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예술칼럼, Peace Art Column] (59) 토미야마 카즈미

제주도는 평화의 섬입니다. 항쟁과 학살의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은 더욱 간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주4.3이 그렇듯이 비극적 전쟁을 겪은 오키나와, 2.28 이래 40년간 독재체제를 겪어온 타이완도, 우산혁명으로 알려진 홍콩도 예술을 통해 평화를 갈구하는 ‘평화예술’이 역사와 함께 현실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들 네 지역 예술가들이 연대해 평화예술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들의 평화예술운동에 대한 창작과 비평, 이론과 실천의 공진화(共進化)도 매우 중요합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네 나라 예술가들의 활동을 ‘평화예술칼럼(Peace Art Column)’을 통해 매주 소개합니다. 필자 국적에 따른 언어가 제각각 달라 영어 일어 중국어 번역 원고도 함께 게재합니다. [편집자 글]

오키나와는 COVID-19 봉쇄에 실패해 7월 31일 현재 인구 140여만명의 오키나와에서 24,761명이 감염되고 236명이 사망한 위급한 상태에 있다. 공공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공문서관도 임시 휴관해 시민들은 지식과 문화의 인프라를 이용할 수 없는 상태다. 그러나 소규모 민간 갤러리는 감염 예방 대책을 충분히 배려한 다음 전시회를 개최하는 예도 있다.

6월 하순 오키나와갤러리에서 한 화가의 개인전이 열려 큰 호평을 받았다. 그것은 오키나와에 사는 사람들이 작품을 가까이에서 감상하는 전람회를 갈망하고 있던 것도 물론 있지만, 무엇보다도 작가 킨죠 메이치가 그려 내는 세계관이, 팬데믹 하의 사람들의 피폐한 마음을 강하게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사진=토미야마 카즈미. ⓒ제주의소리
킨죠 메이치, 바람 부는 날, 캔버스에 유채, 72.7×91cm, 2021. 사진=토미야마 카즈미. ⓒ제주의소리

1954년생인 킨조는 반세기에 걸친 그 작가생활에서 일관되게 오키나와의 <풍경>을 주제로 삼았다. 고향의 빛과 바람이 풍경에 주는 풍부한 색채는 킨조의 끝없는 영감의 원천이다. 예를 들어 <바람 부는 날>이라는 작품은 오키나와의 농촌 일각을 그리고 있다. 맑고 푸른 하늘에는 수분을 듬뿍 머금은 질감의 구름이 발랄하게 떠오르고, 그 아래로 오래된 양식의 가옥이 자리 잡고 있다. 머리 하나 높은 기와지붕은 회반죽이 덮여 있는데, 그 하얀 빛은 마치 상공의 구름과 경쟁하는 듯하다. 가옥을 둘러싼 류큐 석회암 돌담은 오솔길을 따라 부드러운 곡선을 만들어 낸다. 지붕 너머에는 구름에 닿을 듯 벌떡나무가 서 있고, 킨조의 화필은 그 나무꼭대기를 흔드는 한 순간의 남풍을 멋지게 표현하며 바람과 흙냄새까지 전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풍경이 확실하게 사라져 가는 예감 속에 살고 있다. 기와 지붕의 가옥은 네모난 콘크리트 상자로 바뀌어 사라지고 있고, 류큐 석회암 돌담 같은 것은 현재는 오히려 사치품이다. 킨조가 그림에 그려 넣은 높은 나무는 현실에서는 벌써 베어졌다. 화가는 거기에 없는 나무를 그려, 실제로 서 있는 전신주나 그것으로부터 둘러친 전선을 주도면밀하게 화면에서 배제한다. 그가 그린 풍경조차 이미 옛것이다. 물질적 조건에 따라 라이프 스타일은 달라지는 것으로, 현대의 아이들에게는 패스트푸드나 편의점이 있는 거리가 원점일 수도 있고, 미군 기지의 펜스가 원풍경이라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킨조가 표현하는 것은 자본주의나 군사화와는 본래는 맞지 않을 오키나와의 토착 풍경이다. 그는 그것을 <재래종의 풍경>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그 풍경을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무엇이라고 직감할 때 풍경 그 자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풍경이 표상하는 삶의 총체, 섬의 삶, 섬의 철학이라는 것의 소멸을 아쉬워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진=토미야마 카즈미. ⓒ제주의소리
킨죠 메이치, 파란 섬, 캔버스에 유채, 72.7×91cm, 2021. 사진=토미야마 카즈미. ⓒ제주의소리
사진=토미야마 카즈미. ⓒ제주의소리
킨죠 메이치, 넝쿨과 시멘트 기와가 있는 집, 캔버스에 유채, 50×60.6cm, 2021. 사진=토미야마 카즈미. ⓒ제주의소리

