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詩 한 편] (76) 별을 보며 / 임영석

제주시 알작지 해변의 밤. ⓒ김연미

침묵을 기둥 삼아 집 한 채 짓고 싶다
아무리 많은 사람 망명을 해 와도
침묵의 기둥 하나면 다 수용하는 그런 집. 

​살인자도 숨어들고 강간범도 숨어들어
남은 생 침묵으로 벌 받으며 살다 보면
꽃처럼 말 한마디를 배워가는 그런 집

​밤하늘 어둠을 보면 침묵의 기둥 같다
수많은 영혼들이 어둠 속에 매달려서
무엇을 고백하는데 왜 내가 울컥할까

-임영석, <별을 보며> 전문-

밤 하늘을 올려다본 기억이 별로 없다. 밤이 밤 같지 않은 까닭도 크다. 밤이면 응당 어둠이 있어야 하는데, 어둡지가 않다. 근처에 있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어둠을 물리치는데 온 역량을 다하며 산다. 어둡다 느끼기도 전에 사방에서 불이 켜진다. 어쩌다, 요행히 어느 한구석 어둠이 숨어들어도 여지없이 쫒겨난다. 예외는 없다. 문명의 이기는 프로그래밍 된 데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만나게 되는 어둠 앞에서 우린 당황하게 된다. 경험해 보지 못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어둠 앞에 승리자로 서기 위해 우린 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산다. 무엇을 포기했는지조차 모른 채 말이다. 그 중 하나가 밤하늘. 어머니 품 같은 달과 그 뒤를 따르는 별, 반짝이는 별보다 더 선명하던 까만 어둠, 어둠이 있어 별이 더 반짝이고, 어둠이 있어 달이 더 훤했다. 달과 별이 있어 어둠이 더 짙어진 것은 물론이다. 

그런 하늘을 보며 우린 많은 것들을 생각했다. 말로 다 하지 못하는 후회, 기원, 눈물, 고백,.. 이런 것들이 쌓여 커다란 기둥을 세웠을 것이다. 어둠의 기둥이다. ‘수많은 영혼들이 어둠 속에 매달려’ ‘고백’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남은 생 침묵으로 벌 받으며 살다 보면’ 그 어둠의 기둥 끝에 누군가의 대답처럼 별 하나 반짝이게 되지 않을까, 상상했을 것이다. ‘꽃처럼 말 한마디를 배’우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 밤에는 내 주변의 불을 끄고 가만히 밤하늘을 올려다 보자. 경계선 다 지우고 흐릿해진 밤하늘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반짝이는 별이 있고, 훤한 달이 있고, 까만 어둠이 있을 것이다. 

그 별과 달과 어둠에게 내 침묵의 고백을 기둥처럼 쌓아 보는 것도 이 불면의 한 여름밤을 보내는 방법이지 않을까....

김연미 시인은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출신이다. 『연인』으로 등단했고 시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  『오래된 것들은 골목이 되어갔다』, 산문집 <비오는 날의 오후>를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 오랫동안 하던 일을 그만두고 ‘글만 쓰면서 먹고 살수는 없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제주의소리>에서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 연재를 통해 초보 농부의 일상을 감각적으로 풀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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