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은 인류를 종말에 이르게 할까?
인공지능은 인류를 종말에 이르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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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世通, 제주 읽기] (208) 장가브리엘 가나시아, 이두영 역, ‘특이점의 신화’, 글항아리 사이언스, 2017.
장가브리엘 가나시아, 이두영 역, ‘특이점의 신화’, 글항아리 사이언스, 2017. 사진=교보문고.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테슬라의 일런 머스크, 인공지능 연구자 스튜어트 러셀, 인류의 미래 연구소의 철학자 닉 보스트롬, 생명의 미래 연구소의 물리학자 맥스 테크마크…….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지만 모두 인공지능의 미래에 우려를 표한 이들이란 점이다. 물론 이들이 인공지능에 대해 갖고 있는 구체적인 생각들은 모두 다르다. 하지만 적어도 인공지능이 인류를 위협할 수 있기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만큼은 일치하고 있다.

지난 북세통 서평(‘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설 때’)에서 SF 장르의 인공지능과 기술적 특이점을 다룬 비평서인 ‘특이점 시대의 인간과 인공지능’을 살펴보았다. 인공지능과 관련된 대중들의 호기심과 불안 가운데 하나가 인공지능이 기술적 특이점을 넘어서 인류를 지배하거나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는 일이다. 인공지능 전문가들에게 대중들은 자녀들의 일자리를 걱정하며 미래의 진로를 묻거나, 더 나아가 극도로 발전된 인공지능이 인류를 지배하지 않을까 궁금해 한다. 

그리고 SF는 사실상 이러한 기술적 미래에 대한 상상력과 불안의 원천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 상상력을 흥미롭게 확장하는 것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상상에서 우리는 단순한 오락적 재미 이상으로 미래 사회를 대비하거나 기술을 발전시키는 동력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기술적 특이점은 단지 SF 문학과 영화라는 울타리 안에 머물지 않는다. 실제로 이러한 기술적 특이점은 과학자와 기업인을 움직이며, 대중들의 마음속에 인공지능의 이미지와 불안을 불러일으킨다.

그 점에서 인공지능 SF와 특이점 SF는 하나의 문학적 장르를 넘어서 우리 시대의 중요한 상상력이자 마스터플롯이 되었다. 마스터플롯(masterplot)이란 우리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표현되면서 우리의 기대와 불안, 윤리와 감정, 욕망을 반영하고 (재)생산하기도 하는 중요한 이야기 단위이다. 마스터플롯은 문학과 영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이야기 바깥의 우리의 삶에서도 작동하면서 우리의 삶과 사회적 선택에서 실제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 마스터플롯 개념을 인공지능 담론에 대입해 보면, 특이점의 담론과 이야기가 얼마나 우리 시대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

프랑스의 인공지능 전문가이자, 철학자, 인지과학자인 장가브리엘 가나시아(Jean-Gabriel Banascia)의 특이점의 신화는 인공지능 기술과 산업에 경쟁적으로 투자가 이루어지는 동시에 인공지능의 미래에 대한 대중적인 불안이 인공지능 공포(AI phobia)로까지 확산되어 가는, 변화의 시대를 위한 책이다. 저자는 인공지능 기술과 철학, 디지털 인문학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했기에 경계를 넘나드는 폭넓은 지식과 식견을 갖춘 학자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인공지능과 관련된 기술적 특이점 담론은 마치 현대의 신화와도 같아 비판적인 고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수학과 과학 용어였던 특이점은 본래 버너 빈지와 같은 SF 작가들에 의해 출발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물론 이 기술적 특이점은 이제는 과학적 연구 대상이 되어, 과학자와 기술자의 실제적인 방향까지 움직이는 큰 힘을 지니게 되었다. 가나시아에 따르면, 이 특이점이란 용어를 중심에 두고 많은 ‘테크노 예언자’들은 기술의 미래를 예측하려 한다. 그 예측은 주로 무어의 법칙에 근거를 둔다. 