오키나와의 풍경 변화와 소멸 속도는 너무 가파르다. 1972년에 오키나와가 미국으로부터 일본으로 반환된 이후, 오키나와 ‘진흥개발’ 명목으로 환경파괴와 맞바꾸어 정부 주도의 대규모 공공 토목공사가 전개되면서, 약소한 오키나와의 현지 자본을 끌어들이듯, 일본 자본이 유입되었다. 그러나 2018년 기준, 오키나와현민 1인당 소득은 국민소득을 100으로 하면 74.81이라는 최저 수준에 있으며, ‘개발’은 오키나와인을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하지 않고, 저렴한 노동력이라는 입장에 방치해 왔다. 1987년 제정된 이른바 리조트법은 오키나와를 관광자본에 통째로 내맡긴 격이다. 제주도가 한국의 하와이인 것처럼 오키나와도 일본의 하와이가 돼야 했다. 여권이 필요 없는 ‘이국’을 즐길 수 있는 낙원인 셈이다. 그러나 1984년 미야코지마에 문을 연 첫 리조트 호텔이 섬사람 이용 금지를 내건 것이 상징하듯 개발은 대부분 식민지적 구조 속에서 이뤄졌다. 마침내 섬의 신들을 맞이하는 성지까지도 관광자원으로 변모해 갔다. 외국인 관광객도 증가해, 오키나와의 연간 입역 관광객은 천만명을 넘었지만, 관광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고용은 불안정하고 임금도 낮은 채로 말이다. 그리고 지금 관광산업에 의존해 온 오키나와 경제는 미증유의 위기에 처해 있다. 그 위기는, 이익과 편리함을 요구해 ‘개발’에 영합한 오키나와 자신에게 내재하고 있던 것이기도 하다.

이 시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킨조가 그리는 풍경에 더욱 마음이 끌리는 것은 일종의 필연일지도 모른다. 거기에는 단순한 향수를 초월한 집단적인 위기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팬데믹에 직면해 세계는 더 친절하게 서로 의지하게 될 줄 알았는데, 부자는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자는 사회적 안전망을 빼앗기고 벌거벗은 채 길거리에 내동댕이쳐지는 현실. 그리고 사람들의 불안에 편승하듯 전쟁의 위기가 떠들썩하게 되면서 대만해협 위기를 명목으로 오키나와의 군사화가 가속화된다. 일본 정부는 미군기지 확대를 위해 거액의 비용을 들여 오키나와의 산을 깎고, 심지어 전사자의 뼈가 묻혀 있는 벌판에서 토사를 파내 아름다운 바다를 매립한다.

오키나와가 지금 목격하고 있는 것은 자본은 전쟁 혹은 전쟁 위기에서 최대의 이윤을 얻는다는 명제다. 그 귀결로서 미일 양군의 요새인 이 섬은 다시 전쟁의 표적이 되는 것인가? 이게 원하던 세계였던가? 만약 오키나와답게 있을 수 있었더라면 좀 더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재래종의 풍경>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을 절실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토미야마 카즈미. ⓒ제주의소리
킨죠 메이치, 외발자전거가 있는 풍경, 캔버스에 유채, 31.8×41cm, 2021. 사진=토미야마 카즈미. ⓒ제주의소리
사진=토미야마 카즈미. ⓒ제주의소리
킨죠 메이치, 남색 문, 캔버스에 유채, 31.8×41cm, 2021. 사진=토미야마 카즈미. ⓒ제주의소리

그는 오사카의 나카노시마미술학원에서 유화를 전공하며 다감한 청년기를 그곳에서 보냈다. 제주 사투리와 마찬가지로 오키나와 사투리도 콤플렉스의 요인이 되는 시대였지만, 킨조는 회화 표현에 있어서라면 '마음껏 오키나와 사투리가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독특한 표현이지만 재일 오키나와인으로서의 생활은 그로 하여금 토착으로 회귀하게 했다는 것일 게다.

아직 그려야 할 것이 오키나와에는 많이 있다고 그는 말한다. 바람과 흙냄새가 나는 토종의 풍경을 계속 그려보는 것. 그것은 부조리를 강요하는 권력에 대한 화가의 무언의 저항인지도 모른다.

