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우의 제주풍토록 살펴보기] ④ 김정의 유배살이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널리 알려진 주류 역사 반대쪽에는 미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생활사, 구술사 같은 학문의 중요성이 커지는 이유도 이런 문제 인식의 연장선상이 아닐까. 제주의 역사학자 김일우가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학술지 '사총' 올해 5월호에서 김정(1486~1521)이 남긴 '제주풍토록'를 재조명했다. '최초의 제주풍토지'라는 평가와 함께 오늘날 제주풍토록이 어떤 성격과 가치를 지니는지 분석한 것이다. '제주의소리'는 김일우 박사의 논문을 매주 한 차례 총 4회에 걸쳐 소개한다. / 편집자 주

조선전기 김정(金淨) 저(著) '제주풍토록(濟州風土錄)'의 수록내용 성격과 가치
(이 글은 2020년 10월 30일 사단법인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에서 주관한 '충암 김정 유배 500년 기념 학술 세미나'에서 주제발표했던 원고를 다시 다듬어 엮어,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학술지 '사총' 올해 5월호에도 게재됐다.) 

김일우 (사)제주역사문화나눔연구소장·이사장

1. 머리말

2. 수록내용의 검토

1) 제주의 자연과 산물
(1) 기후 /(2) 지형 / (3) 토산·서식 동식물 / (4) 형승

2) 제주 사람의 삶
(1) 가옥 / (2) 신앙 / (3) 제주어 / (4) 풍속 / (5) 민정

3) 김정의 유배살이와 그 처지

3. 맺음말


3) 김정의 유배살이와 그 처지

吾之所居. 在州城東門外半里. 金剛社舊寺基. 無四隣. 地頗幽僻. 立草屋數楹. 制依北土. 頗明敞. 內有小溫房一. 房外有末樓涼軒間半. 亦得陽得月. 軒簷下有老杮樹一株. 厚葉成陰. 常坐此軒而此樹近可捫也. 屋圍而石墻. 以醜石累積. 高丈餘. 上施鹿角木. 墻去簷僅半疋高而圍狹. 奉國法也. 然石墻高狹. 土俗皆然. 以防盲風饕雪. 況吾居旣孤. 寇盜亦可慮. 使吾自計. 不得不爾. 但稍寬則有矣. 墻旣碍眼無好狀. 雖栽植似亦無趣. 且吾時日不能自保. 無久遠心. 不暇以栽植爲意. 今得君言. 栽檜老蒼之事. 能起吾趣. 自明春欲列栽柑橘榧爲意. 

내가 거처하는 곳은 제주성 동문 밖 반리 떨어져 있는 금강사 옛 절터에 있다. 사방 인근에 이웃이 없고, 지역이 쾌 후미진 곳인데 초가 몇 칸이 세워져 있고, 북쪽 산에 근거했으니 자못 시원스럽다. 안에는 작고 따뜻한 방이 한 개 있고, 방밖에는 마루가 있어 서늘하며 난간이 한 칸 반인데, 또한 볕을 쪼일 수 있고 달도 볼 수 있다. 난간 아래에는 늙은 감나무 한그루가 있는데 무성한 잎이 그늘을 이뤄 항상 난간에 앉아 이 나무를 가까이서 어루만질 수 있다. 집을 둘러 돌담을 쳤는데 거친 돌을 여러 겹 쌓아 높이가 한 길 정도 되고, 위에는 녹각 모양의 나무로 만들었다. 담과 처마의 거리는 겨우 반 필이나 높게 두르면서 좁다랗게 했으니 나라의 법을 받들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돌담이 높고 좁은 것은 이고장의 풍속이 모두 그러하니, 매서운 바람과 눈보라를 막기 위함이다. 하물며 내가 거처하는 곳은 이미 외롭고, 도적도 또한 걱정되어 나로 하여금 스스로 꾀하지 않게 하나 단지 약간 넓히고자 한다. 담은 이미 눈을 가려 볼품이 없고, 비록 나무를 심더라도 역시 마음에 들 것 같지 않다. 또한 나의 오늘을 스스로 보장할 수 없고, 먼 미래의 마음도 없으므로, 틈을 내 나무를 심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그대가 노송나무를 심어 세월이 지나 울창해진다고 말한 것을 듣고서는 능히 내가 하고자 하는 생각을 불러일으켜 다음 봄부터 감귤과 비자를 가지런히 심기로 생각했다.

②海釣則又風浪洶蹙. 絶少安帖之日. 尤無淡雅之味. 且所偕非土人卽方生. 生名舜賢. 判官之妻娚. 學儒. 於吾輩事. 頗聞風. 持意足多. 稍可談話. 而染俗乏雅. 於江湖無入處. 然海外遇斯人. 豈非幸甚歟. 豈足發吾興. 

바다에서 낚시질을 하면 또한 풍랑이 세차게 몰아쳐 편안하고 조용한 날이 극히 적고, 더욱이 담담하면서도 우아스러운 맛이 없다. 또 함께 하는 바가 이곳 사람이 아니라 곧 방생이니생의 이름은 순현으로 판관의 처남으로 나에게 유학을 배우고 자못 풍문에 들으니 뜻을 지님이 족히 많다 하니, 그런대로 얘기를 나눌만 하나 세태에 물들어 우아한 맛이 모자라 강호에 몸 둘 곳이 없다. 그러나 해외에서 이 사람을 만났으니 어찌 심히 다행스럽지 않은가.,어찌 나의 흥을 불러일으키리오!

