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소리] 230여회 한라산 등반 산사람 강영근 씨, 조릿대 파묻힌 표지석 찾아내

제주의소리 독자와 함께하는 [독자의소리]입니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세계자연유산 제주 한라산. 웅장한 자태를 뽐내면서도 언제나 든든한 품을 우리 곁에 내어주고 있는 민족의 영산입니다. 

성판악과 관음사, 어리목, 영실, 돈내코 등 다양한 탐방로마다, 계절마다 다른 풍광과 정취를 선사하는 한라산이 좋아 무려 230여 회에 달하는 등반 인증서를 발급받았을 정도의 한라산 마니아인 제주도민 강영근(54) 씨.

영근 씨는 폭설이 내린 지난겨울 관음사 탐방로에서 등산객들이 산을 오를 수 있도록 선두에서 눈을 쳐내 길을 다지면서 나아가는 ‘러셀’ 도중 허리춤까지 쌓인 눈 속에서 무엇인가에 무릎을 강하게 부딪쳤습니다. 

아픈 무릎을 부여잡고 눈을 걷어보니 나타난 것은 삼각봉 모양의 ‘해발 1600m’를 알리는 표지석이었습니다. 평소 관음사 탐방로를 오르내리면서 볼 수 없었던 표지석을 발견한 것입니다.

영근 씨는 눈이 녹으면 다시 찾아와야겠다 생각한 뒤, 잊고 지내다 문득 표지석 생각이 났습니다. 지난 7월 28일 전정가위 등 간단한 장비를 챙겨 들고 표지석을 찾기 위해 다시 한라산으로 향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당시 발견했던 장소에 가 보니 표지석은 온통 조릿대로 뒤덮여 쉽게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다시 차분히 기억을 더듬으며 인근을 샅샅이 뒤진 끝에 끝에 표지석을 겨우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표지석은 오랜 세월이 흐른 듯 각종 고사목 잔가지들과 무성한 조릿대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영근 씨가 가지고간 전정가위 등으로 주변을 정리한 뒤에야 표지석은 온전한 자신의 모습을 세상에 드러냈습니다. 

ⓒ제주의소리
한라산 마니아 강영근 씨는 지난 7월 28일 한라산 관음사 탐방로에서 조릿대와 고사목으로 덮여 있던 '해발 1600m' 표지석을 찾아내 등반객들의 안전한 이정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비했습니다. ⓒ제주의소리
ⓒ제주의소리
조릿대 등에 가려 오랫동안 제기능을 하지 못했던 해발 1600m 지점을 안내하는 표지석을 최근 한라산 마니아인 강영근 씨가 찾아내 정비하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삼각봉을 닮은 모습이 이채롭다.  ⓒ제주의소리

영근 씨는 “평소 한라산을 자주 오르는데 관음사 탐방로에는 1600m 표지석만 보이지 않아 의아했다”며 “우연히 표지석을 발견해 등산객들이 볼 수 있도록 정비해두니 삼각봉 모양의 표지석이 아름답더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지금이라도 다시 제기능을 하게 돼서 다행이지만 왜 표지석이 조릿대에 파묻혀 지금까지 빛을 볼 수 없었는지 궁금하다”라면서 “탐방로에 고사목들도 많이 방치돼 있는데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에서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고 제보해왔습니다.

한라산 탐방로에 100m 간격으로 세워진 표지석은 1970년대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가 지어지기도 전 건설교통부에 의해 설치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해발고도를 알리는 표지석은 1950m의 높은 한라산을 오르는 탐방객들에게 길잡이 같은 역할을 합니다. 탐방객들은 표지를 통해 얼마만큼 올라왔는지 확인한 뒤 숨을 고르고 앞으로 정상까지 오를 힘을 분배합니다.

강영부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 주무관은 [제주의소리]와의 통화에서 “확실하진 않지만, 건설교통부가 한라산을 관리하던 1970년대 이전 5.16도로와 1100도로가 개통되면서 고도를 알리는 표지석도 함께 설치된 것 같다”고 답변했습니다.

이어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에서 설치했다면 위치를 알고 정비했을 텐데 관련해 남아있는 자료가 없어 측량 기준 등 애매한 부분이 있다”라면서 “발견 사실을 알게됐으니 직원을 보내 위치를 확인하고 탐방객들이 잘 볼 수 있도록 정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영근 씨는 평소 한라산을 오르며 고사 직전의 나무가 생명을 되찾을 수 있도록 가꾸고 탐방로 주변 쓰레기를 주워 하산하는 등 한라산을 사랑하는 산(山)사람입니다.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논어의 한 구절 ‘인자요산(仁者樂山)’이 떠오릅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