# 토미야마 카즈미

토미야마 카즈미(豊見山和美 TOMIYAMA Kazumi) 씨는 도쿄 소재 추오대학교와 류큐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영국 런던대학교 아카이브연구 석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이후 오키나와현립공문서관의 아키비스트로 일하면서, 오키나와 전후사를 중심으로 문화평론을 하고 있습니다.


<在来種の風景>を描く―ある<抵抗の美術>
豊見山和美

沖縄はCOVID-19の封じ込めに失敗し、7月31日現在、人口140万人余の沖縄で24,761人の感染が確認され236人が死亡した危機的な状態にある。公共図書館や博物館、美術館、公文書館も臨時休館を余儀なくされており、人々は知と文化のインフラを利用できない状態だ。しかし小規模な民間ギャラリーは、感染予防対策に十分配慮したうえで展示会を開催する例もある。6月下旬、「画廊沖縄」で、ある画家の個展が開かれ大きな好評を博した。その背景には、沖縄に住む人々が作品を間近に鑑賞する展覧会を渇望していたことももちろんあるが、何にもまして、作家・金城明一が描き出す世界観が、パンデミック下の人々の疲弊した心を強く捉えたと言えよう。

図版1  風渡りの日 キャンバス 油彩 72.7×91cm 2021 
図版2  青に棲む島 キャンバス 油彩 72.7×91cm 2021
図版3 イカダカズラとセメンガーラ家 キャンバス 油彩 50×60.6cm 2021
図版4 一輪車のある風景 キャンバス 油彩 31.8×41cm 2021
図版5 藍色の門 キャンバス 油彩 31.8×41cm 2021

1954年生まれの金城は、半世紀に及ぶその作家生活において一貫して、沖縄の<風景>を主題としてきた。故郷の光と風が風景に与える豊かな色彩は、金城にとって尽きることのないインスピレーションの源泉だ。たとえば「風渡りの日」という作品は、沖縄の農村の一角を描いている。透明感のある青空には水分をたっぷりと含んだ質感のある雲がはつらつと浮かび、その下に古い様式の家屋が佇む。頭一つ高い瓦葺きの屋根は漆喰が覆っていて、その白さはまるで上空の雲と競い合うかのようだ。家屋を囲う琉球石灰岩の石垣は、小径に沿って柔らかな曲線を生んでいる。屋根の向こうには雲に触れんばかりにすっくと木々が立っていて、金城の絵筆はその梢を揺らす一瞬の南風を見事に表現し、風と土のにおいまでも伝える。

そして、私たちはそんな風景が確実に消えてゆく予感の中で生きている。瓦屋根の家屋はコンクリートの四角い箱に建て替えられて姿を消しつつあるし、琉球石灰岩の石垣など現在ではむしろ贅沢品だ。金城が絵に描きこんだ高い木は現実にはとっくに切り倒された。画家はそこにない木を描き、現に立っている電柱やそれから張り巡らした電線は周到に画面から排除する。彼の描いた風景さえすでに過去のものだ。物質的条件によってライフスタイルは変わっていくもので、現代の子供たちにとってファストフードやコンビニのある街角が原点かもしれないし、米軍基地のフェンスが原風景という人さえいる。だが、金城が表現するのは資本主義や軍事化とは本来は相容れないはずの沖縄の土着の風景だ。彼はそれを<在来種の風景>と言う。人が、その風景を失いたくない大事な何かだと直感する時、風景それ自体というよりむしろ、その風景が表象する生活の総体、島の生き方、島の哲学というものの消滅を惜しんでいるのだと思う。

沖縄の風景の変化と消滅の速度はあまりにも急激だ。1972年に沖縄がアメリカから日本に返還されて以降、沖縄の<振興開発>の名目で、環境破壊と引き換えに政府主導の大規模な公共土木工事が展開され、弱小な沖縄の地元資本を吞み込むように日本資本が流入した。しかし2018年度の沖縄県民一人当たり所得は国民所得を100とすると74.81という最低水準にあり、<開発>は沖縄人を経済的に豊かにせず、安価な労働力という立場に据え置いてきた。1987年に制定されたいわゆる「リゾート法」は、沖縄を観光資本にまるごと委ねたようなものだ。済州道が韓国のハワイであるように、沖縄も日本のハワイにならねばならなかった。旅券の要らない<異国>を楽しめる楽園というわけだ。しかし、1984年に宮古島に開業した初めてのリゾートホテルが「島人の利用お断り」を掲げたことが象徴するように、「開発」は多くの場合、植民地的構造の中で行われた。やがて島の神々を迎える聖地までも観光資源に変貌していった。インバウンドの観光客も増加し、沖縄への年間入域観光客は1千万人を超えたが、観光産業に従事する労働者の雇用は不安定で賃金も低いままだ。そして今、観光産業に依存してきた沖縄経済は未曽有の危機に瀕している。その危機は、利益と便利さを求めて<開発>に迎合した沖縄自身に内在していたものでもあるのだ。

