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멈춰선 제주 제2공항, 정치권 중심 '정석비행장' 활용방안 재점화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소재 정석비행장 전경.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소재 정석비행장 전경.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 제2공항이 환경적인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지역 안팎으로 새로운 대안 논의 단계로 접어드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기존에 활주로가 조성돼 있는 '정석비행장'이 새로운 대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내년 3월 실시되는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움직임이 보다 구체적이다. 다만, 정석비행장의 경우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안개일수, 공역 등 전문적인 영역에서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 개발 부담 덜한 정석비행장, 정치권 중심으로 급부상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제동목장 인근에 위치한 정석비행장은 지난 1998년부터 대한항공 조종사 양성 및 훈련용으로 이용되고 있다. 길이 2300m, 폭 45m 활주로에 항공등화시설, 계기착륙장치(ILS) 등을 갖추고 있어 중형 항공기는 물론 점보기의 이착륙도 가능하다는 장점을 지녔다.

실제 정석비행장은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중국 응원단을 태운 항공기가 이용하기도 했고, 2009년 부시 미국 대통령 입도 당시에도 활용됐다. 산남-산북, 동-서간 갈등을 최소화하고, 찬반 입장을 고려할 수 있는 제3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이 같은 배경 속에서 정석비행장은 신공항 입지로 꾸준히 주목받아온 곳이다. 활주로 조성을 위해 대규모 환경파괴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이미 상당 규모의 활주로 시설을 갖춘 정석비행장은 상대적으로 가장 부담이 덜한 대안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정석비행장 활용안은 민가를 허물어 주민을 이주시켜야 하는 등의 사회적 영향도 최소화 할 수 있는 대안이다. 주민 수용성 측면에서도 개별 주민들과 상대해야 하는 여타 지역에 비해 제동목장 소유주인 대한항공(한진그룹)과의 대승적 논의가 오갈 수 있다는 점에서도 메리트를 더한다.

실제 제2공항 사업이 무산되는 흐름 속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3인을 중심으로 일찌감치 정석비행장 활용 가능성을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환경부의 제주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 재보완서 '반려' 결정이 내려진 지난 20일 더불어민주당 송재호(제주시갑), 오영훈(제주시을), 위성곤(서귀포시) 국회의원은 공동 명의의 입장문을 통해 "환경부의 최종 결정을 존중한다"며 "삶의 질 향상, 안전성과 편리성, 지역 균형발전 등에 초점을 맞추고 고민해 새로운 대안과 해법을 찾는 데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 정석비행장 후보지 평가, '장애물-소음' 무난...'공역-안개일수' 최저점

지난 2015년 국토교통부가 한국항공대학교와 국토연구원, (주)유신 등에 의뢰해 실시한 '제주 공항인프라 확충 사전타당성검토 연구용역'에는 정석비행장을 비롯한 각 후보지에 대한 평가가 포함돼 있다.

정석의 경우 공역평가에서 1등급, 풍향 및 풍속 등 기상평가 기준도 'PASS' 평가를 받았다. 진입표면 위로 돌출하는 지형의 면적을 상대 평가하는 장애물 평가에서도 1등급으로 통과됐고, 소음점수도 4등급으로 비교적 양호했다.

당초 후보지 31곳 중 10개로 추려낸 1단계 후보지 평가는 무난하게 통과했다.

다만, 10개 후보지를 대상으로 실시된 2단계 후보지 평가에서는 기상조건과 공역 등의 문제가 제기됐다.

제주 제2공항 사전타당성 용역 2단계 후보지 평가 점수표. 정석비행장은 공역, 기상, 공공지원시설, 환경 등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탈락했다. 사진=제2공항 사전타당성용역 자료 갈무리
제주 제2공항 사전타당성 용역 2단계 후보지 평가 점수표. 정석비행장은 공역, 기상, 공공지원시설, 환경 등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탈락했다. 사진=제2공항 사전타당성용역 자료 갈무리

먼저 공역과 관련, 정석비행장은 최저점인 1점을 받았다. 정석비행장 북쪽 4.6km 지점에 위치한 부소오름으로 인해 북측으로의 진입이 곤란하다는 이유다.

기상 분석에서도 연간 안개일수가 33일인 정석은 최저점인 1점을 받았다. 10개 후보지 중 안개일수 초과로 1점을 받은 곳은 정석이 유일했다. 해발 고도가 타 후보지에 비해 높다보니 안개가 끼는 날이 많고, 1년 중 비행하지 못하는 날이 평균 50일 가량이라는 대한항공 측의 설명도 뒤따랐다.

이 밖에도 인근 부지에 경관 보전지구와 지하수자원보전지구가 분포돼 있다는 점에서도 박한 평가를 받았고, 후보지와 주변지역 시·읍과의 접근거리로 분석되는 '공공지원시설 평가'에서도 유일하게 1점 최하점을 받았다.

