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人터뷰] 8월 8일 섬의 날-이정호 한국섬주민연합중앙회장

섬은 일정한 바다를 포함한 특별한 땅이다. 섬은 또 경관의 가치, 문화 다양성의 가치, 청정의 가치를 모두 아우른다. 사진은 전남 진도군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조도군도. 사진출처=국립공원공단.

추자도의 고통을 제주도가 잘 모르고, 백령도의 고통을 인천이 모른다. 울릉도의 고통을 경북이 모르고 섬의 고통을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모른다. 섬의 현실을 모르니 ‘옳은 섬 정책’이 나올 수 없다.  

8월 8일, 대한민국 ‘섬의 날’. 약 3300여개의 섬을 보유한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네 번째로 섬이 많은 나라다. 숫자 8을 가로로 뉘면 ‘무한’을 뜻하는 수학기호 ‘∞’이 된다. 행정안전부는 섬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발전 가능성과 자원을 상징하는 의미로 지난 2019년부터 8월8일을 제1회 섬의 날로 제정, 기념행사를 치렀다.

3300여 곳의 섬들 중 사람이 사는 유인섬은 270여 곳. 이곳 유인 섬들을 아우르는 사단법인 한국섬주민연합중앙회(회장 이정호, 이하 한섬연)가 대한민국 섬 정책은 ‘가고 싶은 섬’에 앞서 ‘살고 싶은 섬. 살기 좋은 섬’을 만드는 것에 방점을 둬야 한다고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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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8일 대한민국 제2회 섬의 날을 앞둬 이정호(69) 한국섬주민연합중앙회장은 대한민국 섬 정책은 ‘가고 싶은 섬’에 앞서 ‘살고 싶은 섬. 살기 좋은 섬’을 만드는 것에 방점을 둬야 한다고 역설한다. 제주 추자도가 고향인 그는 할아버지때부터 아들에 이르기까지 4대가 섬과 바다를 밭으로 생업을 이어가고 있는 섬 주민이다.  ⓒ제주의소리

8월 8일 섬의 날에 앞서 [제주의소리]가 이정호(69) 한국섬주민연합중앙회장을 만났다. 지난해 발기인 대회를 거쳐 공식 창립된 한섬연의 이 회장은 제주 추자도 출신으로 평생을 추자도에서 나고 자랐다. 할아버지부터 아버지, 아들까지 4대가 추자도에서 어업에 종사해온 그는 그 누구보다 섬을 잘 아는 섬 주민이다. 

약 88만명으로 추산되는 대한민국 유인 섬 정주인구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는 그는 올해 제2회 ‘섬의 날’을 맞아 △섬 여객선 및 도선 공영화 △섬주민 물류비용 절감 대책 △섬 폐교 활용 방안 마련 △섬지역 의료시설 확충 대책 등을 정부에 촉구하고 나섰다. 

2019년 정부가 ‘섬의 날’을 제정해 제1회 섬의 날 기념행사를 가졌지만 지난 해 코로나19로 공식행사를 갖지 못해 행안부는 올해 8월 8일을 제2회 섬의 날로 규정했지만, ‘섬의 날’을 모르는 대한민국 국민이 대다수다. 지난해 ‘한국섬주민연합중앙회’가 발기인대회와 창립총회를 갖고 발족했다는 뉴스도 육지 곳곳으로 퍼지진 못했다. 

이정호 회장은 “섬 주민으로서 국가 섬 정책에 섬 주민들의 목소리를 담는데 큰 책임감을 느낀다”며 “섬에 살아보거나 섬의 현실을 경험하지 않고 옳은 섬 정책이 나올 수 없다. 섬 주민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역설한다. 

그는 “전국의 도지사나 시장·군수 등이 행정선을 타고 관할 섬들을 둘러보는 경우가 잦은데, 행정선이 아닌 여객선을 타봐야 한다”며 “정치인들이 전기차를 타보지도 않고 전기차 정책이 나올 수 없듯, 여객선을 타보지 않고 섬 주민들의 현실을 알 수 없다. 여객선은 섬주민들에게 단순한 교통수단 이상의 의미다. 생존의 수단이다”라고 목청을 돋웠다. 

실제로 섬 주민들의 발이자 육지를 연결하는 유일한 이동 수단인 연안여객선은 2020년 3월 이전에는 ‘대중교통수단’에 포함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연안여객선은 버스, 철도 등 다른 교통수단과 대조적으로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지원 미비와 여객선사의 영세성으로 선박의 신규선 투입과 운항 횟수의 증가와 같은 서비스 개선은 당연히 감불생심이었다. 연안여객선의 운항 횟수 부족, 접안시설 미비, 기상 상황 취약 등으로 이어져 섬 주민들에게 일일생활권은 꿈같은 이야기였다. 

