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현장] 철거 앞둔 시민회관, 산업화시대 제주문화 공간, 최초 철골 등 가치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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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후 생활SOC 공간이 들어설 제주시민회관 전경. ⓒ제주의소리

58년 동안 제주시민들과 공존해온 제주시민회관이 결국 철거된다. 현재 위치에 새로운 건축물이 세워지더라도, 반세기 넘는 기간 동안 무수한 시민들의 추억을 간직해온 ‘집단 기억의 공간’이자 제주 건축 문화의 중요한 상징으로서 고유한 가치는 남겨야 한다는 의견이다.

제주시는 지난 4일 “현재 시민회관 부지에 지하 2층, 지상층 높이 32m 이내 연면적 1만1010㎡ 규모”의 생활 SOC 복합화 사업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지난하게 이어온 시민회관 활용 논의에 종지부를 찍는 공식 선언이다.

1964년 준공된 제주시민회관은 2000년 이후부터 철거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2007년 정밀안전진단 C등급을 받으면서 안전 문제가 불거졌고 2010년에는 철거 후 체육공원을 조성하는 계획이 추진됐다.  2013년 보수·보강 공사 후 정밀안전진단 B등급을 받으면서 생명이 연장됐으나, 2016년 문화재 등록은 끝내 무산됐다. 

2018년이 돼서야 활용 방안 타당성 조사 및 기본 설계 용역을 통해 ‘일부 보존·리모델링’을 결정했다. 다만, 최근 정부의 생활 SOC 복합화 사업에 선정되면서, 국비 지원을 통해 총사업비가 2018년 용역안 217억원에서 324억4500만원으로 100억원 이상 늘어났다. 규모가 커진 만큼 계획도 일부 수정되면서 일부 보존에서 전체 철거로 바뀌었다. 

지난 5일 취재 기자가 현장을 찾았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제주시민회관은 어느 때 보다 조용한 분위기였다. 지난 7월 초까지는 생활 체육인들이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꾸준히 찾아오며 나름 활기를 띠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3단계로 올라가면서 일체 사용이 중단됐다. 코로나19에 철거 소식까지 들리면서 시민회관 실내에는 고요함이 묵직하게 내려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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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민회관 내부 모습. ⓒ제주의소리

1964년 문을 연 제주시민회관은 문화 시설이 부족했던 산업화 시대에 문화 향유를 제공한 시민들의 반가운 벗이었다. ▲제주예술제(탐라문화제 전신) ▲미스탐라 선발대회 ▲제주시립합주단(현 제주교향악단), 제주시립합창단 창단 연주 ▲각종 연극·영화 상영 ▲4.3추모제 등 숱한 역사와 궤적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이 뿐만 아니라 제주 최초의 철골 구조에 의한 건축물이라는 의미도 더한다.

시민회관은 넓은 실내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철골 트러스들을 양쪽에서 마주보게 세워 지붕을 지탱하는 '2힌지 아치형' 건축물이다. 시민회관 트러스 구조물은 지금도 온전히 남아있다. 지금이야 건축 재료를 고정시키는데 일반적으로 볼트를 사용하지만 1960년대만 해도 불에 달군 금속을 두들겨 그 역할을 대신했다. 일명 ‘리벳(rivet)’ 기술이다. 시민회관 트러스에도 리벳들이 발견된다. 제주시민회관을 설계한 김태식 건축가는 옛 제주관광호텔도 설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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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민회관의 철골 트러스 구조물.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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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민회관은 제주 최초의 철골 건축물이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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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회관 천장에도 트러스가 연결돼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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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 교수가 철골 트러스를 설명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태일 제주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는 시민회관의 가치를 크게 ▲시민들의 집단 기억 ▲건축 문화에서 찾는다. 

그는 지난 5일 [제주의소리]와 함께 시민회관을 찾아 “만약 누군가 2002년 빨간 색 옷을 입고 한국 대표팀의 월드컵 경기를 응원했다면, 그 벅차고 흥분되는 감정은 함께 기억을 공유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바로 집단 기억의 역사다. 공간도 마찬가지다. 지금과 비교하면 궁핍하고 힘든 시기였지만 시민회관에서 영화, 공연을 비롯해 다양한 추억을 간직한 시민들에게 이곳은 집단 기억의 공간으로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많은 시민들이 공통된 기억을 가지는 공간이 남아 있냐, 없냐는 한 공동체의 문화적 수준과도 연결된다”면서 “공연장, 전시장만 짓는다고 제주시가 문화도시가 될까. 아니라고 본다. 집단 기억의 공간들이 얼마나 잘 보존돼 있는지 여부도 진정한 문화도시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다. 역사는 글로 보는 것과 현장을 보는 것이 완전히 다르다”고 강조했다.

건축 문화로서의 시민회관은 “1960년대는 제주에서 이런 규모의 공간을 만드는 기술이 충분치 않을 때다. 제주 최초로 철골 구조물이라는 사실은 그 자체로 제주 건축 역사를 논할 때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생활 SOC 복합화 사업으로 시민회관 전체가 철거되는 사실을 아쉬워했으나, 결정된 이상 적어도 시민회관의 가치를 후대에 남길 수 있는 방법은 꼭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예를 들어 철골 트러스 활용이나, 시민회관 전면부 콘크리트 부분을 상징적으로 남긴다던지 여러 가지 방법을 충분히 상상해볼 수 있다”면서 “무엇보다 과거를 완전히 없애기 보다는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방향을 고민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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