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37) 급할 놈은 뱃속부터 안다

 * 급헐 : (설깔) 급할

 * 뱃소곱부터 : 뱃속부터, 소곱은 속, 안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재미있는 말이다. 

사람의 성질은 이미 태어날 때 결정된다는 얘기다. 뱃속에 있는 아기가 쉴 새 없이 꿈틀거리면 성깔깨나 부릴 거라며 혀를 찬다. 한시도 가만있지 않고 쿵쾅거리면서 심지어는 발길질까지 한다. 그럴 때마다 “이 조식 보라게. 촘 힘도 좋네.” 하며 싫어하기는커녕 손뼉 치며 좋아라 했다. 아이 아빠도 엄마 배에다 바짝 귀를 들이대고 요란한 태동을 느끼며 세상이라도 얻은 것처럼 좋아라 맞장구 친다. 가정을 가져 새로운 꿈에 부풀던 시절, 아이를 가졌을 때 누구나 경험하는 장면이다. 
  
태아 시기에 그렇게 태동이 심한 것은 태어나면 성질이 괄괄하리라는 조짐으로 알았던 것인데, 실은 아기 아빠나 엄마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이다. ‘패럽다(까다롭다)’, ‘뽈르키여(빠르겠네)’하는 것들이 다 그러한 것이다.
  
한데 뱃속에서 한창 왕성하게 자라는 아기 ‘이신 줄(있는 줄)’도 모를 정도로 얌전하면 태어나도 온순할 것이라고 했다. 유전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짐작이다. 성질이 조급해 불같을 아이와 차분하고 느긋할 아이의 행동 특성이 태아 때 이미 나타난다는 얘기다.
  
아잇적에 동작이 빨라 민첩하거나, 반대로 어디 박아졌는도 모르게 조용한 아이를 바라보면서 그 어머니 말없이 혼지 미소를 지을 것이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런 특성이 눈앞에 나타날 때면 ‘너네 뱃속에 이실 때부터 알아봤져. 영 헐 줄 알았댄 호난.(너희들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알아봤다. 이렇게 할 줄 알았다고 하니까.)’라 중얼거리곤 할 것이다.
  
뱃속에서 유별나게 팔딱팔딱 뛰던 아이나 시종 꼼짝거리지 않던 녀석이나 태어나 자라다 보면, 다 처한 형편이나 환경에 적응하게 마련이다. 빠르면 빠른 대로 불같이 덤벼들어 뜻을 성취한다든지, 느긋하면 그런대로 하는 일에 실수 없이 성공적으로 수행해 주위로부터 긍정적인 평판을 이끌어내기도 할 것이다. 일장일단이 있고 일득(一得)이 있으면 일실(一失)이 따르는 법이다.
  
사람의 성질은 타고나는 것으로 어머니 뱃속에서 생겨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옛어른들 생각이 단순한 것이 아님을 상기하면서, 이 말은 단지 이에 그치지 않고 산모가 새로운 궁리를 하는 계기가 됐음 직도하다.
  
“아. 이 아이는 성질이 급할 터라 좀 차분하도록 내가 너무 급하게 행동하지 말아 매사에 조심스럽게 해야지. 아. 이 아이는 얌전할 것이니 내가 좀 활발하게 움직이면 좋지 않을까?”
  
태교(胎敎)다. 그게 얼마나 중요한가. 우리 어머니들 비록 농촌에 묻혀 살면서도 그만한 분별이나 판단은 하고 있었지 않았을까. 대한민국의 눈부신 발전이 그냥 이루어졌겠는가를 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다. / 김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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