이정호 회장은 “연안여객선이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4월 국회에서 대중교통으로 포함됐다. 대중교통 법제화가 되었으니 이제 공영제를 조속히 끌어내는 것이 최종 목표”라며 “결코 쉽지 않겠지만 ‘주민참여 연안여객선 및 도선 공영제 실시’는 반드시 이뤄내야 할 섬 주민들의 희망”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한섬연은 대한민국 섬정책을 탁상행정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인 섬 주민들의 목소리를 정부 정책에 반영시키는 주축 역할에 진력하겠다는 각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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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호 한국섬주민연합중앙회장. 이 회장은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섬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 없이 외형적으로 포장된 ‘가고 싶은 섬’의 구호를 앞세워 관광객을 유혹하는 것은 사상누각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제주의소리

이정호 회장은 “한섬연은 어떠한 이해단체나 어떤 정치집단에도 속하지 않을 것이며, 오직 섬 주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걸음만 내디딜 것”이라면서 “대선 예비주자들은 아직까지 섬 정책에 대해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 섬이 소외돼 있다는 점은 지금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 내년 대선 주자들의 섬 정책공약을 촉구하기도 했다. 

정부나 지방정부가 귀어 귀촌 정책을 홍보하지만 섬은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지 오래고, 인구는 줄어들고 폐교되는 섬 학교는 늘어나고 있다. 청년은 없고 노인 인구는 늘고 폐교도 늘어난다. 노동인구의 부재라는 결과는 당연하다. 

그는 “섬이 초고령 사회로 접어들었다는 것은 각종 의료서비스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는 말인데, 섬은 공공의료, 전문의료인력이나 시설이 너무 열악하다.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에 택배가 안되는 섬이 숱하게 많은 물류 현실 역시 섬이 살기 어려운 곳임을 방증한다. 의료, 물류, 교육, 교통 모든 면에서 섬 주민들은 소외돼 있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이정호 회장은 올해 10월 출범을 앞둔 ‘한국섬진흥원’에 큰 기대를 걸었다. 지난 해 12월 1일 ‘도서개발촉진법’을 ‘섬발전촉진법’으로 개명하고 여기에 ‘한국섬진흥원’의 설립을 명시하는 법률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마침내 ‘한국섬진흥원’이라는 이름의 섬정책 컨트롤타워의 설립이 확정된 바 있다. 

이 회장은 “그동안 섬을 관장하는 정부 부처가 행안부, 환경부, 국토부, 해수부 등 업무에 따라 4~5개 부처가 중복으로 담당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책임 소재가 불분명했다. 결과는 일관성 없는 섬 정책으로 나타났고, 책임지지 않는 수박 겉 핧기 섬 정책이란 악순환이 거듭됐다”고 꼬집었다. 

그런 면에서 이 회장은 “한국섬진흥원 설립과 출범은 역사적 개원이다. 종전의 ‘가고 싶은 섬’ 전략은 실패한 정책이다. 실제 섬 인구 감소와 고령화, 그리고 유인도의 무인도화 추세가 가속화되고 있다”며 “향후 50년 후에 현 유인도의 6.7%가 무인도로 전락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는 상황에서 섬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 없이 외형적으로 포장된 ‘가고 싶은 섬’의 구호를 앞세워 관광객을 유혹하는 것은 사상누각일 뿐”이라고 진단, 섬진흥원의 섬 정책 콘트롤타워 기능에 적극 협력할 뜻을 피력했다. 

이정호 회장은 한국섬진흥원 출범으로 섬 주민들의 참여가 전제된 섬 정책의 개발과 추진이 이뤄지도록 정책 제안 계기가 마련됐다는 점게 거듭 기대감을 표했다. 

그동안 무심히 넘겨온 섬의 가치를 소환해보자. 섬은 일정한 바다를 포함한 특별한 땅이다. 이런 섬의 개념은 세계 각국이 치열하게 국가간 경계에 있는 섬을 자국의 영해에 넣으려는 경쟁에서 잘 살필 수 있다. 

섬은 또 경관의 가치, 문화 다양성의 가치, 청정의 가치를 모두 아우른다. ‘무한(∞)한 가치’를 갖는 섬의 가치를 상징해 ‘8월 8일’을 섬의 날로 지정한 만큼, 국가 성장동력에 섬의 가치가 반영될 수 있도록 섬 주민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버려지듯 국가정책으로부터 소외돼온 섬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섬의 차별과 소외를 대신 고민해주지 않는다. 

이정호 회장은 말한다. “이제 스스로 깨달았다. 정주인구 약 88만 대한민국 섬 주민들의 목소리를 스스로 외쳐야 한다는 점을 말이다. 2021년 8월 8일 제2회 섬의 날을 맞아 한섬연의 울림이 시작된다. 대한민국 섬들의 울림에 귀 기울여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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