この時点で多くの人々が金城の描く風景にさらに心を惹かれたのは、一種の必然かもしれない。そこには単なるノスタルジーを越えた集団的な危機感が存在するからだ。パンデミックに直面して世界はもっと優しく支え合うようになるかと思ったのに、富める者はさらに富み、貧しき者は社会的セーフティネットを奪われて裸で路上に放り出されるという現実。そして、人々の不安に乗じるが如くに戦争の危機が喧伝され、台湾有事を名目に沖縄の軍事化が加速される。日本政府は米軍基地拡大のために巨額の費用を投じて沖縄の山を削り、さらには戦死者の骨が埋もれている原野から土砂を抉り出して美しい海を埋め立てる。沖縄が今目撃しているのは、資本は戦争あるいは戦争の危機から最大の利潤を得るという命題だ。その帰結として、日米両軍の要塞であるこの島は再び戦争の標的となるのか?これが望んでいた世界だったのか?もし沖縄が沖縄らしくいられたならばもっと別の世界が広がっていたのではないかという思いが、<在来種の風景>への人々の眼差しを切実なものにしているのだ。

金城は、大阪の中之島美術学院で油絵を専攻し多感な青年期をそこで過ごした。済州訛りと同じように沖縄訛りもコンプレックスの要因となる時代だったが、金城は絵画表現においてなら「思い切り沖縄訛りできる」ことに気づいたという。ユニークな言い回しだが、在日沖縄人としての生活は彼をして土着へ回帰せしめたということだろう。まだ描くべきものが沖縄にはたくさんあると彼は言う。風と土のにおいのする在来種の風景を描き続けること。それは、不条理を強いる権力に対する、画家の無言の抵抗なのかもしれない。


描繪「本土風景」作為「抵抗的藝術」
豊見山和美

沖繩未能遏制 COVID-19,截至 7 月 31 日,人口超過140萬的沖繩已確認 24,761例感染和236例死亡,使這島嶼處於危急狀態。公共圖書館、博物館、畫廊和檔案館也被迫暫時關閉,使人們無法參訪場館和文化基礎設施。然而,一些小型商業畫廊確實在適當考量和嚴守感染控制措施的情況下舉辦展覽。6月下旬,在“Gallery Okinawa”舉辦了畫家金城明的個展,反應相當熱烈。在這背後,固然沖繩人渴望通過展覽近距離欣賞作品,但最重要的是畫家金城明一所描繪的世界觀,是疫情下的人們。他用力俘獲了疲憊的心。

圖 1 風行渡日  布面油畫  h727 w910  2021
圖 2 藍色的海島  布面油畫 h727  w910  2021
圖 3 藤蔓和水泥屋頂瓦房 布面油畫 h500 w606 2021
圖 4 帶著獨輪車的風景 布面油畫  h318 w410 2021
圖 5 藍色大門 布面油畫  h318 w410 2021

金城明出生於 1954 年,在他半個世紀的畫家生涯中始終專注於沖繩的「風景」。家鄉的光和風賦予風景的豐富色彩是金城明無盡靈感的源泉。例如,作品《風行渡日》描繪的是沖繩農村的一角。湛藍的天空中,一朵質地含有大量水分的雲朵蓬勃地漂浮著,一幢古老的房屋矗立在雲朵之下。高大的瓦屋頂上覆蓋著灰泥,潔白得如同與天上的雲彩爭鋒。圍繞房子的琉球石灰岩石牆沿著小直徑形成了柔和的曲線。樹站在屋頂的另一邊,剛好接觸到雲彩,金城明的畫筆優美地表現了搖晃樹梢的瞬間南風,傳達了風和土壤的氣味。