③旣無意中人可共. 如君所言略無心悰. 且國法可畏. 故其出甚稀. 一朔不過或一或二. 或踰朔不出. 梨亭亦不甚數出. 橘園尤稀往. 踽踽獨步. 秪增索寞耳. 橘熟時則嫌亦宜遠. 官有直守. 

이미 의중에 같이 할 사람이 없으니 그대가 말한 바와 같이 대체로 즐거운 마음이 없다. 또한 국법이 두려울만한 까닭에 나다님이 매우 드물어 보름에 한 번, 혹은 두 번에 지나지 않고, 또는 보름을 넘어도 나들이가 없고 배나무가 심어진데서 이름을 따온 이정에도 역시 자주 나가지 않고 귤 과원에 매우 드물게 나가 홀로 외로이 걸으니 다만 삭막함이 더 할 뿐이다귤이 익을 때인 즉 꺼려 또한 멀리할 것이다. 관에서 사람이 나와 지킨다..

④骨肉隔絶. 親知悠緬. 昔時遊從. 凋喪已多. 天外孤身. 幾嘗世故. 尋常處心. 固未嘗不怡然順理. 而忽然念到. 亦未嘗不悵然以感也. 

골육이 멀리 떨어져 있고 가까운 사람들과도 아득하다. 과거 적 어울리던 사람으로 벌써 죽은 이가 많으니 매우 멀고 먼 곳의 외로운 이 몸이 얼마나 세상 변화를 맛볼 것인가. 통상 마음가짐으로는 진실로 기꺼이 순리로 받아들이지 않음이 아니나 홀연히 생각이 미치면 또한 처량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도다.

이들 항목은 김정이 유배살이 하면서 살았던 주거지의 실태 및 경관을 비롯해 무시로 느끼는 정서를 밝혀 놓은 것이다. 그 양도 전체 21개 항목 가운데 4개를 차지할 만큼, 가장 많다. 이를 보자면, 김정의 일상생활 및 교류와 아울러, 유배인에게 내려졌던 국법의 조치, 김정의 고독, 중앙정계 복귀의 열망 등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제주살이가 길어질 수 있으니, 그에 맞춰 대비해야겠다는 의지도 지녔음이 드러난다.

한편, 위 ①의 밑줄 친 부분은 김정이 자신의 적거터를 밝힌 것으로 신빙성이 매우 높다고 하겠다. 단지, 금강사터가 오늘날의 어디에 위치해 있었는가를 찾아내는 일이 관건일 듯싶다.

오현단.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오현단 입구.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3. 맺음말

'제주풍토록'은 시기가 가장 올라가는 제주풍토지이다. 또한 그 내용은 제주의 기후·가옥·신앙·제주어·풍속·민정·지형·토산·서식 동식물·형승·유배살이와 그 처지로 꾸며졌다. 이들 내용은 김정이 제주에서 유배살이를 하면서 직접 체험하거나, 혹은 얻은 견문의 사실에 근거해 썼을 것이다. 그래서 '제주풍토록'은 최초의 제주풍토지임과 아울러, 16세기 전반 제주의 실정이 생생하게 담겨져 있다는 데서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이는 '제주풍토록'에 실린 내용을 항목별로 나눠 검토해 본 결과, 사실로써 여실히 드러났다.

한편, 김정은 성리학적 소양이 깊고, 사후에도 유림으로부터 추앙될 만큼 그 사상에 투철한 인물이었다. 반면, 제주는 조선시대 내내 성리학적 이념이 사회문화로서 규범화가 덜 진척된 곳이라 하겠다. 이로써 김정은 16세기 전반 제주의 실정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게 된 면도 없지 않다고 헤아려진다. 또한 그는 문화 다원주의적 입장이 아니고, 성리학적 세계관과 유배살이의 관점을 기저로 하는 자신의 주관성에 근거해 제주사회를 바라보면서 얻은 그 인식을 '제주풍토록'에 수록했다고 보인다. (끝)

# 김일우

제주 출신으로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문학 석사·박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사단법인 제주역사문화나눔연구소장 겸 이사장을 맡고 있다. 

역사연구자로 나선 후, 줄곧 지방사회와 국가권력과의 관계를 해명하는데 관심을 기울였다. 그에 따른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냈다. 특히, 1995년부터 서울에서 다시 제주에 살기 시작한 뒤로는, 제주사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 국가사 인식의 폭을 넓히는 한편, 국가사와 제주사의 유기적 통합을 모색하는 관점의 연구에 힘을 기울였다. 또한 전문적 역사연구자의 연구 성과물을 일반 대중과 공유화하는데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 결과, 도내 일간지에 1년간 실었던 연재물이 ‘고려시대 탐라사 연구’(신서원, 2000)로 이어져 문화관광부 ‘2001년도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됐다. 또한 ‘고려후기 제주·몽골의 만남과 제주사회의 변화’, ‘한국사학보15’(고려사학회, 2003)로 비롯된 연구물은 ‘제주역사 기행 제주, 몽골을 만나다’로 이어졌다. 이는 일부 개정을 거쳐 일본판 ‘韓國·濟州島と遊牧騎馬文化モンゴルを抱く濟州’(明石書店, 2015)로 출간됐다. 연구 성과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2014년 ‘연구물의 나눔’을 지향한다는 의미에서 제주역사문화나눔연구소를 개설하고 소장·이사장을 맡은 뒤, ‘증보판 화산섬, 제주문화재 탐방’(제주특별자치도, 2016) 등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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