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원의 영어어휘 톡톡 talk-talk] (79) disgust 혐오

dis·gust [disgʌ́st] n. 혐오(嫌惡)
지네 입맛에 맞지 아녀덴 편식허는 사회 
자기들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편식하는 사회

disgust는 "opposite of(=반대의)"의 뜻인 dis-와  "taste(=맛)"의 뜻인 gust의 결합으로, 그 어원적 의미는 “입맛에 맞지 않는”이다. ‘혐오’의 일상적(ordinary) 의미는 무언가를 싫어하고 미워한다는 뜻이지만, 오늘날 차별(discrimination)의 문제로 제기되는 혐오는 소수자(minority) 또는 특정 집단에 대한 부정적 인식(negative recognition), 차별, 편견 등을 담고 있다. 이러한 혐오는 말과 글뿐만 아니라 행동, 복장, 기타의 상징물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는데 이런 표현들을 총칭하여 ‘혐오표현’이라고 한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sleeping on their sides)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 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primitive friendship)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더욱이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intentional act)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미워하는 대상이 이성적으로 옳게 파악되지 못하고 말초감각(peripheral sense)에 의해 그릇되게 파악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증오의 감정과 대상을 바로 잡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혐오(self-disgust)에 있습니다.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문제는 우리가 무심코(carelessly) 사용하는 혐오 표현들이다. 단어의 끝에 상대를 곤충(insects)이나 벌레(worms)에 비유하는 ‘충(蟲)’을 붙여 ‘급식충’, ‘출근충’ 등으로 특정 집단을 한데 묶어 비난하거나, 매사 결정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을 이르러 ‘결정 장애(障礙)’라 하거나, 흑인을 친근하게 대한다면서 ‘흑형’이라 부르는 경우 등이 여기에 속한다. 심지어 지금껏 별 생각없이 사용해왔던 “남자가 이런 일로 울면 되겠어?”라는 표현이나 “여자는 얌전하게 있어야지” 등의 표현도 성별을 이유로 하는 혐오표현으로 우리의 언어생활 곳곳에서 여전히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혐오의 시작은 자기혐오일 것이다. 자기가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싫어하니 다른 대상을 향해 그 혐오를 쏟아내는 것이다. 사진=픽사베이.

이러한 혐오표현들이 발생시키는 문제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혐오표현이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인간의 존엄(dignity)과 가치(worth)를 부정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혐오표현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정신적 고통(mental pain)을 받게 되고 그 두려움과 스트레스는 스스로를 원망하는 자책(self-reproach)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차별이 담긴 혐오표현은 그 대상으로 하여금 사회구성원(a member of society)으로 사회에 참여할 권리를 상실하게 만들어 사회생활을 어렵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이런 혐오표현을 통해 지속적으로 차별을 받다보면 대개는 자신이 사회구성원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고 스스로 사회에서 멀어지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셋째는, 혐오표현이 표현으로 그치지 않고 차별과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혐오표현은 개인 뿐만 아니라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차별과 폭력은 집단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집단 폭력(organized violence)으로도 얼마든지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혐오와 혐오표현의 배경에는 ‘자기들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편식(eating only what we want)하는 사회’가 있다. 그 편식의 결과가 진영논리(camp logic)이고, 지역갈등(regional conflict)이고, 성차별(sexism)이고, 세대갈등(generational conflict)인 것이다. 더욱이 지금은 말 그대로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의 시대가 아닌가. 우리가 우리와 다른 민족들(different peoples)에게 혐오표현을 쓴다면, 그들도 우리에게 ‘김치충’, ‘마늘충’이라 할지 모를 일이다.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편식을 해선 안 되듯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혐오표현을 마구 쏟아낸다면 그야말로 조물주(the Creator of the Universe)가 통탄(lament)할 일이다. 우리의 마음을 한번 조용히 들여다보자. 혐오의 시작은 자기혐오일 것이다. 자기가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싫어하니 다른 대상을 향해 그 혐오를 쏟아내는 것이다.

* ‘김재원의 영어어휘 톡톡 talk-talk’ 코너는 제주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과에 재직 중인 김재원 교수가 시사성 있는 키워드 ‘영어어휘’를 통해 그 안에 담긴 어원적 의미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링 해설 코너입니다. 제주 태생인 그가 ‘한줄 제주어’로 키워드 영어어휘를 소개하는 것도 이 코너를 즐기는 백미입니다. 

# 김재원

제주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과 교수(現)
언론중재위원회 위원(前)
미래영어영문학회 회장(前)
제주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장(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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