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詩 한 편] (78) 가을이 절정이다/ 오종문

한라산을 배경으로 한 가을 하늘. ⓒ김연미
한라산을 배경으로 한 가을 하늘. ⓒ김연미

아침에 조깅하다 코스모스 보았다고 푸른 하늘 보았다고 그대를 생각했다고 산책길 느티나무와 마주쳤다 고백한다

막새바람 왔다 가는 창문가에 서성이며 흔들리는 코스모스 불타는 느티나무 그 아래 동침하는 달 보고 싶다 말한다

한 자리 너무 오래 눈물 닦고 살았다고 수많은 가을날을 보낸 뒤에 깨달았다 누군가 붙잡고 앉아 절박하다 말한다

이 가을 절정을 두고 난 어쩌란 말인가 두 눈이 간음한다는 그 말이 참말이라 오늘은 질끈 눈 감고 고백하고 싶어진다

-오종문, <가을이 절정이다> 전문-

하늘이 그림 같다. 예전 같으면 가을이 절정이어도 보기 쉽지 않았던 맑고 높은 하늘이다. 여름의 클라이맥스를 넘어서면서부터 하늘은 말끔한 얼굴을 자주 드러내 주었다. 아마 코로나 19 영향도 한몫 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멈춰섰으니 하늘을 가리던 오염물질들이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맑은 하늘과 맑은 구름, 그걸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더불어 맑아지는 듯하다. 보기가 좋다. 하루에 한 번씩 하늘을 쳐다보고 살자던 예전의 다짐을 굳이 다시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시선이 간다. 역시 보기 좋은 것들에게 시선이 가는 건 본능인가 보다. 

가을 앞에서 자꾸 욕심이 일었었다. 남은 날들은 많지 않았고, 내 손에 가진 것들은 늘 적었다. 봄의 언저리, 여름의 한 가운데, 두고 와서는 안될 것들을 두고 왔다. 쭉정일망정 두 손 가득 붙잡고 있으면 가을의 상실감을 넘어 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수많은 가을날을 보낸 뒤에 깨달았다” 우린 너무 많은 것들을 잃어버린 채 살아왔다는 것을, “한 자리 너무 오래 눈물 닦고” 살면서도 정작 눈물의 의미를 모르고 살아왔다는 것을.

“누군가”를 “붙잡고 앉아”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되찾기 위해 뭘 해야 하는지 되묻고 싶어진다. 직진하던 걸음을 잠시 멈추는 사이 어느덧 내 옆에 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너를 위해 오늘은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고백”을 “하고 싶어진다” 네가 정말 보고 싶었다고.

김연미 시인은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출신이다. 『연인』으로 등단했고 시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  『오래된 것들은 골목이 되어갔다』, 산문집 <비오는 날의 오후>를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 오랫동안 하던 일을 그만두고 ‘글만 쓰면서 먹고 살수는 없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제주의소리>에서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 연재를 통해 초보 농부의 일상을 감각적으로 풀어낸 바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