이는 곧 장애물, 소음, 지형조건, 확장성 등의 조건에서는 상대적으로 우수한 평가를 받았음에도 후보지에서는 최종 탈락하게 된 원인이 됐다.

◇ 해소되지 못한 '평가의 공정성'...나눗셈 실수에 들쭉날쭉 기준까지

그럼에도 도민사회에서 정석비행장을 유력 후보군으로 빼놓지 않는 이유는 '평가의 공정성'에 대한 의문이 뒤따르면서다. 지난 5년간 정석비행장은 제2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유력 후보지 중 지목돼 왔고, 사전타당성 용역의 부실 의혹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미 활주로를 운영하고 있는 정석비행장은 공역 관련 점수에서 1점을 받았다. 문제는 평가 대상지 1곳에 대한 공역 평가를 난이도에 따라 '1점'과 '10점' 두 가지로만 평가했다는 점이다. 성산읍을 비롯한 6곳은 모두 '10점', 정석을 제외한 4곳은 '1점'을 받았다. 그외 모든 평가 항목의 경우 점수를 수준별로 나눈 '등간격 평가'가 이뤄졌다는 점도 비교되는 대목이다.

정석비행장의 발목을 잡은 가장 큰 요인이 된 '안개일수'의 경우 정석비행장 측에서 제출한 자료를 그대로 적용했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비교대상이 된 타 후보지는 모두 제주·서귀포·고산·성산 등 4개 지점의 기상청 공식 자료인데, 정석비행장만 별도의 관측자료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이는 곧 동질성이 보장되지 못하는 자료를 갖고 기상조건의 적합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오류를 범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을 불러왔다. 성산의 연간 안개일수가 12일인데 약 20km도 떨어지지 않은 정석의 안개일수가 33일이나 된다는 것은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안개일수와 관련해서는 미심쩍은 지점이 또 있다. 최종 후보지로 선택된 성산읍이 유리한 점수를 받도록 평가에 오류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용역진은 년도별 안개일수 평균치를 매기는 과정에서 성산읍의 8년치 안개일수를 8이 아닌 10으로 나눴다. 8로 나눴을 경우 16일이 돼야 할 안개일수는 10으로 나누면서 12일로 줄었다. 이는 아주 기초적인 나눗셈 문제로, 고의였든 실수였든 용역의 전문성에 상당히 금이 간 대목이었다.

이 밖에도 후보지에 대한 전력·급수·통신 등을 제공하는 편리성을 의미하는 '공공지원 시설' 점수가 1점을 받은 것도 도마에 올랐다. 이미 비행장 시설을 운영하면서 전력·급수·통신시설이 완비된 정석비행장은 사실상 신설과 확장의 차이가 없는 지역임에도 용역진은 정석의 점수를 최저점으로 매겼다.

◇ 최종 목적은 '항공인프라 확충'..."정석 활용안, 한 가지 대안으로 검토"

현 제주 제2공항 사업이 무산될 경우 제주사회는 '항공인프라 확충 대안'을 찾는데 주력하게 될 전망이다. 공항인프라 확충 작업은 철저히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이다. 

정석비행장 활용안은 그중 하나의 안으로 제시될 수는 있어도 최적안으로 판단하기에는 다소 섣부를 수 밖에 없다. 특히 안전성을 이유로 정석비행장 활용 불가 판단을 내렸던 국토부가 스스로 결정을 번복하는 부담을 감수할지도 미지수다.

애초에 제주의 숙원은 제2공항이 아닌 기존 제주국제공항의 수용력을 늘리는 '항공인프라 확충'에 있었다. 이 경우 현 제주공항 확장안까지도 폭 넓게 다뤄질 수 있다.

제2공항 대안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오영훈 의원은 정석비행장 활용안과 관련 "지금까지 국토부나 제주도는 정석비행장의 경우 여러가지 제약이 있어서 검토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주장했는데 그게 맞는지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 지적했던 안개일수나 항공관련 문제, 기술과 안전의 문제가 극복될 수 있는지 살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 의원은 "당내 의견들이 모여 긍정적 의견으로 요청한다면 대선 과정에서도 반영될 수 있을 것"이라며 추후 관련 논의를 확대해 나가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한편, 국회의원 3인은 이달 말 제주에서 '제주지역 공항인프라확충 및 갈등해소 해법모색 토론회'를 열기 위한 발제자 및 토론패널 섭외를 이어가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일정이나 참가자가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유력한 참가자들은 항공수요와 공항기술 분야 검토가 가능한 전문가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해당 토론회는 '제주국제공항 혼잡문제 해결을 위한 정석비행장 활용 검토'라는 부제를 내걸고 있다. 공항인프라 확충의 필요성을 전제하며 정석비행장 활용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재점화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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