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30) 소라가 양자 가 버린 껍데기에 집게가 들어앉는다

* 구젱기 : 소라 또는 고동
* 양제 가 분 : 양자(養子) 가 버린
* 딱살 : 껍데기…조개 딱살 등 크고 작은 비슷한 부류의 껍데기를 뭉뚱그려 표준어로 ‘조가비’라 한다.
* 게드레기 : 집게
* 드러앚나 : 들어앉는다
  
집게는 참집게상과의 갑각류다. 바다에도 살고 민물에도 산다.

한데 흥미로운 게, 태어날 때부터 자기 집 없이 소라나 고동의 껍데기를 집 삼아 사는 것이다. 엄격히 말하면 집이 없다. 그래서 비어 있는 소라나 고동 껍데기를 집으로 사용한다. 

그래서 자기 몸보다 훨씬 큰 껍데기를 등에 짊어지고 다니다 몸이 커지면 살던 집을 버리고 다른 집을 찾아다니는 특수한 생존방식으로 삶을 영위한다.

왜 남이 살다 죽어 비워 버린 껍데기를 집으로 사용할까는 말할 것도 없이 자기 몸을 보호하기 위한 방책이다. 소라나 고동의 껍데기가 얼마나 튼튼한가. 먹잇감 찾아 이곳저곳으로 옮아다니다 적이 공격해 오면 눈 깜빡할 사이에 몸을 사려 껍데기 안쪽으로 깊숙이 숨어 버린다. 이만한 방어 수단이 어디 또 있겠는가. 이렇게 한 생을 살아가다니 기막힌 술책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알을 개개비 둥지에 넣어 새끼로 부화시키는 탁란조(托卵鳥)인 뻐꾸기 뺨 칠 재간이 아닌가.

집게는 자기 몸보다 훨씬 큰 껍데기를 등에 짊어지고 다니다 몸이 커지면 살던 집을 버리고 다른 집을 찾아다니는 특수한 생존방식으로 삶을 영위한다. 이미지=픽사베이.

집게는 몸집이 커지면서 새 집을 구하려고 주위를 꼼꼼히 살핀다고 한다. 맘에 드든 껍데기를 발견하면, 무리끼리 한바탕 쟁탈전을 벌인다. 힘센 놈은 여러 개를 차지하려고 거머쥐려는 욕심쟁이도 있다 한다. 말할 것 없이 몸에 꼭 맞는 껍데기인가 더 살피려는 것이다. 그럴 것 아닌가. 내가 쓰기는 싫고 남에게 주기는 싫고. 물속에서 벌어지는 코미디 같다.

‘구젱기 양제 가 분 딱살에 게드레기 들어앚나’

(소라가 양자 가 버린 껍데기에 집게가 들어앉는다)

이 또한 흥미진진하게 표현하고 있다. 소라(고동)이 껍데기를 비운 것을 ‘양자로 가 버린’이라 했지 않은가. 집을 비웠다는 사실을 실감 나게 빗댄 것이다. 집게를 방언으로 ‘게드레기’라 하는 말도 참 오랜만에 듣는다.

단순히 집게의 생태를 말하려 한 게 아니다. 자기 잇속 챙기기에 당차고 야무진 처신을 미물에 비유한 것이다. 실감 난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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