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임의 오름기행 ] 초원의 나라 따라비 오름
▲ 따라비오름 분화구에는 있는 방사탑은 보는이의 마음에 따라 소원도 다릅니다. |
ⓒ 김강임 |
오밀조밀 어깨를 겨룬 제주오름과 그 속에 피어나는 토종의 야생화, 현무암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제주 돌담, 중산간 마을에서 피어오르는 사람 사는 냄새, 한적한 중산간도로에서는 제주인의 삶의 흔적이 듬뿍 담겨 있다. 광활한 목장 길에서 잠시 자동차를 세우고 자연을 훔쳐보는 맛, 고향이 이만큼 따스했던가?
길 눈이 어두운 내게 따라비 오름을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기를 두서너 번. 표선면 가시리 2.8km의 농노 끝에 만나는 따라비 오름은 온통 수풀에 덮여 있었다.
6월 하오에 만나는 따라비 오름은 심심한 듯 하품을 하고 있는 듯 했다. 깊은 산속에 혼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그때, 봉고차 한 대가 들어오더니, 대여섯 명의 오르미들이 차에서 내렸다. 친구를 만난 듯 기뻤다. 그날 오름의 길잡이는 이름 모를 한 아저씨였다.
삥이를 아세요?
▲ 오름길에서 만난 오르미들과의 동행에서, 어린시절 삥이 추억을 되살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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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턱에서부터 시작되는 등반로는 겨우 한 사람이 다닐 수 있을 정도. 오름 자락에서 만난 우리는 초면이었지만 길을 걸으며 어린시절 추억을 재생시켰다. 마치 억새 무리 같은 가을동산을 오르는 기분이었다.
그 느낌을 선사한 것은 따라비 오름을 뒤덮은 삥이(삐비 제주사투리)의 물결. 앞장선 오름길라잡이 아저씨는 삥이를 한웅큼 뽑더니 "삥이를 아세요?"라며 어린시절 추억을 되살렸다.
"우리 자랄 땐 산에서 뽑아온 삥이로 삥이치기를 하며 놀았죠!"
"그때는 삥이 속 내용물을 잘기잘기 씹으면 껌을 씹는 기분이었어요."
따리비 오름 기슭에는 저마다 추억여행 스토리가 이어졌다. 낯선 사람들과의 오름등반은 재미가 쏠쏠했다.
6개의 봉우리 능선 걷다보면 탄성이 절로
▲ 능선위에 능선, 봉우리마다 능선의 모양도 다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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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력과 번식력이 강한 개미취가 풀섶의 친구가 돼 주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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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6개 봉우리는 높이가 다르다. 낮은 봉우리가 있는가 하면 경사가 심한 높은 봉우리가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길의 굴곡처럼 순탄하고 험한 길을 체험하게 된다. 낮은 봉우리를 오를 때는 정상을 꿈꾸지만, 정작 높은 봉우리에 서면 산 아래를 굽어본다. 마치 우리가 걸어가는 인생길 같이.
수도하는 기분, 그리고 땀을 씻어주는 시원한 바람, 세상이 한눈에 보이는 착각. 가장 높은 봉우리에 선 순간 갖가지 감흥이 엇갈린다.
3개의 분화구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다
▲ 따라비의 진수는 아름다운 3개의 분화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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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가 각각 다른 3개의 분화구는 모양과 특색이 각기 다르다. 완만한 봉우리와 연계한 분화구는 넓고 밋밋하다. 높은 봉우리와 연계한 분화구는 그 깊이 또한 깊으며 좁다.
3개의 분화구는 작고 소담스러운 놀이터 같았다. 고운 풀섶을 밟고 산책하는 기분. 이럴 때 튀어나오는 적당한 감탄사는 무엇이 있을까? 하지만 제주오름 분화구 속을 들어가 보면 그저 자연 앞에서 겸손해질 따름이다.
▲ 봉긋봉긋 솟아있는 알오름에 묘지가 산재해 있습니다. 제주인들은 죽어서도 오름에 묻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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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화구 방사탑 누구 소원 담았나
▲ 현무암 화산탄 기원탑이 분화구안에 존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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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한 켠에 세워진 방사탑은 마을의 액운이나 불길한 징조을 몰아내고, 바닷가 근처의 방사탑은 해상안전, 그리고 전염병 예방과 아이를 낳고 보호해 주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그렇다면 따라비 오름 분화구 안에 쌓아 올린 대여섯 개 방사탑은 누구의 소원을 담았을까? 아마 화재예방에 대한 방사탑이 아닐까?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분화구 기원탑을 돌아보며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게 된다.
한 가족을 거느린 '땅 할아비'
▲ 오름주변에는 장자오름,모지오름,새끼오름 등이 있어 할아버지 오름 위상을 높여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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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오름 정상에서 바라보니 3대가 모여 사는 오름 대가족의 면모를 볼 수 있었다. 참 신기하다. 큰아들 장자오름과 작은 아들 새끼오름, 어머니 모지오름을 조망할 수 있었다. 특히 손자오름은 따라비에서 조금 떨어진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 자리잡고 있다.
▲ 능선위를 걸으며 산바람 흙냄새 바다냄새까지 맡을 수 있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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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앞에선 된바람도 녹느니
강함을 이기는 것은 결코 힘이 아니었다
바람 흘려보내며 고집도 닳고 닳아
풍만한 가슴 안에선 회오리도 쉬느니
그다지 높지 않아도 볼 만큼 보여주는
높이 올라 멀리 보는 새가 아닌 사람에게
온 종일 분수를 가르쳐
명상하는 보살이네
- 고성기님의 따라비오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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