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35) 나이 많은 사람이 져야 한다

* 한 : 많은, 하다(多, 많다)
* 져사 : 져야, 지어야

사실, 한국 사회에서 이 말에 거부감을 나타낼 개연성이 없지 않다. 손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져야 한다니. 유교의 나라 아닌가. 오륜 가운데 장유유서(長幼有序)가 있지 않은가. 위아래는 엄연히 차례가 있는 법이거늘, 말도 안 되는 얘기 아니라고 할는지 모른다.

물론 예도를 지켜야 할 자리에서 웃어른에 대한 예의를 몰라본다면 주위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 틀림없다. 경우나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저럴 수가 있나. 웃어른 말에 고분고분 순종해야지 저렇게 위아래도 몰라봐서야 되나. 기본 예의도 모른다고 질책할 것이다. 열 입이 한 입이 돼 욕할 것이 뻔하다.

하지만 사소한 일이 다툼으로 번질 때, 젊은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에게 덤벼드는 것은 버릇없는 일이긴 하나, 한편 꼭 나이가 아래인 사람에게 용사를 받아야 하겠는가. 하는 데 이르러 생각할 여지가 있다.

제주에선 길 가다 언성을 높이는 싸움판을 구경하면서 이런 얘기들이 나왔다. 

“아이고, 환갑 넘은 늙은 게 아덜만이 ᄒᆞᆫ 어린 것ᄒᆞ고 무슨 짓이라게. 허허 웃으멍 어깨 독독 두드리멍 기여 알았져. 나가 잠깐 생각을 잘못 해진 것 ᄀᆞᇀ으다. 잘못돼시난 이제 그만 ᄒᆞ영 웃고 말게 이?(아이고, 환갑 넘은 늙은 사람이 아들만 한 어린 사람하고 무슨 짓인가. 허허 웃으면서 어깨 다독이면서 그래 알았네. 내가 잠깐 생각을 잘못했던 것 같다. 잘못됐으니 이제 그만 해 웃고 말자 이?)” 할 것이지.

나이 한 사름이 져사 ᄒᆞᆫ다는 말은 자존심 문제가 아니라 연하의 상대에게 양보하는 마음의 자세를 강조하고 있다. 양보는 미덕이다. 사진=pixabay.

웃어른답게 아랫사람에게 관용을 베풀면 좋지 않으냐는 것이다. 언쟁이라는 것은 발단이 하찮은 것이다. 작은 일을 놓고 얼굴 붉혀 가며 싸울 일인가. 

‘지는 게 이기는 것’이라 말한다. 죽고 살 문제를 놓고 다투거나 쌈질하는 경우는 드물다. 아무리 미묘하다 하나, 져줄 때 져줄 수 있을 때, 결국은 다 풀리는 게 사람의 일이고 사람과의 관계다. 

그러니 어른 구실을 하려면 어른다워야 한다. 괜한 일로 아랫사람과 다퉜다가는 나잇값 못하는 사람이라는 빈정거림을 피할 수 없는 게 우리의 인심이고 인정이다. 비단 상대가 아랫사람만이 아니다. 남에게 아량을 베풀어 나쁠 게 무언가. 

지나치면 오지랖이 넓어 참견하는 꼴이 될 수 있다. 에너지가 넘치더라도 그렇게 과잉으로 넘치게 갈 필요는 없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아닌가.

‘나이 한 사름이 져사 ᄒᆞᆫ다’

자존심 문제가 아니다. 연하의 상대에게 양보하는 마음의 자세를 강조하고 있다. 양보는 미덕이다.

김길웅
김길웅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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