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人터뷰] 정년 6개월 앞두고 일터 돌아온 김영철 제주공무원노조 초대 본부장

“산천(山川)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데없다는 말이 있잖아요. 17년 만에 제주시청으로 돌아와 보니 건물은 그대로인데 함께 일하던 사람들은 떠났네요. 그 자리를 채운 공무원 후배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공직사회 개혁과 부정부패 척결을 외치며 공무원의 노동 기본권을 보장받기 위해 노력해온 김영철(59, 김형산)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제주지역본부 초대 본부장이 해직 17년만에 일터로 돌아왔다.

그는 1989년 3월 제주시청 소속으로 공직에 입문한 뒤 2001년부터 2003년 5월까지 제주시청 직장협의회장을 역임하고 2002년 공무원직장협의회 제주도연합회장, 2003년 5월~2004년 11월 공무원노조 제주지역본부 초대 본부장을 지냈다.

하지만 2004년 노동3권 쟁위를 위한 총파업투쟁 선언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하기 위해 무단결근했다는 이유로 해직당했다. 

이후 2004년 12월부터 지금까지 전국공무원노조 회복투쟁위원회 집행위원장과 제주공무원노조 상설위원장을 맡아 노동운동을 이어왔으나 공직에는 복귀하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공무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공무원노조 설립 및 활동 과정에서 해직되거나 징계처분을 받은 공무원의 복직 등의 내용이 포함된 ‘공무원노조 관련 해직공무원 등의 복직 등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돼 복직할 수 있게 됐다.

정년을 불과 6개월 앞두고 일터로 돌아온 김 전 본부장을 [제주의소리]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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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간의 해직 생활을 뒤로하고 복직하게 된 김영철 제주공무원노조 전 본부장은 "산천(山川)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데없다"라는 말로 소감을 정리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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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만에 복직한 제주시청에서 함께 투쟁가를 부르는 김 전 본부장. ⓒ제주의소리

그간 어떻게 지냈냐는 물음에 김 전 본부장은 “17년이라는 세월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다. 조합원들과 함께 복직투쟁 위주로 활동했고 전국공무원노조에서 직책을 맡아 동지들이 겪는 힘든 일이나 국가의 부당한 대우에 맞서 시정 요구하는 등 맞섰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17년의 힘든 세월 함께 해준 조합원들과 지켜봐준 도민들을 비롯해 힘이 돼주고 끝까지 의리를 지켜준 모든 분께 감사하다”며 “대한민국의 노동자 권리를 신장하는데 열심히 참여하는 것이 그동안 도움을 받아온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04년 해직 당시에 대해선 “공무원노조 초창기라 사명감과 패기가 있었고 겁도 없었다. 누군가는 '왜 총파업 투쟁에 참여했냐'고 묻는데 제주도와 도민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국이 들불처럼 활활 타오르는데 나만 살자고 무서워서 깃발을 슬그머니 내리는 행동을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다”며 “전국은 총파업을 일으키는데 제주는 조용하다고 뉴스에 보도되면 역사에 길이 남을 오명이었지 않았겠나”라고 돌이켜 평가했다. 

그러면서 “섬사람이라 유별난 것이라는 말을 듣기 싫었다. 오히려 섬사람, 제주인의 기백으로 대단하다, 독하다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라면서 “후배 공무원들을 비롯한 도민들이 욕먹고 창피당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물불 가리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앞으로의 노동계 전망에 대해선 “지금 전체적인 노동계 상황이 위축된 상태다. 민주정부라고 해도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아쉽다”며 “앞으로 어떤 정권이 들어설지 모르겠지만 관료들의 생각이 변하지 않는다면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고 평가했다. 

김 전 본부장은 “공무원노조가 좀 더 알차고 굳세게 활동했으면 한다. 지도부뿐만 아니라 조합원 모두가 동참해 개인의 이익보다 공동체적 삶에 대해 생각해줬으면 좋겠다”라면서 “기회가 있다면 17년 동안의 도움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함께 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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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본부장은 1일 제주시청에서 열린 복직 환영식에서 동료, 후배 공무원들에게 수많은 꽃다발을 선물 받았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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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안동우 제주시장은 중앙현관 앞에서 김 전 본부장을 만나 축하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제주의소리

공무원노조는 이날 오전 11시 제주시청 2층 회의실에서 복직 환영식을 열고 “당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며 환대했다.

김수미 전국공무원노조 부위원장은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김 전 본부장님은 2002년 공직사회 개혁과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투쟁하다 해직당한 뒤 긴 세월이 흘러 고생 끝에 복직하게 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축하하는 마음도 있지만 죄송한 마음도 가득하다. 17년을 고생하셨지만, 아직 공무원들에겐 온전한 노동3권이 주어지지 않았고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며 “후배들에게 쓴소리를 마다치 말고 노동3권을 쟁취할 수 있도록 함께해달라”고 당부했다.

박철준 공무원노조 회복투쟁위원장은 “제주에서는 김 전 본부장만 해직돼 홀로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생각하게 된다”며 “임을위한행진곡의 ‘앞서서 나가리 산자여 따르라’라는 가사처럼 후배 공무원들을 위해 고생하신 뜻을 받들어 힘차게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임기범 제주공무원노조 본부장과 강병철 제주시지부장, 임기환 민주노총 제주본부장, 문희현 전조교 제주지부장의 축사가 이어졌다. 

해직 당시 김 전 본부장은 공무원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쟁취하기 위한 제주지역 초유의 공무원노조 총파업투쟁을 선언하고, 경찰의 탄압을 피해 2004년 11월5일 민주노동당 제주도당 사무실에서 거점 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경찰은 공무원노조 조합원들이 김 전 본부장과 함께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당사 주변에 다수의 전투경찰을 배치하기도 했다. 이 같은 압박에 그는 당사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구호를 함께 외치기도 했다. 

김 전 본부장은 경찰에 자진 출두한 뒤 지방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자진 출두 당시 “공무원노조의 완전한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해 농성을 벌이면서 그동안 정부의 일방적이고 공무원노조 말살 정책에 저항해 왔다”며 “이제 40일의 농성을 풀고 떳떳하게 경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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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식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김 전 본부장과 임기환 민주노총본부장(사진 왼쪽), 문희현 전교조 제주지부장(사진 오른쪽).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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