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반려된 제주 제2공항’ 시간끌기 안돼

소리시선’(視線)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는 사람이 없다면 절망적이다. 이 상황에 처하면 뭘 하든 수습이 어렵다. 신뢰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메주를 쑤는 주체가 정부 혹은 공적인 기관이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구성원들이 도통 들으려 하지 않으니 정책의 효과는 커녕 우리 사회에 불신의 골만 깊어질 뿐이다. 원인은 거짓말이다. 

거짓말에도 유형이 있다. 선의의 거짓말은 때로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솝 우화 속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은 심심풀이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다. 반복된 거짓말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화를 키웠다. 진짜 늑대가 나타났는데도 아무도 나서려 하지 않는 상황은 정말이지 생각도 하기 싫다. 

환경부가 제주 제2공항 건설을 위해 국토교통부가 낸 전략환경영향평가서를 반려해 국토부의 위신이 말이 아니다. 평가서가 부실하다는 이유였다. 수차례 기회를 줬는데도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환경부는 “협의에 필요한 중요 사항이 누락됐거나 보완이 미흡했다”고 사유를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비행안전과 멸종위기 야생생물 보호 등 사업 초기부터 문제가 제기된 사항들에 대해 국토부가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은 점이 지적됐다. 

환경부가 돌려보낸 환경영향평가서는 국토부가 2019년 9월 환경부에 ‘본안’을 제출한 뒤 보완에 보완을 거듭한 평가서다. 보완 요구를 여러번 받았음에도 국토부는 끝내 문제를 해소하지 못했다. 이는 국토부가 사업 강행에 몰두한 나머지 하자 치유를 소홀히 했거나, 아니면 입지 선정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얘기가 된다. 둘 다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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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의 전략환경영향평가서에 대한 환경부의 반려 결정으로 제주 제2공항 추진 동력이 사실상 사라진 가운데, 국토부가 더이상 시간을 끌지 말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있다. <그래픽=김찬우 기자> ⓒ제주의소리

전략환경영향평가서 반려는 매우 드믄 케이스라고 한다. 한 갈등 관리 전문가의 표현을 빌면, 이번에 국토부는 ‘환경부가 취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반대’에 부딪쳤다. 

문제는 국토부가 체면만 구긴 게 아니라는 점이다. 양치기 소년처럼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사실 여기까지 오지 않아도 됐다. 약속만 지키면 될 일이었다. 도민 의견을 존중하겠다던 약속. 중요한 순간마다 되풀이한 그 약속. 공개토론에서 국토부 책임자는 전략환경영향평가가 환경부의 동의를 얻지 못할 경우 사업을 접겠다고도 했다. 배수의 진을 쳤으나, 모두 빈말이 되고 말았다. 

제주도와 도의회가 합의해 올 2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도민들은 ‘반대’를 선택했다. 환경부는 전략환경영향평가에 대해 동의 또는 부동의 대신 ‘판단 불가’ 결정을 내렸다. 중대한 결함으로 인해 더는 협의할 여지도 없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국토부는 재보완서를 환경부에 보냄으로써 그간의 약속을 팽개쳤다. 선의도 심심풀이도 아닌, 가장 나쁜 유형의 거짓말을 한 셈이다. 인프라 확충 외에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었던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는 이유다. 

시민사회는 환경부의 반려 결정을 제2공항 백지화로 받아들였다. 업계 전망도 비관적이다. 제2공항을 다시 추진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사업 자체를 전면 재검토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토부의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뜻이다. 

너무 늦기는 했지만, 국토부가 추락한 신뢰를 다소나마 만회할 기회는 있다. 외통수에 몰린 이상 서둘러 결단(?)을 내리는 일이다. 구렁이 담 넘듯 해선 안된다. 민심이 떠난 마당에 새 정부가 들어선다고 해서 상황이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 환경부의 반려 조치를 무책임한 정치적인 결정이라고 몰아세우는 원희룡 지사야말로 민심과 따로노는 정치공학의 전형을 보여준다. 

결단은 빠를수록 좋다. 그만큼 도민들이 대안을 모색할 시간이 늘어난다. 제2공항 찬성론자 입장에서 보더라도 허망한 꿈을 계속 꾸도록 놔두는 희망고문을 멈추어야 한다. 

표로 드러난 제2공항 반대 여론은 기실 난개발과 환경수용력의 한계를 우려하는 민심의 표출이다. 제주 미래상에 대한 고민이 녹아있다. 이는 곧 신자유주의, 개발 만능주의가 강하게 스며든 국제자유도시가 더 이상 제주의 미래가 될 수 있느냐는 반문이기도 하다. 도민들이 제주를 제주답게 가꿔가도록 돕는 차원에서라도 국토부는 시간을 끌지 말아야 한다.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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