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36) 고운 딸 있는 집 감나무에는 목매다는 놈 많다

* 곤 똘 : 고운 딸, 예쁜 딸
* 신 : 있는, 갖고 있는
* 감낭 : 감나무
* 목 도는 : 목매다는, 목 달아매는
* 한다 : 많다……‘하다’는 형용사로 많다(多), ‘허다’는 동사로 하다(爲)

물론 농담 반 진담 반이었겠지만 총각을 가진 집 부모들은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닌지라, 미모의 딸을 가진 집 어른들을 희롱하게도 됐겠다 싶다. 사진=픽사베이.
물론 농담 반 진담 반이었겠지만 총각을 가진 집 부모들은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닌지라, 미모의 딸을 가진 집 어른들을 희롱하게도 됐겠다 싶다. 사진=픽사베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얼굴이 예쁜 여자에겐 관심이 쏠리게 마련인가. 그러니 외씨버선 춘향이같이 고운 아가씨는 총각들이 반해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그렇게 노골적으로 나서지 못하면서도 속으로 끙끙 앓는 경우는 왜 없겠는가.

온갖 수단을 쓰고 궁리를 내가면서 사모하는 제 마음을 전하려 하지만 그게 뜻대로 되겠는가. 옛날 사춘기를 지나면서 고운 얼굴을 탐한 나머지 연애편지를 써서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가슴 콩닥거렸던 경험을 추억의 공간에 떠올리며 웃음 짓는 사람도 많으리라.

문제는 그렇게 얼굴 후끈거리며 공들여 쓴 연애편지를 동네 고운 처녀에게 전할 방법이 없어 바삭바삭 애를 태우기도 했을 것 아닌가. 오늘처럼 통신 수단이 발달되지 않았던 때라 그야말로 전전긍긍했던 것이다. 요즘 같으면 어떻게든 핸드폰 번호쯤은 알아내는 방법이 있을 테고, 그러면 용기를 내어 ‘사랑한다’ 대놓고 말은 못할지언정 더듬더듬 연모하는 속마음 한구석을 꺼내기는 했을 것인데….

그거 왜, 혼자 끙끙 속앓이 하는 짝사랑이란 게 있지 않은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아무 생각 없이 멍해 버리더니, 심하면 식음마저 끊고 자리해 눕는 수도 있었다.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그러다 어찌어찌해 그 고운 아가씨의 마음을 떠보게 됐는데, 자신의 간절한 사모의 정을 매정하게 뿌리쳤다고 생각해 보라. 경우에 따라서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수도 왕왕 있었거늘.

고운 여자 뒤를 따르는 총각이 한둘이 아니라 여럿이면 이야말로 눈앞이 캄캄할 수밖에 없는 일 아닌가.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 저세상에 가서…’ 하고는 그 여자의 집 뒤뜰 감나무에 목을 매어 죽음으로 생을 청산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예쁜 딸을 둔 집 어른들에게 좋은 말만 들어가랴. 그 딸이 너무 고와 마음을 얻지 못한 나머지 집 감나무에 ‘목을 매달아 죽을 총각들이 많겠다’는 비아냥 섞인 얘기도 나올 법하다 함이다.

물론 농담 반 진담 반이었겠지만 총각을 가진 집 부모들은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닌지라, 미모의 딸을 가진 집 어른들을 희롱하게도 됐겠다 싶다.

‘곤 똘 신 집 감낭엔 목 도는 놈 한다.’

고운 딸 둔 게 상서로운 일이라야 하거늘, 탐내 집적거리는 총각들이 감나무에 목을 매니 결국 남들에게 화(禍)를 부르게도 하니,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

남녀 간 애정의 한 단면을 대하는 것 같아 속이 씁쓰레하다.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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