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대 참사 100일] 인공호흡기 의지해 의식불명, 스물한 살의 김선아 씨 안타까운 사연

“아이가 눈을 뜨는 것 말고는 정말 바라는 게 없어요. 그때까지만이라도 병원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았으면 하는데 더 이상 여기선 진료할 게 없다고 병원을 옮겨야 한다네요. 의식도 없고 인공호흡기도 달고 있는 우리 딸 어디로 가야 하나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제주대학교 입구 사거리에서 벌어진 참사는 청천벽력이었다. 벌써 그날로부터 100일이 흘렀다. 하지만 아직까지 피해자와 가족들은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고, 피해자를 위한 제대로 된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지난 4월 6일 제주대학교 입구 사거리에서 발생한 대형 인명 교통사고로 62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날 사고로 3명이 숨졌고, 그날 이후 의식불명인 김선아(21, 가명) 씨도 생과 사를 수차례 넘나들며 100일째 의식불명 상태다. 선아씨는 지금 이 순간도 오롯이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힘겨운 생을 버텨내고 있다. 

그런 딸을 지켜보는 부모의 심정은 오직 깊은 잠에서 꼭 깨어나 눈을 뜰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단다. 선아 씨의 부모 마음은 100일째 시커멓게 썩어 문드러지고 있다.

이 와중에 생사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사투를 벌이는 선아 씨를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는 병원 측의 요청이 있어 가족들은 100일 전의 악몽 만큼이나 다시 깊은 절망 속에 빠졌다. 

현재 도내 모 종합병원에 입원 중인 선아 씨는 인공호흡기를 단 채로 의식이 없는 상태다. 선아 씨는 당시 사고로 부러진 뼈를 붙이기 위한 수술마저 진행할 수 없는 위중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더 이상 치료할 내용이 없다고 병원 측으로부터 전원을 요구받은 것.

사고 당시, 입원 직후 수혈할 피가 모자라다는 안타까운 소식에 도민사회가 수눌음의 마음으로 자발적 헌혈 행렬을 이어가며 선아씨의 빠른 쾌유를 도민사회가 기원했다. 그러나 100일이 지나면서 사고의 기억도 서서히 잊혀지고 있다.

아직도 눈을 뜨지 못하고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있는 선아 씨가 병원을 옮겨야 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13일 낮 [제주의소리]가 교통사고 피해자 선아 씨의 부모 김명준(52)·연인숙(52) 씨 부부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제주의소리
제주대입구 사거리 교통사고 참사가 벌어진 지 100일. 여전히 피해자 가족들은 사고 이후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14일 오전 10시 제주시 용담동의 한 카페에서 여전히 의식 없이 누워있는 피해자 부모를 만났다. ⓒ제주의소리

지난 4월 6일 제주대학교 입구 사거리에서는 산천단에서 제주시 방면 5.16도로를 내려오던 4.5톤 화물차가 버스 2대와 트럭을 들이받아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화물차는 만감류를 잔뜩 싣고 있었고 사고 원인은 과적과 브레이크 과열이었다. 어처구니 없는 이 사고로 3명이 숨지고 중상자 5명을 포함한 총 62명이 부상을 입었다.

선아 씨는 이날 학교 강의를 마치고 사고를 당한 귀갓길 버스에 올라 있었다. 사고 직후 심정지 상태로 병원으로 이송된 뒤 심폐소생술 끝에 가까스로 심박동을 되찾고 수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현재까지 의식이 없다. 

사고 직후 제주권역외상센터에서 입원한 상태로 깨어나길 기다리던 약 80일째 병원 측은 원래 외상센터에는 30일 만 있을 수 있는데, 선아씨의 경우 워낙 위급한 수술이 계속돼 지금까지 배려했다며 선아 씨를 일반 중환자실로 옮길 것을 가족들에게 조심스럽게 권했다. 

선아씨 부모님도 다른 위중한 중환자와 병원에 피해를 줄 수 없다는 마음과, 일반 중환자실로 옮기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며 치료에 최선을 다해 케어하겠다는 병원 측의 말을 듣고 당일 오후 선아 씨를 일반 중환자실로 옮겼다.

하지만 며칠 뒤 병원측으로부터 직접적인 별다른 설명을 듣지 못한 채 담당 의료진이 아닌 의료기상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의료기상사에선 의료 보조기구를 구입해야 한다고 했다. 아마 병원을 옮겼을때 필요한 의료기구들을 안내했던 것 같다.  그 이후에야 병원 측에서 "더 이상 여기선 할게 없으니 다른 병원으로 옮겨달라"고 요청했다.

병원 측의 사전 설명없이 의료기상사로부터 전화를 받은 것도 당황스러운데, 인공호흡기에 의존한 채 실낱 같은 숨을 간신히 내쉬는 선아 씨에게 더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다른 병원으로 옮겨달라는 말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아버지 김 씨는 “알아봤더니 다른 병원에서도 위험 부담이 있는 환자라 잘 받아주지 않는 상황이다. 결국 갈 수 있는 곳은 장기요양병원인데 지금 상태로 요양병원에 들어갔다가 응급 상황이 생기면 어떡하나. 거기서 치료받을 수 있는 상태는 아니지 않나”라고 호소했다.

