기자단에게는 제주도청 프레스룸에 새로운 보도자료가 올라올 시 안내 문자메시지가 발송된다. 평소라면 정례적인 자료 외에 특별한 자료가 제공될 때 메시지가 전송되곤 했지만, 이날만큼은 약 한 시간 간격으로 휴대폰이 연거푸 울렸다.

오전 10시51분에는 '국민의힘 당대표 제주방문 4.3평화공원 위령탑 참배', 오전 10시 58분에는 '원희룡 지사가 운전하는 전기차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이동', 오후 12시 44분 '전동킥보드 타는 원희룡 도지사와 이준석 대표' 등 사진 자료가 거의 실시간으로 업로드 됐다.

해당 장소에서 발언한 내용의 보도자료도 오후 2시33분 '이준석 대표, 제주의 CFI2030정책 세계 선도하는 모델 되길', 오후 5시 41분 '원희룡 지사·이준석 대표, 제주 청년들과 소통의 장 마련'이라는 제목으로 각각 자료가 올라왔다.

23일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운전하는 전기자동차에 동석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23일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운전하는 전기자동차에 동석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23일 제주도에서 송부된 프레스룸 자료 업로드 안내메시지.

제주도는 원 지사가 제주의 주요 정책과 현안 추진상황, 주요 사업 국비반영 건의 등의 자료를 국민의힘 측에 전달하기 위한 자리였다고 설명했다.

다만, 당장 지난해 11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단이 제주를 찾아왔을 때와의 대응 방식은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원 지사는 당시 민주당 지도부와 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에서 만나 지역 현안을 건의했지만, 그 외 일정에 시간을 할애하지는 않았다.

제주도청 프레스룸에 올라온 보도자료 역시 원 지사를 ‘주어’로 작성한 단 한 건에 그쳤다.

원 지사의 행보는 불과 열흘 전 여권 내 가장 강력한 대선 주자로 꼽히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제주행을 노골적으로 견제한 것과도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지난 10일 원 지사는 경기도-경기도의회-제주도의회와 맺기로 했던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공동대응 업무협약'을 약속을 파기하고 SNS까지 동원하며 이 지사의 제주행을 무산시킨 바 있다.

'지역 내 코로나19 확산세'를 원인으로 들었지만, 당시만 해도 확진세가 한 풀 꺾이는 시점이었고, 정작 본인은 숱한 도외 일정을 강행하면서 ‘내로남불’ 비판이 제기됐다.

실제 원 지사는 약속 파기 후 외부 일정을 꾸준히 소화했고, 심지어 서울에서 열리는 본인의 팬클럽 행사까지 참여했다.

불과 2주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원 지사는 서울에서 온 국힘 이준석 대표를 환대했다. 이 대표와의 대화 과정에서도 이재명 지사를 겨냥해 "막가파로 간다", "선심쓰기 정책"이라며 감정적 표현까지 서슴지 않았다.

대권 도전의 시간이 다가온 원 지사의 외부 일정이 부쩍 잦아진 가운데, 일각에서는 제주도정이 '정치인 원희룡'의 발걸음을 하나하나 지원하고 있다는 쓴소리가 나오고 있다. 도청은 도지사가 주인이 아니라 도민이 주인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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