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29) 참기름 먹어 본 고양이

* 촘지름 : 참기름
* 먹어난 : 먹었던, 먹어 본
* 고냉이 : 고양이

이도 오래 쌓인 경험칙에서 나왔을 법한 말이다. 참기름은 천연의 참깨로 빻은 값 비싼 식료로 반찬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것이다. 향이 오묘할 뿐 아니라 음식을 맛깔나게 한다. 소금이 간을 맞춘다면 참기름은 맛을 나게 한다.

고양이란 놈이 냄새를 맡고 부엌에 들어 참기름을 먹어 보면, 아주 환장을 한다는 것이다. 다시 생각나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단 한 번에 중독돼 버린다 함이다.

이렇게 참기름 맛을 본 고양이가 참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 또한 어떤 일에 깊이 빠져들면 헤어나오기 쉽지 않다는 비유다. 

출처=픽사베이.
고양이란 놈이 냄새를 맡고 부엌에 들어 참기름을 먹어 보면, 아주 환장을 한다는 것이다. 이미지=Pixabay.

술을 좋아해 늘 마시다 보면 나중 알코올 중독자가 된다든지, 마약을 흡입하다 보면 끊지 못해 결국에는 안절부절 못하는 지경에 이르는 것, 술 마시고 핸들을 잡았더니 신이 났던지 상습적인 음주 운전자가 되는 것, 도박판에 들었다가 쉽게 돈을 벌어 일확천금 하겠다는 허황한 꿈에서 벗어나지 못해 반복하다 끝내 가산을 탕진해 패가망신하는 것. 

어디 그뿐이랴. 범죄에 발을 들어놓아 별 몇 개를 단 전과자가 출소한 바로 뒷날 다시 하던 그 짓을 하는 것이 모두 이 말이 빗대는 범주를 벗어날 것이 아니다.

사람이란 한 번 좋지 않은 수렁으로 빠져들면 한도 끝도 없이 빠져들게 마련이다. 

땀 흘리면서 일한 보람으로 한 달 얼마씩 급료를 받는 도시 서민들의 삶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려 한 훈계의 의미로 다가오지만, 한 번 참기름을 먹어 보아 그 맛을 알게 되면 맛 좋은 참기름만 찾게 된다. 민망한 노릇이없다.

시골에서 자랄 때, 남들은 갈옷을 입고 어둑새벽 먼 밭에 나가 일을 하다 저녁이 깊어야 우둘투둘한 길을 걸어 지친 몸으로 돌아와 희미한 등잔불 아래 저녁상을 받고 앉았다가 다시 뒷날 새벽 밭으로 무거운 걸음을 내디뎠던 것이 농촌 사람들의 일상이었다. 한데 일찌감치 육지에 돈 벌러 나갔다더니, 어느 날 돌아와 양복 쪽 뽑아입고 빈둥거리며 거리로만 쏘다니는 신사가 있었다. 빈털터리가 돼 귀향했다는 그 사람을 놓고 동네 사람들이 귀엣말을 속삭이기 일쑤였다. 도시에 가서 좋은 옷 입고 좋은 음식 맛을 보다 왔으니 손에 무슨 일을 올리겠는가.

대놓고 말하지는 못하면서도 입을 모아 얘기했을 것 아닌가.

“아이고, 저 촘지름 먹어난 고냉이 보라게. 저영허영 어떵 살젠 햄신고 이?”
(아이고, 저 참기름 먹었던 고양이 보라. 저렇게 해서 어떻게 살려고 하는고 이?)

어떤 일에 한 번 빠져들면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기 어려움을 경계하는 말이다. 좋은 일이면 누가 뭐라 할까. 나쁜 일, 놀고먹는 일,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그러하니 하는 말 아닌가. 스스로 자신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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