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가금류 2800만 살처분 결정...유명무실한 심의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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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독감 등 가축전염병별 예방 관리 대책을 심의하는 중앙가축방역심의회가 최근 공개된 심의 자료에서 형식적인 운영 실태가 드러나 비판을 받고 있다. [그래픽 이미지=최윤정 기자]. ⓒ제주의소리

제주도가 올해 대정읍에서 발견된 야생철새(청둥오리) 폐사체에서 검출된 조류독감으로 긴장상태를 유지하는 가운데, 조류독감 등 가축전염병별 예방 관리 대책을 심의하는 중앙가축방역심의회가 단 한번도 전체 회의를 열지 않고, 서면으로만 운영되고 있음이 밝혀져 물의를 빚고 있다.

공익법률센터 농본은 최근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2019년 이후 중앙가축방역심의회의 심의 자료를 공개 받았다. 이 자료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 4월에 비공개한 자료를 행정심판을 거쳐 공개 받은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중앙가축방역심의회의 심의 자료를 공개해오지 않다가, 지난 7월 16일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가 행정심판을 제기하자 뒤늦게 자료를 공개했다.

대규모 조류독감이 발생했던 작년, 농림축산식품부는 반경 3km 이내 무차별적인 ‘예방적 살처분’을 강행했다. 무려 가금류 2천800만 마리 이상이 죽임을 당했다. 이러한 살처분 방식에 동물복지 측면에서나 경제적으로도 많은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를 무시하고 살처분을 밀어붙였다.

살처분 결정의 타당성을 다시 짚어보기 위해서는, 가축전염병예방법에 따라 구성돼 심의기구로서 일해야 할 ‘중앙가축방역심의회’의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행 가축전염병예방법에 따르면, 중앙가축방역심의회는 ▲가축전염병 예방 및 관리대책의 수립 및 시행 ▲가축전염병별 긴급방역대책의 수립 및 시행 ▲가축방역을 위한 관계 기관과의 협조대책 등을 심의하는 법정기구로, 조류독감, 구제역, 아프리카돼지열병 등의 예방 및 관리대책, 긴급방역대책 등을 심의하는 중요한 기구다.

지난 2015년 정부는 가축전염병예방법을 개정해 자문기구였던 가축방역협의회를 심의기구인 가축방역심의회로 변경하면서, 개정이유로 “현재 축산 및 수의 분야 전문가 중심의 자문기구인 가축방역협의회를 가축방역심의회로 개편해 의료, 환경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가축방역과 관련된 주요 정책을 심의하도록 함”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중앙가축방역심의회에는 수의·축산·의료·환경 등 관련 분야에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을 참여시키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현재 중앙가축방역심의위원회는 공무원 16명, 민간 76명(학계 34, 축산단체 11, 민간전문가 31)까지 총 92명으로 구성돼 있다.

공무원과 학계의 구성원이 반절을 넘는 가운데, 보다 상황을 객관적이고 현실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을 다양화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농림축산식품부가 공개한 2019년 이후 중앙가축방역심의회의 심의자료를 검토한 결과, 2019년 이후 중앙가축방역심의회는 전체 회의를 단 한 번도 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상 회의체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분과별 심의는 있었지만, 조류독감을 다루는 가금분과의 경우에는 2019년 이후 20차례의 심의를 모두 서면심의로 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령 농림축산식품부는 ‘중앙사고수습본은 중앙가축방역심의회를 열어 무엇을 했다’는 식의 발표를 했지만, 이것 역시 모두 서면심의였다. 코로나19 등의 상황이 감안하더라도 줌 회의 한번 열지 않았다.

따라서 지난 겨울 논란이 된 ‘3km 예방적 살처분’의 타당성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에 의한 제대로 된 토론이 있었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오직 서면심의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공개받은 중앙가축방역심의회 가금분과의 2019년 이후 심의자료 결과를 요약한 내용. 자료=공익법률센터 농본.

서면심의를 통해 진행된 심의결과들 또한 농림축산식품부가 상정한 안건을 형식적으로 통과시키는 수준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2019년 이후 2021년 상반기까지의 중앙가축방역심의회 가금분과 서면심의 결과를 보면, 모두 농림축산식품부가 제안한 안건이 그대로 통과됐다.

조류독감, 구제역 등 해마다 발생하고 있는 가축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근본적이고 전문적인 대책을 논의하려면 가축방역대책심의회가 지금처럼 형식적으로 운영되지 않도록 자성이 필요한 상황이다.

하승수 농본 대표는 “일단 법에 나와 있는 대로라도 의료, 환경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로 위원회 구성이 됐으면 한다. 중앙가축방역심의회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만큼 보통 심의기구와 다르게 심의회 산하 연구위원을 둘 수 있는데, 두지 않고 있다. 기존에 이뤄졌던 가축전염병 관련 대책은 사실상 관료들이 결정해왔다고 봐야 한다”며 위원회 구성의 미흡함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중앙가축방역심의회의) 심의자료가 공개된 게 처음이다. 국회의원한테도 심의 안건만 공개되고 불투명하게 운영돼왔다. 협의회에서 심의회로 위상이 강화됐는데도 다양한 전문가 의견을 듣지 못하고, 있으나마나한 기구가 됐다”며 “이번 자료공개를 계기로, 중앙가축방역심의회가 실질적인 기능을 할 수 있는 방안이 논의돼야 한다. 그와 함께 기존에 이뤄졌던 예방적 살처분 정책에 대한 성찰과 대안모색 등이 공론화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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