我們生活在這樣的景觀肯定會消失的預感中。瓦屋頂的房屋改建為方形混凝土箱後逐漸消失,琉球石灰岩石牆現在已成為相當奢侈的物品。照片中金城明畫的那棵高大的樹,竟然被砍倒了。畫家畫了一棵不存在的樹,小心地從屏幕上取下豎立的電線桿和從電線桿上伸出的電線。就連他畫的風景也已成為逝去過往。生活方式隨著物質條件的變化而變化,對於現代孩子來說,快餐店和便利店的街角可能是起點,甚至有人說美軍基地的圍欄是原始景觀。然而,金城明表達了沖繩的本土景觀,這應該與資本主義和軍事化不相容。他稱之為「本土風景」。當一個人本能地認為重要的東西是他或她不想失去的東西時,我認為他或她會懷念風景所代表的整個生活,島上的生活方式和島上的哲學的消失,而不是景觀本身。

沖繩的景觀變化和消失的速度太快了。自1972年沖繩從美國歸還日本後,以沖繩「促進開發」的名義,進行了以政府為首的大規模公共土木工程,以換取環境破壞,沖繩弱小的地方首都被擠壓,日本資本湧入,從而擠進來。然而,2018年沖繩人人均收入處於國民收入100時的最低水平74.81,「開發」反而讓沖繩人處於廉價勞動力的位置,卻沒有讓他們帶來富裕的經濟。1987年制定的所謂《度假村法》,就像是把沖繩完全委託給旅遊之都。正如濟州島是韓國的夏威夷一樣,沖繩也必須成為日本的夏威夷。這是一個不需要護照就可以享受「異國」的天堂。然而,「開發」往往是在殖民結構中進行的,1984年在宮古島開業的第一家度假酒店提倡“不使用島民”就是一個象徵。最終,連歡迎神靈的聖地也變成了旅游資源。入境游客人數有所增加,每年進入沖繩的遊客人數已超過1000萬人次,但旅遊業從業人員的就業情況仍然不穩定,工資水平仍然很低。而現在,依賴旅遊業的沖繩經濟正處於前所未有的危機邊緣。危機也是沖繩本身固有的,沖繩本身就是為了尋求利潤和便利而響應「開發」。

很多人此時對金城明所描繪的景色更加著迷,或許是一種必然。這是因為存在一種超越單純懷舊的集體危機感。面對疫情大流行,我想知道世界是否會更溫和地相互支持,但富人更富,窮人被剝奪社會安全網,赤身裸體流落街頭。然後,戰爭危機被吹捧為乘人之危,以台灣緊急狀態為名,加速沖繩的軍事化。日本政府將斥巨資在沖繩剃光山地用以擴大美軍基地,還將從埋葬戰死者遺骨的荒野中挖出泥土,填滿美麗的大海。沖繩現在看到的是資本將從戰爭或戰爭危機中獲得最大利益的議題。如此一來,這個日美兩軍要塞的島嶼,會不會再次成為戰爭的目標呢?這是你想要的世界嗎?人們迫切地想,如果沖繩能像沖繩一樣,會不會是另一個世界呢?

金城明在大阪中之島美術學院主修油畫,在那裏度過了多愁善感的青年時期。像濟州口音一樣,沖繩口音也是複雜的一個因素,但金城明意識到他可以在他的繪畫表達中“嘗試沖繩口音”。這是一個獨特的短語,但似乎是日本沖繩的生活讓他回到了土地。他說沖繩還有很多東西要畫。繼續繪製散發著風和土壤氣味的本土風景。也許這是對強迫不合理權力的無言的抵抗。


<Depicting <Indigenous Landscape> - An artistic attempt of resistance
TOMIYAMA Kazumi

Okinawa has failed to contain COVID-19, and as of 31 July, 24,761 infections and 236 deaths have been confirmed in Okinawa, which has a population of just over 1.4 million, leaving the islands in a critical state. Public libraries, museums, art galleries and archives have been forced to close temporarily, leaving people without access to knowledge and cultural infrastructures. However, some private galleries do hold exhibitions with due care and attention to infection control measures. In late June, KINJO Mei-ichi, a painter held his solo show at Gallery Okinawa, and it was very well received. This was due, of course, to the fact that the people living in Okinawa wanted to have an exhibition where they could see the work up close, but more than anything else, it was the artist's vision of the world that really gripped the weary hearts of the people during the pandemic.

Born in 1954, Kinjo has consistently depicted Okinawan 'landscapes' throughout his half-century career as an artist. The rich colours of the light and wind of his homeland are a never-ending source of inspiration for him. For example, the painting "Wind Crossing Day" depicts a corner of a farming village in Okinawa. The sky is clear and blue, with textured, moisture-rich clouds floating in the air, beneath which stands old-style houses. The tiled roofs, one head taller than the rest, are covered with plaster, the whiteness of which seems to compete with the clouds above. The stone walls of Ryukyu limestone that surround the houses form a soft curve along the path. Beyond the roofs, the tree stands tall, almost touching the clouds, and Kinjo's brush captures the momentary southerly breeze swaying the treetops, conveying even the smell of wind and earth.