선아씨 부모님은 병원 측으로부터 "더 이상 (치료)할 게 없다"는 말을 듣고 의료진도 선아 씨를 포기한 것 아닌가란 생각에 억장이 무너지고 있다. 자식을 포기할 수 없는 부모의 당연한 심경이다.  

설상가상으로 닥친 코로나19 여파로 면회도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중환자실 입구에 우두커니 서서 누군가 들어오고 나갈 때 잠시 열렸다 닫히는 문틈으로 겨우 먼발치로 볼 수밖에 없는 딸이다. 그런데 이제는 병원으로부터 "더이상 할게 없다, 병원을 옮겨달라"는 말까지 듣게되니 선아씨 부모님은 이러다간 딸의 얼굴을 이제는 못 보는 것인가라는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어머니 연 씨는 “사고 이후로 팔은 아직도 부러진 채 그대로다. 몸 상태가 안 좋으니 자연적으로 붙기는커녕 수술조차 할 수 없는 상태”라며 “그런데도 병원을 옮기라고 하니 이제 우리 애가 죽나, 우리 애가 이제 못 일어나는 건가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며 끝도 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6일 오후 5시59분쯤 5.16도로를 내려오던 트럭이 제주대 입구 사거리에서 1톤 트럭과 시내버스를 잇따라 들이받으면서 대학생 등 3명이 숨지고 59명이 다쳤다.
지난 4월 6일 5.16도로를 내려오던 화물차량이 제주대 입구 사거리에서 1톤 트럭과 시내버스를 잇따라 들이받으면서 대형 인명사고가 발생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이처럼 절망적인 상황에서 선아씨 부모님은 장기입원 90일 규정에 대해 듣게 됐다. 병원에 90일 이상 장기 입원하는 환자가 있을 경우 병원이 페널티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 

환자가 일정한 약을 장기간 투여받게 되면 안정적인 상태로 인정돼 증상 여부와 관계없이 장기입원이 어려워진다. 병원 측에서 영리를 목적으로 환자를 의도적으로 붙잡을 우려와 소위 '나이롱 환자'들의 보험금 부정 수령을 막고자 하는 취지로 이 같은 제도가 만들어진 것. 

선아 씨 부모님은 병원에 민폐를 끼칠 수 없었기에 병원이 페널티를 받는 것은 조금도 원치 않았지만, 구조적 문제 때문에 병원을 옮겨야만 하는 이 같은 상황에 속상한 마음을 표했다.

관련해 해당 병원 관계자는 “보건복지부 지침상 일정한 약이 투여되는 환자는 증상과 무관하게 계속 입원시키도록 할 수가 없다. 환자 상태가 심각한 것도 알고 있어 안타깝지만, 구조적인 문제가 있어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대답했다.

이들 부부는 답답한 심정이지만 서러운 마음을 어디다 하소연할 곳도 없다. 괜히 병원에 대해 말을 꺼내 고생하는 의료진에게 폐가 되진 않을까, 모든 것을 케어받고 있는 딸에게 행여나 불이익이 가진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에서다.

이어 개인 승용차를 타고 있다가 일어난 사고도 아니고 대중교통인 버스를 이용하다 일어난 사고임에도 피해자가 피해를 받는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김 씨는 “사고 이후 대책본부도 세워지고 피해자 지원를 위한 대책을 강구하겠다 하지 않았나. 다른 것을 바라는 게 아니라 치료에만 전념할 수 있게, 아이가 맘 편하게 병원에서 진료받을 수 있게만 해줬으면 한다”고 목이 메인 채 말을 이었다.

그러면서 “병원에다 계속 치료할 수 있게 도와달라 부탁하고 차선책을 찾아 나서야 하는 일은 보호자가 알아서 하긴 힘들다”며 “우리 딸 말고도 이런 경우가 많을 텐데 제도가 잘못된 것이라면 개선해달라”고 호소했다.

지난 4월 6일 오후 제주대 입구 사거리(5.16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는 3명이 숨지고 60여 명이 중경상을 입는 인명피해를 일으켰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대 입구 사거리(5.16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사고 개요.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한편, 사고는 당시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화물차가 기준보다 2.5톤이나 중량을 초과한 채 과적 운행했고, 경사도가 심한 5.16도로를 운행하면서 브레이크 에어 경고등이 켜졌음에도 충전을 제대로 하지 않아 일어났다.

사고를 낸 차량 운전자는 금고 5년에 벌금 20만 원, 사업주는 벌금만 20만 원 구형에 그쳤다. 

제주도는 이와 관련 경찰청과 한국교통안전공단, 도로교통공단 등으로 구성된 ‘제주 교통안전 거버넌스’ 실무협의회를 개최하고 제주대 입구 교차로 도로구조 개선 검토에 나서기도 했다. 

또 제주자치경찰단은 7월부터 5.16도로와 1100도로 일부 구간의 4.5톤 이상 화물차량 통행제한을 본격 시행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피해자들을 위한 제대로 된 사과에 나서지 않았고, 피해자들에 대한 생계유지와 피해보상을 세심하게 지원해야 한다며 피해자 가족들에게 불편함이 없도록 하겠다는 도지사는 한 번도 이들 앞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이처럼 교통사고 후속 조치가 각 기관에서 이뤄지는 가운데 병원을 옮겨야 하는 처지에 놓인 피해자에 대한 세심한 행정당국의 지원과 배려가 절실한 상황이다. 더불어 불합리한 제도로 고통받는 피해자들을 위한 정부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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