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최초의 호스피스 1970년 개원...제주도 ‘37억원 매입’ 철거후 국민임대주택 건립 추진

1970년부터 2002년까지 운영한 제주시 한림읍 한림성당 앞 옛 성이시돌의원. [사진제공-장태욱씨]
1970년부터 2002년까지 운영한 제주시 한림읍 한림성당 앞 옛 성이시돌의원. [사진제공-장태욱씨]

제주 최초의 무료 호스피스 병원이자 궁핍한 시절 서부지역 최대 의료기관이었던 옛 성이시돌의원 건물이 6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13일 제주도에 따르면 제주시 한림읍 한림성당 앞에 위치한 옛 성이시돌의원 철거를 위한 입찰공고를 거쳐 이르면 8월 건물 해체 작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해당 건물은 1962년 한림성당 북쪽 도로 맞은편에 처음 들어섰다. 이후 종교시설로 사용하다 1970년 4월 증축공사를 거쳐 성이시돌의원으로 문을 열었다.

성이시돌의원의 시작은 故맥그린치 신부(1928~2018)의 숙원이었다. 아일랜드 출신인 맥그린치 신부는 1951년 사제 서품을 받고 1954년 한림본당에 부임하며 제주와의 인연을 맺었다.

1950년대 경기도에서 요크셔 돼지 한 마리를 끌고 와 한림을 양돈산업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1960년대에는 농촌자립사업으로 성이시돌목장을 설립해 황무지를 목초지로 변신시켰다.

맥그린치 신부는 소외계층을 돕기 위해 병원과 경로당, 요양원, 유치원, 노인대학 등 복지시설 운영에 매진했다. 그의 숙원 중 하나가 주민과 약자를 위한 무료 호스피스 시설이었다.

제주시 한림읍 한림리에 제주 최초의 호스피스 의원인 성이시돌의원을 건립한 故 맥그린치 신부(1928~2018).
제주시 한림읍 한림리에 제주 최초의 호스피스 의원인 성이시돌의원을 건립한 故 맥그린치 신부(1928~2018).

당시 도내 종합병원은 1957년 문을 연 제주도립병원이 유일했다. 이어 1969년 첫 민간시설인 나사로병원이 개원했지만 농어촌 지역은 사실상 의료기관이 전무했다.  

1968년 맥그린치 신부는 전남 목포에서 성 골롬반병원을 운영하는 골롬반수녀회를 찾아가 의료기관 운영을 요청했다. 수녀회가 이에 응하면서 의사와 간호사가 성이시돌의원으로 향했다.

1970년 개원과 동시에 서부지역은 물론 전 지역에서 환자들이 줄을 이었다. 아일랜드 출신으로 국내 의사면허를 보유한 베넥누수 원장 수녀와 간호사인 말타 수녀가 진료를 맡았다.

1976년 5월에는 호스피스 활동을 시작했다. 1978년 11월에 소아(청소년)과를 신설하고 1982년 서울대학교병원과 자매결연을 체결하면서 성이시돌의원의 명성은 날로 높아졌다.

1984년 2월 정부가 지정하는 의료보험 요양 취급기관으로 지정되고 1992년 가정의학과가 신설되면서 지역주민을 상대로 한 건강상담도 진행했다.

의료진의 무한 헌신에도 불구하고 무료 진료는 적자폭을 키웠다. 1994년 전국민 의료보험 시작과 의약분업으로 해외 원조 의약품 공급마저 끊기면서 경영 환경은 더욱 나빠졌다.

한국 경제규모가 커지고 의료기술도 급성장하면서 급기야 1998년 원조 의료활동을 담당한 성골룸반 수녀회마저 제주를 떠났다. 그 자리를 대신해 서울 성가소비녀회가 위탁운영을 이어왔다.

1962년 신축후 60년만에 철거를 앞두 옛 성이시돌의원. 제주도는 2019년 말 해당 부지와 건물을 매입해 국민임대주택 건설을 추진중이다. [사진출처-네이버 지도]
1962년 신축후 60년만에 철거를 앞두 옛 성이시돌의원. 제주도는 2019년 말 해당 부지와 건물을 매입해 국민임대주택 건설을 추진중이다. [사진출처-네이버 지도]

맥그린치 신부는 4년 후인 2002년 한림읍 금악리 이시돌목장에 13개 병실 규모를 갖춘 호스피스 전문 ‘성이시돌복지의원’을 건립하고 한림리 성이시돌의원 시대를 마무리했다.

이후 건물과 부지는 의료재단에 매각돼 10년 넘게 종합병원과 동네의원으로 활용돼 왔다. 건물 노후화로 운영이 어려워지자, 2019년 말 제주도가 해당 부지와 건물을 37억원에 매입했다.

매입 규모는 부지 1829㎡, 연면적 2164㎡의 지상 1층 1개동과 지상 3층 2개동이다. 제주도는 철거비 3억2778만원을 들여 이 건물을 헐고 국민임대주택 건설을 추진하기로 했다.

제주도는 국토교통부의 지원을 받아 이 곳에 지하 2층, 지상 9층, 70세대 규모의 국민임대주택을 지어 저소득층과 청년, 신혼부부 등에 공급할 계획이다.

제주도 관계자는 “건물의 역사 등을 고려했지만 시설 노후화에 따른 안전문제로 철거를 결정했다”며 “한림시내 접근성 등이 우수해 국민임대주택 후보지로 낙점했다”고 설명했다.

제주도는 철거후 설계공모 절차가 마무리되면 곧바로 건축허가 신청에 나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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