And yet we live in a world where such landscapes are steadily disappearing. Houses with tiled roofs are disappearing, replaced by square concrete boxes, and Ryukyu limestone walls are now more of a luxury. The tall trees that Kinjo depicted in his painting have long since been cut down. The artist paints trees that are not there, and carefully excludes from the picture the electric poles and wires exist actually. Even the landscape he painted is already a thing of the past. Lifestyles change according to material conditions, and for today's children a street corner with fast food and convenience stores may be their starting point, and there are even people who see the fences of the US military base as their original landscape. What Kinjo represents, however, is the indigenous Okinawan landscape, which is supposed to be incompatible with capitalism and militarization. He calls it "Indigenous landscape". When people intuit that the landscape is something important that they don't want to lose, I think they are regretting the disappearance of the totality of life, the island way of life, the island philosophy that the landscape represents, rather than the landscape itself.

The pace of change and disappearance of the Okinawan landscape has been so rapid that since the reversion of Okinawa from the US to Japan in 1972, government-led massive public works projects have been carried out in the name of "promotion and development" of Okinawa, at the cost of environmental destruction, and Japanese capital has flowed into the weak local capital of Okinawa. However, the per capita income of Okinawans in FY2018 was at a low of 74.81 compared to a national income of 100. The development has not enriched Okinawans economically, but has kept them in the position of cheaper labour. The so-called "Resort Law" enacted in 1987 left Okinawa entirely in the hands of tourism capital. Just as Jeju-do is the Hawaii of Korea, Okinawa had to become the Hawaii of Japan. A paradise where one could enjoy the 'exotic' without the need for a passport. But "development" was often carried out within a colonial structure, as symbolized by the first resort hotel on Miyako Island, which opened in 1984 with saying "no islanders allowed as our guests".  Even the sacred places that welcomed the island's gods were transformed into sight -seeing resources. In time, inbound tourism increased, and the annual number of visitors to Okinawa exceeded 10 million, but employment for workers in the tourism industry remained precarious and wages low. Now, the Okinawan economy, which has depended on tourism, is in an unprecedented crisis. This crisis was also inherent in Okinawa itself, which had pandered to "development" for immediate profit and convenience.

It is perhaps inevitable that at this point many people are even more drawn to the landscapes Kinjo depicts. This is because there is a collective consciousness of crisis that goes beyond mere nostalgia. In the face of a pandemic, we thought the world would become a kinder, more supportive place, but the reality is that the rich are getting richer and the poor, deprived of the social safety net, are being thrown naked into the streets. And to add to people's fears, the threat of war has been trumpeted and the militarization of Okinawa has been accelerated in the name of the Taiwan Strait Crisis. The Japanese government is spending huge sums of money to cut down the mountains of Okinawa in order to expand the US military bases, and to fill in the beautiful sea by gouging out the earth and sand from the wilderness where the bones of the war dead are still buried. What Okinawa is witnessing now is the proposition that capital derives the greatest profit from war or the threat of war. And will the islands, fortress of the US and Japanese military, once again become a target in war? Is this the world we wanted? It is the thought that if Okinawa had been able to remain Okinawa itself, a different world might have opened up that makes the people's look at the 'Indigenous landscape' so poignant.

Kinjo spent his youth as an impressionable young man at the Nakanoshima Art School in Osaka, where he majored in oil painting. It was a time when an Okinawan accent, like a Jeju accent, could cause a complex, but Kinjo found that he could "do my best Okinawan accent" in painting. This is a unique way of saying that his days as an Okinawan living in Japan has made him return to his island. There is still so much to paint in Okinawa, he says. He will continue to depict the indigenous landscape, which smells of wind and earth. Perhaps this is the artist's silent resistance to the power that enforces absurdity.

Fig. 1 “Day of the wind crossing”, oil on canvas, 72.7×91cm, 2021 
Fig. 2 “Island in the Blue”, oil on canvas, 72.7×91cm, 2021
Fig. 3 “House with Vines and Cement roof tiles”, oil on canvas, 50×60.6cm, 2021
Fig. 4 “Landscape with a Wheelbarrow”, oil on canvas, 31.8×41cm, 2021
Fig. 5 “Gate in Indigo Shades”, oil on canvas, 31.8×41cm,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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