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홍의 세상 사는 이야기] (78) 동방견문록과 이븐 바투타 여행기

세계의 4대 여행기 중 하나를 쓴 중세 아랍의 여행가이자 탐험가인 이븐 바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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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 시대의 가장 불편하고 짜증나는 일은 여행이 불가하다는 것. 나처럼 역마살 있는 인간이 바깥 구경 못하니 온몸에 두드러기가 생기는 중. 하여 나의 계획은 8월, 2차 백신 접종이 끝나는 즉시, 무조건 해외로 튈 생각.

하와이든, 사이판이든 어디든 땡큐! 그 동안은 여행기나 읽으면서 여행의 즐거움을 대리체험하는 게 장땡! 지금 상상열차를 타고 세계의 곳곳을 누비며 씽씽 달리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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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4대 여행기는 이븐 바투타여행기,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오도릭의 동방기행이다. 이 가운데 나는 바투타여행기와 동방견문록을 읽었다.

동방견문록은 ‘13세기 서양인 시각으로 쓴 세계문화편람’이란 촌평이 말하듯 수많은 도시의 역사, 풍속, 설화, 산업, 교통 등을 상세히 기술했다. 베네치아공화국(현재 이탈리아) 시민인 마르코 폴로가 1270~1295년까지 26년간 동방의 여러 지역을 여행하면서 직접 본 바를 구술했고 이를 기술한 사람은 피사의 소설가 루스티첼로다.

이 책은 ‘인류 최초의 세계여행기’라고 일컬어지는데 제목 ‘견문록’은 보고 들은 이야기를 기록했다는 뜻이다. 보는 게 다가 아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도 보고 들은 걸 기록한 책이다.(역사에서 진실 공방이 종종 일어나는 건 보고 들음이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주관의 객관화, 과거의 현재화다)

마르코의 세계여행은 아버지, 큰아버지 폴로 형제의 영향이다. 이들 부자(父子)는 상인이었고 장사꾼이었기에 동방으로의 대여행이 가능했다.(상인의 도전·개척정신과 현실감각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동방견문록은 13세기엔 어린이용 옛날 이야기로 치부되어 ‘허풍쟁이 마르코 이야기’라고 평가절하되기도 했지만 19세기 이후 유럽의 뛰어난 번역자들에 의해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실로 번역의 힘은 놀라운 것이다.(제주에는 유능한 번역가 김석희가 있다)

동방견문록의 여행경로는 ①중앙아시아 ②중국(元) ③남해항로(유라시아 대륙의 동서를 잇는 바닷길) 등 셋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마르코는 쿠빌라이 칸(칭기즈 칸의 손자)이 있는 대도(베이징)에서 가장 오래 (17년) 체재하면서 쿠빌라이의 총애를 받았다.

당시 세계를 지배한 건 타타르인(몽골족)이었고 원나라의 수도인 베이징은 실크로드(유라시아 대륙의 동서를 잇는 육로)와 남해항로의 교착점으로 세계무역의 중심이었다.

나는 일주일에 한번 말고기를 먹는데, 그때마다 칭기즈칸이 세계를 정복한 건 말(기동력)+말고기(비축 가능한 육포)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조랑말을 타고 육포를 씹으며 폭풍같이 말을 달려 아시아와 유럽의 견고한 성(城)들을 넘어뜨리는 몽골 기병들…상상의 나래가 퍼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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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븐 바투타 여행기는 1325~1354년까지 30년간 서남아시아, 유럽, 동아프리카, 중국 등지의 여행기다. 그런데 이 여행은 흔히 생각하는 관광여행이 아니다. 순례길이고 순례란 ‘종교상의 성지나 영지를 찾아다니며 참배하는 것’이다. 순례자란 실은 수행자요, 구도자에 다름아니다.

그래서 그의 여행기는 낭만적·감상적 기록이 아닌 현실적·이성적 답사기이다. 신앙의 뿌리인 메카를 찾아가는 순례자의 눈에 비친 도시와 사람들은 아름답고 다정하고 사랑스럽다. 마치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사람처럼 그의 시선은 따뜻하다. 길에서 만난 강도나 사기꾼도 그에겐 연민과 교화의 대상일 뿐이다.(인간과 세계는 양면성이 있다. 그러나 진정한 신앙인에게 확증편향은 죄가 아니다)

바투타에게 현세의 욕망은 세상을 여행하는 것인데 이미 실현됐고 내세의 욕망은 낙원(천국)에 들어가는 것으로, 그것도 알라의 도움으로 이뤄졌다고 믿는다.(나의 욕망도 그와 다르지 않다)

바투타가 새로운 도시를 방문할 때는 거의 언제나 그 지방의 고매한 수행자나 현인을 만났는데, 그 만남을 통해 인생의 의미와 인간의 본성을 천착하여 깨닫는 것이다. 그러니까 순례의 종착점은 득도이고 진리를 향한 개안이다.

바투타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사람은 만난다.(내 친구인 정우은 목사는“여행지에서 연인을 만나라”고 충고한다)

이 여행기는 한 마디로 성지순례 여행기이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도 성 요셉이 걸었던 순례길이다. 제주의 올레길도 순례길을 겸하게 되면 종교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터인데. 현재의 기독교·불교순례길과 올레길을 연계하거나 올레길 근처에 있는 교회나 사찰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최근 인터넷에서 보는 ‘랜선 투어’는 가이드의 설명을 따라가는 가상여행인데, 이는 눈요기에 불과하다. 책이라는 사유의 그물을 통과하지 않고서 어찌 진리에 이르겠는가? 지적인 혹은 영적인 희열을 느끼려는 자는 독서의 늪에 빠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법이다. / 장일홍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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