무어의 법칙에 따르면, 어떤 유형의 집적회로에서나 트랜지스터의 수는 18개월에서 24개월마다 안정적으로 두 배가 된다. 이는 곧 같은 속도로 컴퓨터의 성능, 처리 속도, 기억 용량이 두 배가 된다는 뜻이며, 또한 같은 속도로 비용이 절반으로 감축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41쪽)

인텔의 고든 무어가 무어의 법칙이라 불린 미래 예측을 발표한 것은 1965년으로 그 당시에는 예측이 들어 맞았으나, 이미 일반화하기 어려운 법칙이라는 지적이 있다. 기술적 발전이 지수함수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는 기술과 산업의 영역을 넘어 SF 작가와 발명가, 연구자 들을 자극했다. 하지만, 기술 발전의 법칙 역시 예측 불가능하며, 한계를 가지고 있다.

저자 가나시아는 특이점에 대한 예측을 믿는 이른바 특이점주의자들은 그래서 논리보다는 차라리 이야기를 강조하는 면이 있다고 비판한다. 그들이 명철한 과학자나 기술자임에도 특이점 담론은 논리성보다 이야기와 믿음이 결부된다. 그래서 현대의 기술 담론임에도 특이점 담론은 그노시스 사상(고대의 영지주의)과 닮았다고 지적한다. 그노시스는 로고스(논리)보다 뮈토스(이야기)를 중시했고, 정신과 물질을 구분하여 이분법적으로 생각했으며, 대변동을 거쳐 신의 세계가 도래할 것으로 믿었다. 그 점에서 기술적 특이점을 거쳐 디지털 불멸이 가능할 것이라는 레이 커즈와일과 같은 특이점주의자의 생각은 그노시스를 빼닮았다.

또한 기술적 특이점 이후에 인간은 무기력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는 특이점주의자들의 생각은 마치 그리스 비극의 세계와 닮았다. 그 점에서 기술적 특이점은 기술의 상상력을 넘어서 문학적 상상력을 가진 담론이라는 것이다. 저자 장가브리엘 가나시아는 가브리엘 나예(Gabriel Naëj)라는 필명으로 SF 소설 『오늘, 엄마가 업로드 되었다』(Ce matin, maman a été téléchargée, 2019)를 창작하기도 했다. 그 점에서 그가 SF를 무조건적으로 비판하는 저자가 아닐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는 오늘날 무분별하게 SF적 상상력이 현실의 기술 담론에 적용되는 것을 비판하고자 한다.

저자는 이른바 ‘GAFA’(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와 같은 하이테크 기업은 모두 특이점의 추종자로 본다. 그들은 인공지능의 장밋빛 미래를 펼쳐보이면서 인공지능 기술에 적극적인 투자를 하는 동시에 인공지능 기술에 우려를 표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이상한 일로 보인다. 

특이점에 대한 선전은 앞서 말한 ‘방화범인 동시에 소방관’과 같은 양면성을 지닌다. 즉 한편에서는 자신들의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기여하며 일상생활을 향상시키고 있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신들의 추진하고 있는 일이 인간에게 위협이 된다고 외치는 것이다. (165~166쪽)

극한의 경쟁 속에 기업을 운영하는 이들은 기술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기술에 대해 우려를 표하면서 윤리적 입장에 서면서 책임감을 면제 받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향후 국가보다는 기업이 우리의 기술적 삶을 좌우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 점에서 거대 기술 기업들이 인공지능에 대해 갖는 양면적인 태도에 대해 비판한다. 기술 자본은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기술 유토피아와 기술 디스토피아에 대한 우리의 낙관과 불안을 활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특이점 담론/이야기는 문학과 기술, 정치와 경제가 혼합된 것으로, 인공지능 시대,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상연되고 있다. 

# 노대원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신문방송학 전공, 동대학원 국문학 박사과정 졸업
대산대학문학상(평론 부문) 수상 
201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 부교수 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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